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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까망이 1

 

“쥐약을 지급하라. 쥐 때문에 못 살겠다.” 광주교도소 특별사동 10번 방. 나는 식구통에 대고 크게 외쳤다. 밥그릇으로 교도소 창살을 득득 긁었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특사를 지나 기결사동까지 퍼져갔다. 방바닥에 드러누워서 발로 문짝을 ‘쾅 쾅’ 찼다. “페스트 걸리면 교도소가 책임져라.” 나는 1시간 동안 쉼 없이 외치고 두드리고 찼다. 보안과 직원이 한번 들여다보고 갔다. 잠시 후 보안과장 호출이 있었다. “야, 고형권! 어떻게 쥐약을 주냐? 네가 먹고 죽으면 누가 책임지냐?” “그럼 쥐를 전부 잡아 없애던가.” 보안과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귀찮은 듯 나를 사동으로 돌려보냈다.

 

교도소에는 살찐 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밤에 뺑기통(화장실) 조그마한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면 포동포동 살 오른 쥐들이 교도소 감시탑 조명 아래로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쥐들의 주요 루트는 하수구였다. 교도소에서는 뺑기통에 밥 먹고 남은 잔반도 버렸다. 모든 뺑기통은 하수구로 서로 통했다. 겁이 없어진 쥐들은 하수구로 올라와서 뺑기통까지 침투했다. 똥을 싸다가 어느 쥐의 영롱한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쳐서 질겁을 한 적도 있었다. 쥐는 교도소에서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다.

 

“쥐덫을 지급하라. 쥐 때문에 못 살겠다.” 다음날 나는 구호를 바꿨다. 이번에는 특사의 공안 사범들이 같이 문짝을 찼다. 소리가 교도소를 ‘웅웅’ 거리며 흘러갔다. 나는 쥐덫도 교도소에서 지급하지 못한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었다. 숟가락 하나도 흉기가 된다고 지급하지 않는데 하물며 날카로운 금속으로 둘러싸인 쥐덫을 지급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교도소도 난감한 입장이었다. 나의 억지 주장이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혹여라도 교도소에 쥐가 창궐해서 전염병이 번진다면 교도소장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며칠 전 기결사동의 장기수 양희0 선생으로부터 통방(기별)이 왔다. 양희0 선생이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젖 뗄 때가 되어 분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 고양이를 데려올까 한참 궁리했다. 그러다가 ‘그렇지’ 하고 내 이마를 쳤다. 나는 면회 온 동지들에게 교도소의 열악한 위생 상태를 이야기했고 편지로 쥐가 창궐하는 교도소의 상태를 썼다. 내 편지는 검열에 걸려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투쟁 사흘째. 보안과장이 다시 나를 호출했다. “야, 내가 송정시장에 가서 사 온 고양이다. 받아라.” 선심 쓰듯 건네준 그 고양이는 양희0 선생에게서 받아온 것이 분명했다. 나의 쥐 투쟁은 그렇게 끝났다. 기분이 오지게 좋았다.

 

어른 손바닥보다 좀 더 큰 새끼고양이는 얼굴의 반을 검은 반점이 덮고 있었다. 고양이 이름은 ‘까망이’로 지었다. 까망이는 내 품에 파고들어 이내 잠이 들었다. ‘드르릉 드르릉’ 코를 골았다. 징역살이 중 처음으로 살아있는 존재의 심장 고동을 느끼면서 잠자리에 누웠다. 까망이의 심장박동은 나보다 배는 빨랐다. 까망이를 살짝 돌려서 내 오른팔에 팔베개를 시켰다. 까망이는 사람처럼 내 팔을 베개 삼아 잠을 잤다. 나는 혹시 그 여린 놈을 내 몸이 뭉갤까 봐 걱정이었다. 오른팔에 피가 안 통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사람이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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