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을 가리지 않고 붓 닳는 소리가 나는 원로화가 유재민의 작업실에서는 시린 눈을 치켜뜨고 무엇 하나라도 담아내려고 구슬땀을 흘리는 노(老)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차라리 거친 노동과도 같고 어쩌면 무념무상 모든 것을 벗어 놓기 위한 몸부림이란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행위라고는 하나 녹록하지 않은 굴곡진 세월 안에서 팔순이 넘도록 지친 육신을 추스르며 올곧고 쉼 없이 작업을 해나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 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산이 좋아 산을 그리고 꽃이 좋아 꽃을 그린다고 한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용하는 바탕천은 잘 다듬어진 일반적인 캔버스 천이 아닌 쇠붙이 따위를 닦거나(갈거나) 문지르는 데 쓰기 위해 금강사(金剛砂)나 유리가루·규석(硅石) 따위의 가루를 발라 붙인 거친 사포(沙布)다.
굴곡지고 거칠게 한세상 거뜬히 살아온 인생길을 반추하듯, 작가는 그 거친 표면 위에 향기로운 꽃을 담고 기운차게 우뚝 솟은 산을 그리며 자신의 조형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다. 거친 표면은 그가 걸어온 길이요 그 위에 펼쳐진 그림의 흔적들은 그가 품고 있는 이상의 세계를 담아내려 하는 마음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재민 작가는 시각적 발견 이후에 전해지는 감흥에 집중한다. 대상이 주는 근원으로서의 본질에서 느끼는 감흥은 결국 심리적 반응과 감정작용에 의한 조형적 유희로서 격정의 몸짓과 붓질 행위로 이어지니 거친 표면(사포) 위로 붉은 꽃이 피고 계절은 순환한다.
원로서양화가 유재민 초대전이 9월 1일부터 열흘 동안 인천시 중구 개항장에 자리한 도든아트하우스에서 열린다.
도든아트하우스 관계자는 “작가의 그림은 거친 사포 위에 우뚝 솟은 산을 기운차게 그려도 물이 흐르듯 고요하기만 하다. 부드러움 속에서 강인한 기운이 엿보이는 그의 그림은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선한 기운을 받듯 유쾌하다”고 감상평을 내놨다. ☎032-777-5446.
[ 경기신문 / 인천 = 박영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