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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슈퍼밴드 2

 

1980년 가을로 기억한다. 목포 유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반야사’라는 절에 해 질 무렵부터 꽤나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절 정문에는 제법 그럴싸하게 “반야의 밤”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한 학생이 불량기 있게 보이는 옆 친구에게 나직이 물었다.

 

“야, 오늘 목포에서 한 가닥 한다는 것들 이리 다 모이는갑다.”

 

친구는 짝다리를 건들거리며 침을 찍 내뱉었다. 한눈에 봐도 불교학생회 다닐 것 같지 않은 불량한 학생들이 절에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부회장 여학생은 못내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사실 부회장은 “반야의 밤” 행사에 밴드 부르는 것을 반대했다. ‘아니 절에서 하는 학생들 행사에 웬 밴드란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키만 멀쩡하게 큰 회장은 고등학생 밴드 ‘윙스’를 행사에 초청했다.

 

드디어 ‘반야의 밤’ 행사가 시작됐다. 반야사 대웅전이 활짝 열렸고 무대는 대웅전 마루였다. 대웅전과 대웅전 앞마당에 학생들이 그득했다. 찬불가도 부르고 반야심경도 외우고 승무도 추고 타령도 했다.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종교행사였다. 그러다 저녁이 깊어지고 드디어 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컬기타, 베이스기타, 건반, 드럼이 대웅전에 나와 전선을 연결했다. 앰프에서 “삐” 소리가 나자,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디디디 디디디디딩, 둥둥 닥닥”

 

일렉기타의 링링거리는 소리가 앰프를 통해 대웅전을 가득 채우고 드럼소리가 유달산 자락에 퍼졌다. 모두 일어나서 같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반야사는 한순간 고고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스모키’의 ‘I will meet you at midnight’라는 노래였다. 학생들은 마당에서 펄쩍펄쩍 뛰고 저마다 기타 치는 흉내를 냈다. 누구는 허공에 대고 드럼 치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I will meet you at midnight. Under the moonlight” 이 대목에서 떼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윙스’는 ‘스모키’의 다른 노래도 몇 곡 더 연주했다. 학생들의 함성과 열기가 가을밤에 가득했다. 아름다운 산사의 밤이 깊어갔다.

 

이번 추석에 나는 우연히 TV에서 ‘슈퍼밴드 2’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처음에는 심드렁했는데 이내 숨이 멈출 것 같았다. 이틀에 걸쳐 처음부터 몰아보기를 했다. 다행히 추석연휴는 길었다. 나는 참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때 갑자기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추억이 떠올랐다.

 

IMF사태가 터질 때쯤 한 벤처기업에서 술상무로 일한 적이 있었다. 통상 접대 차 갔던 룸살롱에서 술이 한 순배씩 돌고 나자 1인 밴드를 불렀다. 그 자리에 기타리스트가 한 명 들어왔다. 그는 내 고등학교 동창으로 그때 ‘반야의 밤’ 행사에서 기타를 쳤던 친구였다. 둘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허공에서 시선이 교차했다. 그러나 둘은 서로 아는 체를 하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그 친구가 부러웠다. ‘그래도 친구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을 계속하면서 사는구나.’ 사실 나의 고등학생 시절에 가장 부러웠던 친구들은 그때 밴드를 하던 ‘윙스’ 멤버들이었다. 이제 ‘슈퍼밴드 2’가 결승전만 남기고 있다. 나는 ‘제이유나’ 팀을 응원하고 있다. 내 청춘의 밴드여, ‘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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