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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흙

 

 

아버지는 내 생일날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침상에 오른 미역국을 몇 숟가락이나 뜨셨을까요. 다시 자리에 누운 아버지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추석을 이틀 앞둔 날 아침이었습니다. 영화처럼, 한쪽 눈을 감지 못하고 아버지는 숨을 거뒀습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 하였는데, 말은 내 귀에 도달하지 못하고 흩어져버렸습니다. 흩어진 말속에는 말은 없고 흙냄새만 남아있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 쪼그려 앉으면 맡을 수 있던 흙냄새였습니다. 어쩌면 무화과나무 아래 굴을 파고 살던 개미들의 냄새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내 생일날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생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빛을 잃기는 추석명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가신 뒤로는 명절 대신 제사를 위해 가족이 모입니다. 사십여 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다 모이지 못한 것입니다. 하긴, 그것이 우리 가족만의 문제일까요. 코로나로 오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하루 평균 팔천 명 꼴입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서둘러 가족을 땅에 묻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그들의 기억에도 흙냄새가 선명할까요.

 

아버지는 내 생일날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오십을 넘기지도 못한 나이였습니다. 영정 사진 속의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젊습니다. 젊은 아버지의 사진에는 나와 내 아이들의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굳이 사진이 없어도 아버지의 얼굴은 내 심장 안에서 선명합니다. 그러면 되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나와 아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죽거든 제사를 모실 필요는 없다. 시간이 허락되는 형제들끼리 모여서 좋은 시간을 보내라. 아비와 어미를 떠올리며 활짝 웃어주면 고맙겠다. 슬퍼하지 마라.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 생일날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날 아침, 돌아가신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까마득히 울었습니다. 아버지 묘를 이장(移葬)할 때도 그랬습니다. 파묘(破墓)를 하고 유골을 수습하는데 한쪽 손가락뼈를 찾지 못했습니다. 직접 구덩이 밑으로 들어가 묘지 바닥의 흙을 더듬으며 찾았습니다. 삼베로 만든 손 싸개 속에 다섯 손가락뼈가 고스란히 들어있었습니다. 땅 속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잘려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이렇게 반듯하게 누워 있었겠지요.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잘린 하늘에서 흙냄새가 쏟아졌습니다.

 

아버지는 내 생일날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활짝 웃곤 하였습니다. 그때, 내 머리에 닿던 아버지의 손가락 감촉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손가락에 묻어있던 담배 냄새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신탄진’이었던가요. ‘파고다’였던가요. 담배 심부름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활짝 웃었습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내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곤 합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들도 기억해 줄까요.

 

먼 훗날, 내가 흙으로 돌아간 뒤에도 기억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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