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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일의 오지랖] 은원(恩怨)은 반드시 갚아줘야 한다

 

2021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코로나19로 인한 피로감과 무기력함은 지난해와 똑같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전 지구적인 환란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피폐할 정도로 망가트렸다. 누구나 겪었던 이 불행한 시간은 보상받을 길이 없어 더 안타깝다. 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개인적인 은혜와 원한은 사회적 참사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감사함은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함께 경험하는 아픔은 서로 의지가 된다. 하지만 개인이 경험하는 사랑과 고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홀로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또 힘들다.

 

얼마 전, 신경정신과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심리적인 상처를 서로 주고받은 경우에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병원을 찾아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힘들어하면서 상담을 하기 위해 내원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타인으로부터 위해를 당한 피해자만 마음속에 상처를 감추고 위장하다가 곪아 터질 때쯤 되어서야 살기 위해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리라. 결국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성경 구절에나 나오는 선언적 수사에 불과하며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가당치 않다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이를 방해하는 일이나 사람, 집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저항하고 배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받은 은혜를 갚음으로써 행복하고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로부터 물리적·심리적 피해를 받아 원한이 생겼다면 반드시 되돌려줘야 한다. 전문가의 말대로라면 가해자가 반성하는 일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2021년을 마무리하면서,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상투적 미사여구는 더 이상 머릿속에 담아두면 안 된다. 차라리 마음속에 저장된 은원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은혜는 갚고 원한도 갚아야 한다. 그렇게 마음먹어야 병원 갈 일이 없으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원수를 사랑하다가는 마음에 골병들기 딱 좋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진정 용서하고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응징, 혹은 적당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죄인이 징벌되고 나서야 나는 움직일 수 있고 그 모든 일과 작별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한 현재도 미래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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