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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의 통역사가 모든 후보 철학 표현할 수 없어”…10년 전부터 요구된 대선 토론 수어 통역

중앙선관위 주관 대선 후보 TV토론회서 1명의 수어 통역사가 5명의 발언 소화
장애인 활동가 “수어, 한글·영어 같은 언어 체계로 봐야…뉘앙스 표현하는데 한계”
선관위 “남은 대선 토론회는 복지TV와 협의해 후보자별 수어 통역사 배치할 것”

 

“대선 후보들의 정책뿐만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철학이나 인성, 가치관 등도 평가해야 하잖아요. 또 어떤 뉘앙스로 이야기하는지도 봐야하는데 1명의 통역사가 모든 후보들의 표정이나 어투를 수시로 바꿔가면서 수어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지난 21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2시간동안 진행된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TV토론회’에선 단 1명의 수어 통역사가 사회자 1명과 후보자 4명 등 총 5명의 발언을 소화했다. 앞서 진행됐던 두 차례의 토론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토론회를 시청하는 농인(청각장애인)들의 입장에선 대선 후보들의 면모를 제대로 살펴보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후보들마다 행동이나 표정, 말투가 다른 데다 토론이 빠른 속도로 오가면서 발언이 맞물리게 되면 어떤 의도로 이야기하는지 이해도 쉽지 않다. 

 

한 장애인 인권단체 활동가는 “수어도 한글이나 영어처럼 하나의 언어 체계로 봐야 한다”며 “단순히 자막으로만 전달하지 않는 이유는 통역사가 발화자의 이야기를 통해 느끼는 감정 등을 생동감 있게 같이 전달할 때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TV토론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 유튜브 채널의 수어 중계방송이 청각장애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선대위 인재영입위원회 부단장은 자신의 채널인 ‘김광진TV’에서 이번 토론회를 실시간 수어 통역으로 중계했다. 

 

해당 채널에는 수어 통역사 5명이 출연해 각 통역사마다 사회자 1명과 4명의 대선 후보들의 발언을 실시간으로 통역했다. 또 수어와 함께 후보별 발언에 대한 자막도 함께 안내됐다. 다만 저작권 문제로 TV토론과의 동시 송출이 어려워 통역사들로만 이뤄진 영상이 제공됐다.

 

김 부단장은 자신의 SNS에서 “매번 토론회가 진행될 때마다 토론자와 사회자는 여러 명인데 한 명의 수화 통역사가 통역을 하니 서로 공방이 붙거나 하면 어느 사람의 말인지 알 수가 없다”며 추진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 10년 전 대선 토론 때부터 공론화 된 후보별 수어 통역사 배치…여전히 ‘제자리걸음’

 

그동안 청각장애인들은 발화자 수에 따른 수어 통역 배치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앞서 김 부단장의 말처럼 한 명의 통역사가 모든 후보들의 발언을 적재적소에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경욱 경기도농아인협회 팀장은 “2012년 대선 토론 때 발화자별 수어 통역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처음 공론화됐다”며 “후보들이 자신의 감정과 논리를 자신의 언어로 강력하게 전달하고자 할 때 이를 한 사람이 표현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간이 정해지고 한 사람씩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끼어들고 주고받는 토론의 특성상 후보들 간 말이 섞일 때도 많아 수어 통역이 제대로 될 리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장애인 인권 단체인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2018년 5월 ‘선거 방송 화면을 송출할 때 2인 이상의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라’고 권고했지만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김철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활동가는 “당시 인권위 권고까지도 나왔지만 선거방송 주관 기관이나 방송국이 수용하지 않았다가 최근에서야 일부 수용해 통역사를 한 시간씩 두 명으로 배치하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 명의 수어 통역사가 30분 이상을 통역할 때는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통역의 품질도 저하된다. 그만큼의 통역 시간을 감당하는 것 역시 보통일이 아니다”라며 “청각장애인들도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선관위가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앙선관위 “남은 토론회 복지TV와 협의해 후보자별 수어 통역사 배치할 것”

 

공직선거법상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대담·토론회에선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나 수어 통역 제공의 의무가 있지만 통역사 인원수에 대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선거방송 주관 기관이나 지상파 방송사들은 통상적으로 수어 통역사를 최소 인원인 1명만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 문제가 최근 사회적으로 지적되면서 1시간마다 통역사를 번갈아 배치하는 방송사도 드물게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효율성과 방송 기술적 문제 등을 이유로 발화자별 수어 통역사 배치에 난색을 표해왔지만, 최근 관련 요구가 계속 이어지면서 앞으로 남은 토론회에선 ‘복지TV’와 협의해 후보자별 통역사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관위에서 후보자별로 수어 통역을 했으면 좋겠다고 방송사에 의견을 냈었는데 방송 기술상 쉽지 않다는 결과가 나와 1차는 그렇게 진행하지 못했다”며 “2차 선관위 선거토론 때부터는 복지TV랑 협의해 후보자별로 통역사를 배치해 송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만 “앞으로도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반영이 되긴 어려워 보인다”며 “방송사들에 요청은 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 강제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의견 반영이) 쉽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김혜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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