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학자의 노트 / 신혜우 지음·그림 / 김영사 / 280쪽 / 1만 9800원
제게 식물 연구는 식물의 입장에서 그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조형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 식물의 입장에서 지구에 생존하는 형태, 생태, 진화를 그림에 담습니다.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식물에 대한 사랑을 조명한 것이 그림이지요. 이런 식물 그림은 보는 이들이 누구든지 간에 식물에 대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믿습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이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 신혜우의 첫 일러스트 에세이가 출간됐다.
유년 시절부터 식물이 좋아 식물학자를 꿈꾼 저자는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학술용 식물도해도를 그리다가, 색을 칠해보면 어떻겠냐는 선배의 조언으로 처음 그림에 색을 입혔다. 이후 영국왕립원예협회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이 3번이나 금메달을 수상했다.
돋보기로 보아야 할 정도로 미세하고 여린 잔뿌리, 음영과 광택을 살려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파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저자가 얼마나 식물을 사랑하는지 느껴진다.
물과 산소의 근원인 식물은 인간 생존에 절대적인 요소이다. 가끔은 지치고 힘든 마음을 말없이 위로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반려 식물’이라는 말처럼 많은 사람이 식물을 기르고, 식물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관계에 치이고, 사람에 지친 어느 날, 숲으로 공원으로 가 식물들 틈에서 마음을 다독인다.
식물은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시간에 꽃을 피우고, 삶의 다음 고리로 연결해갑니다. 사람도 저마다 꽃을 피우는 시간이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일찍 찾아올 수도, 어떤 사람은 늦게 찾아올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일찍 꽃을 피우는 것보다 나에게 맞는 시간에 꽃을 피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아닐까요? 꽃이 피는 순간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chapter 1. 빛나는 시작’ 중에서)
움직일 수 없는 식물 대부분은 전 생애를 한 곳에서 살아야 한다. 어디든 어떤 환경이든 식물은 놀라운 적응력으로 장소에 적응하고,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살아낸다. 강한 생명력과 환경 적응력을 가졌지만, 작고 미약한 존재이다. 저자는 ‘강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 강하다’라는 말을 식물을 보며 실감한다.
식물의 생존은 꽃이 피는 시간과도 관계가 있다. 꽃가루를 전달하는 수분매개자의 활동 시기와 관계가 깊다. 낮에 꽃을 피우는 낮달맞이꽃은 나비와 벌을 수분매개자로 하고, 밤에 피는 달맞이꽃은 나방을 수분매개자로 한다. 식물은 생식활동에 유리한 시기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수분매개자의 활동 시간이나 계절과 꽃 피는 시기가 겹치게 된다. 풍매화, 수매화 등은 물과 바람을 잘 이용할 수 있는 계절과 시간을 선택해 꽃을 피운다.
무심히 지나치는 작은 풀꽃에도 이름이 있다.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작은 식물 하나하나가 가진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를 발견할 수 있다. 독자는 저자가 들려주는 31가지의 식물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위로와 응원을 받게 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