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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13살의 여름들

 

학교에서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어지고, 소화가 잘 안 되거나, 배가 자주 아프면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무덥고 습한 날씨 탓인지 이 시기가 되면,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살짝 맛이 가기 시작한다. 수업이 진행되기 어려울 정도로 교실이 시끄러워지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터진다. 덩달아 한 학기 동안 교실을 운영하며 쌓인 스트레스가 몸으로 표출되고, 나 역시 화가 많아진다. 부디 무사히 남은 날들을 보내고 방학하게 해주세요-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교실에 앉아 있는 게 힘들어서 하루하루 방학만 손꼽는 상황이지만, 가끔 열세 살의 푸릇푸릇한 여름들이 귀엽고 싱그럽다. 우리 반 아이들의 귀여운 모먼트를 떠올리며 남은 몇 주를 잘 버텨보려 한다. 아직 청소년이 아니고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청린이들의 풋풋한 순간들. 매순간이 이렇게 귀엽기만 하면 좋을 텐데 현실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1. 반 친구 중에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이 있으면 적어 보자고 했다. 열광적인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모두 부끄러워해서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아직 반에서 커플이 생기지 않았고,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은 상태라서 그런지, 다들 좋아한다는 주제가 몹시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남학생 한 명이 ‘갑자기 선생님을 좋아하게 됐다고 그걸 적으면 되냐’고 물었다. 저학년 어린이들이었으면 저돌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아이가 있었을 텐데, 청소년을 목전에 둔 친구들에게 좋아하는 감정은 누군가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 이야기였다.

 

#2. 온 책 읽기에서 태몽 이야기가 나와서 각자의 태몽, 태명, 자기의 이름 뜻, 그 외 출생과 관련된 것을 조사해오는 숙제를 내줬다. 아이들이 너도, 나도 발표를 원하는 가운데 진지하게 출생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신나서 떠드는 아이들 얼굴 위로 자식의 멋진 미래를 소망하며 이름 한 글자 한 글자를 지으신 학부모님들이 겹쳐 보이더니, 초록이, 행운이 같은 태명을 듣고 나서 급기야는 여드름이 몇 개씩 올라온 아이들의 얼굴이 갑자기 귀여운 영유아로 보였다. 집에서는 아직도 어린 시절 모습이 남아있는 귀염둥이들이겠구나 싶어서 조금 귀여웠다.

 

#3. 저학년 친구들이 하루에 열댓 번씩 보건실을 방문하는 반면에 6학년쯤 되면 어지간한 일로는 보건실에 가지 않는다. 수업하는데 남자아이가 눈 아래쪽이 아파서 보건실에 가야겠다고 했다. 대충 살펴보기에 큰 문제는 없어 보여서 다녀오라고 말하고 수업을 계속했다. 아이가 다시 교실에 돌아오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수업하다가 마쳤는데, 하교 전에 아이가 나에게 오더니 발랄하게 웃으면서 이제 자기 눈이 괜찮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나에게 보건실에 다녀온 경과를 말해준 친구였다. 보통 남자친구들은 내가 상태를 물어봐야 겨우 답하는 수준인데 찾아와서 말해준 게 갑자기 너무너무 고마워졌다.

 

#4. 프로젝트 수업으로 20차시짜리 ‘영화 만들기’를 진행 중이다. 아이들이 아이템 발굴에서부터 시놉시스, 시나리오, 콘티까지 직접 짜고 촬영을 앞둔 상황이다. 언젠가부터 따로 시키지 않았는데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촬영팀이 모여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대본 연습하고,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걸 발견했다. 그 옆을 서성이다가 어떤 아이가 영화를 만들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학교에서 정말 행복한 일이 하나쯤은 있어서 나도 행복해졌다.

 

적고 보니 소소하고 사소한 일들이지만 이런 소소함과 사소함이 모여 하루하루 지탱하는 힘이 되어준다. 늘상 억울한 것도 많고, 화나는 일도 많은 열세 살 청린이들과 남은 13일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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