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교육현장에서] 우당탕탕 단편 영화 제작기

 

 

수업을 하면서 가장 기대되는 순간은 아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만들어낸 결과물을 확인할 때이다. 특히 고학년을 맡으면 글쓰기나 영상 만들기 수업을 하면, 이후에 몹시 기대감에 차서 아이들의 과제물을 기다린다. 어린이들의 편견 없고 솔직한 글솜씨에 한번 감동 받고, 기대 이상의 영상 퀄리티에 다시 한번 놀란다. 이번 영화 만들기 수업도 혼자 여러 가지 기대를 품고 시작했다.

 

단편 영화 제작은 방학을 맞이하기 전 마지막 프로젝트였다. 팀당 5분 남짓의 단편 영화를 만드는데 25차시 혹은 그 이상이라는 막대한 시간이 들어갔다. 초등학교는 1차시에 40분이니 16시간 3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처음 계획은 17차시에서 끝내는 거였는데 진행하다 보니 도저히 시간을 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할 것 없이 모두가 열정적으로 영화 만들기에 매달렸다. 마지막 영화 상영회까지 숨 가쁜 일정이었다. 긴 시간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영화라는 작업은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고 온전히 협업해야만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팀으로 움직여야 하는 일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쉬웠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몇 개 팀은 빠르게 시나리오 집필부터 촬영까지 끝내고, 남은 시간 동안 편집을 여유롭게 마쳐다. 반면에 몇몇 팀은 촬영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누군가는 열심히 콘티 대로 촬영을 진행하려는데 그 순간마다 어깃장을 놓거나 농땡이 피는 친구들이 있었다. 팀원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화해는 어려웠다.

 

촬영 기간 내내 지지부진했던 한 팀이 상영회 전날까지 영화의 절반도 완성하지 못했다. 촬영이 늦어진 것에 대해 서로를 탓했고 아이들 사이가 단단히 틀어졌다. 이 지경쯤 오면 상영을 포기할법한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영화를 트는 데 성공했다. 상영회 당일까지 촬영과 편집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다툼이 있었지만 화해하고 결승점에 도착한 아이들이 대견했다. 아이들도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걸 보며 뿌듯해했다. 어른들도 하기 힘들어하는 팀 과제인데 아이들이 고생이 많았다.

 

또 다른 하나 느낀 점은 영화 소재에 관한 것이다. 보통 영화 만들기 시작 전에 아이들에게 소재 선정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준다. 아이템을 정할 때 코미디나 귀신, 살인이 나오는 잔인한 내용은 담지 말라고 교육한다. 웃기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열심히 합을 짜서 웃기려 들어도 웃음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고, 잔인한 내용은 아이들 촬영 환경에서는 너무 유치해지고 무섭기 어려워서 그렇다. 코미디나 잔혹극은 영화의 퀄리티가 너무 떨어지는 소재라서 애초에 주제로 선정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상영회 당일 반전 결과가 있었다. 우리 반은 아니고 옆 반 친구들의 작품이었는데 학교 내 살인극을 주제로 삼은 팀의 결과물이 너무나 훌륭했다. 웃음기 없이 연기하는 아이들의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했고 편집과 배경음악이 한껏 공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살인이라는 소재가 비교육적인 것을 논외로 하고 보면 영화의 만듦새가 꽤 괜찮았다. 영화를 보던 아이들도 한껏 몰입해서 보는 눈치였다. 어른들의 틀에 박힌 사고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두기보다 넓게 열어주면 상상을 넘어서는 멋진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배웠다.

 

이번 상영회에는 총 8편의 작품이 나왔는데 영화마다 편집, 연기, 대본, 촬영에서 칭찬할 점이 몇 개씩 있었다. 아이들에게 영화 감상 소감을 들을 때 서로를 칭찬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엿보는 일이야 말로 교사라는 직업의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우당탕탕 굴러갔지만 이번 영화 제작도 대 성공이었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