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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기] 12년 소리 유랑 마침표…잘가요, 뮤지컬 ‘서편제’

소리꾼의 한(恨) 많은 삶 다뤄
한지 붙인 배경·회전 무대로 유랑 여정 표현
2010년 초연, 원작 사용 기한 만료로 마지막 공연
초연부터 무대 오른 차지연·이자람 비롯해 송화 역에 6명
서울 광림아트센터, 10월 23일까지

 

“소리를 청하셨다고요. 소리를 좋아하는 양반치고 내력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눈먼 소리꾼 송화를 찾아온 한 남자. 오랫동안 송화를 찾아 헤맨 그의 의붓동생 동호다. 둘은 어린 시절 송화의 아버지 유봉을 따라 유랑하며 소리를 익혔다. 유봉의 소리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한 동호는 결국 자신의 소리를 찾아 떠났고, 송화는 유봉의 곁에 남아 소리를 이어갔다.

 

소리꾼의 한(恨) 많은 삶을 다룬 뮤지컬 ‘서편제’가 마지막 이야기로 돌아왔다. 원작 사용 기한이 만료돼 지난 2010년 초연 후 이번 공연을 끝으로 12년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청준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해당 소설은 임권택 감독이 영화화해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영화와 달리 뮤지컬에선 동호가 현대 음악을 하는 가수가 된다는 설정이 추가됐다.

 

공연은 암전에 들어가며 맑은 새소리와 송화의 허밍으로 관객을 소리의 세계로 이끈다. 송화를 찾기 위해 50여 년간 전국을 돌던 동호에게 드디어 송화의 거처를 알아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동호의 어린 시절을 비춘다.

 

어머니가 농사일을 하는 동안 늘 혼자 묶여 있던 동호. 그런 동호에게 어느 날 새 아버지 유봉과 누이 송화가 생겼다. 그 뒤 갑작스레 찾아온 어머니의 죽음. “엄마가 죽었어도 넌 내 새끼여. 그러니께 넌 소리꾼이 돼야 혀.” 그렇게 유봉은 송화, 동호와 함께 유랑에 나선다.

 

소리를 하려면 이땅저땅, 온 땅의 기운을 몸에 쟁여야 한다는 유봉의 생각에 따라 이들은 전주, 목포, 벌교, 해남, 여수 등을 떠돌며 소리를 익힌다.

 

유랑 중 우연히 미군을 상대로 하는 공연단 ‘스프링 보이즈’를 만난 동호는 “누나가 하고 싶은 소리가 있듯이 나도 하고 싶은 소리가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송화를 떠난다.

 

동호를 떠나보낸 송화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낙엽이 떨어져도, 울면서도 연습에 매진한다. 그럼에도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자 “기운을 내고 싶은데 자꾸 썽(성)만 나요. 아부지 나 이제 소리 안 해요”라며 소리를 놓고 싶어 한다.

 

유봉은 그런 송화에게 한을 심어, 소리를 완성하기 위해 송화가 잠든 사이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 초연부터 마지막까지 ‘송화 그 자체’, 배우 차지연

 

“그 망할 한이 뭐라고 차라리 죽이시오. 죽여줘요. 지발(제발).”

 

눈이 먼 뒤, 유봉을 원망하며 송화가 내뱉는 말이다. 울분을 토해내는 차지연의 연기를 보며 정말 그 한이 뭐라고 딸의 눈까지 멀게 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관객 역시 함께 숨죽이게 된다.

 

기운 빠진 동호에게 사랑가를 불러 준다며 달래고, 소리를 하며 놀던 천진난만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한으로 가득 찬 송화만 남아있을 뿐이다.

 

특히, 동호와 재회해 심청가를 부르는 극의 마지막은 모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눈을 감은 채,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읊는 차지연의 소리는 관객들의 한을 치유하는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고, 차지연은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보였다.

 

배우 차지연은 지난 초연부터 이번 공연까지 빠짐없이 송화 역을 개근했다. 그는 어릴 적 무형문화재인 외조부(대전무형문화재 17호 송원 박오용)를 따라다니며 10년 가까이 고수를 했던 경험이 있다. 이를 안 제작진의 제안으로 ‘서편제’의 시작을 함께했다.

 

차지연은 “서편제는 20대부터 40대까지 함께한, 나의 삶을 같이 걸어온 나의 길과도 같은 작품, 눈부시도록, 눈물이 나도록 찬란한 나의 젊은 시절, 나의청춘이다”며 “2010년 29세였던 초연부터 함께했으니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낸 최소한의 무대

 

‘서편제’하면 아름다운 무대를 빼놓을 수 없다. 전통 한지를 한 겹 한 겹 덧붙여 표현한 순백의 배경은 어떤 색의 조명이든, 영상이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400여 장의 한국화를 빛으로 담아낸 수묵화 같은 영상은 오직 자신의 소리를 위해 떠나는 소리꾼들의 여정에 과하지 않게 맞아 떨어진다.

 

나부끼는 하얀 눈도, 쏟아지는 폭포도, 흩날리는 꽃잎도 무대 위 인물에 집중되도록 은은하게 나타난다.

 

그렇다고 너무 심심하기만한 무대는 아니다. 록밴드를 하는 동호의 무대에서는 형형색색의 조명과 음악 방송 같은 무대로 화려함을 더한다.

 

또한, 회전 무대로 소리꾼의 유랑과 우리네 인생길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무대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역동감을 끌어냈다.

 

 

◇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어린 송화·동호

 

“혼자라 슬퍼하진 않아 / 돌아가신 엄마 말하길 /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 그 말 무슨 뜻인진 몰라도 /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곡 ‘살다보면’ 중에서)

 

엄마를 잃은 어린 동호에게 “우리 소리하고 놀까?”라며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살다보면’을 부르기 시작하는 어린 송화. 절절한 슬픔이 아닌 담담한 노래로 동호와 관객에게 위로를 전한다.

 

어린 동호는 마치 동호의 분신처럼 등장한다. 동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어린 동호를 옆에서 측은하게 바라보고, 애절하게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어린 동호는 동호가 털어 내지 못한 마음 속 아픔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동호가 과거 기억에 슬퍼하며 주저앉아 있을 때, 어린 동호는 그림자가 돼 동호와 같은 자세로 앉아 그의 곁을 지키며 아픔을 함께한다.

 

한편, ‘서편제’는 오는 10월 23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비비씨에이치(BBCH)홀에서 공연된다. 송화 역은 초연부터 무대에 오른 차지연, 이자람을 비롯해 유리아, 홍자, 양지은, 홍지윤이 연기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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