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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이 XX 저 XX, 신뢰하되 검증하겠다

 

빌리 서머스는 킬러다. 지금까지 16건인지 17건인지, 비교적 오랜 기간 이 ‘업계’에서 이름을 날려 온 저격수이다. 그는 원 샷 원 킬로 사람을 죽이는 킬러로 빌런(악당)만을 죽인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자이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끼고 다니며 토마스 하디의 작품을 좋아한다. 제임스 M. 케인(『포스트 맨은 두 번 벨을 울린다』)과 데이비드 포스터 같은 작가 얘기도 심심치 않게 머릿속에서 뱅뱅 거리며 살아가는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닉이라는, 메릴랜드와 펜실베이니아, 그러니까 미 동부 지역을 장악한 마피아 보스에게서 조엘 앨런이라는 인물을 ‘처치해’ 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빌리는 200만 달러라는 큰돈을 바하마에 예치하는 것을 조건으로 인생의 마지막 작업에 착수한다. 착수하되 이건 좀 시나리오가 필요한 일이라 그는 당분간, 조엘 앨런이란 인물이 곧 출두할 법원 주변에 똬리를 틀고 보통사람으로 스며들어 살아가야 하며 다운타운에도 사무실을 유지하는 척해야 한다. 직업은 출판사 에이전트에게 원고 마감에 쫓기는 무명작가 노릇으로 정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에게 이번 일을 맡기면서 조직 보스 닉과 그의 하수인 중 한 명인 조지 러소라는 인물은 빌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화 읽는 중간에 뭐 좀 끼적거리는 거 잊지 마. 그 뭐냐. 캐릭터에 녹아들 수 있게. 맡은 배역에 걸맞게 살라고.”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공포 소설의 대가인 스티븐 킹의 새 소설 『빌리 서머스』는 초장부터 그가 70 중반의 나이에도 자신의 창작 영역을 계속해서 새롭게 넓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엔 하드보일드이다. 마치 레이먼드 챈들러 같다. 주인공 빌리 서머스는 챈들러의 소설 속 페르소나 필립 말로우를 닮았다. 챈들러이긴 챈들러이되 에밀 졸라와 토마스 하디를 섞는다. 독특하다. 인문(人文)의 여기저기를 뛰어넘고 다녀 딜레탕트들의 군침을 흘리게 한다. 예컨대 로널드 레이건의 외교 어록까지 들먹인다. 그는 고르바초프와의 핵 군축 협상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해서 배우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선입견을 깨부수었다. ‘신뢰하되 검증하겠다.’ 이 말은 나중에 두고두고 공화 민주 양 진영에서 사용됐는데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써먹었고 트럼프 시절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조차 써먹었던 말이다.

 

칼럼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은, 무릇 칼럼이라고 하는 것이 좀 재미있기도 해야 하는 데다 소설과 현실, 문학과 정치 그리고 외교의 경계를 여기저기 ‘뛰어 댕기는’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으면서 정치와 외교를 좀 문학적으로, 좀 교양스럽게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소리이기도 하겠다.

 

하루가 멀다 하고 ‘괴랄’한 사건이 터지고 엽기 발랄한 해석이 붙여진다. 가장 부강한 나라… 까지는 아니어도 어쩌면 삶의 만족도가 나름 나쁘지 않은 나라는 베르나르 피보 같은 서평 작가가 돈을 버는 사회일 수 있겠다. 이른바 뇌피셜을 동원해 온갖 요설들을 퍼뜨리는 정치평론의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일 수 없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스스럼없이 이 XX 저 XX 하는데도, 그렇게 그런 말이 입에 배 있는 인물인데도 사회 일부에서 그게 다 검사 시절의 말버릇이니 넘어가 주자라느니, 오히려 친근감의 표시라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서 실소가 아니라 실금을 할 뻔할 정도였다. 그것도 지식 연연하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이다. 이 땅의 3~40%의 인구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떻게 그러면서 집안의 청소년들에게 어디 가서 겸손하게 굴어라, 너보다 못한 사람들일지라도 막 대하면 못쓴다 식의 교육을 하겠는가. 대학 논문, 그것도 박사 논문을 해당 학과의 전공과목과는 무관하게 무속 비슷한 소재와 주제로 쓰면서도 여기저기서, 요즘 애들 말로 ‘복붙’해서 학위를 따고 온갖 강의를 다닌 사람을 탓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비호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대학 중간고사나 학기말 고사 리포트를 포털에서 베껴 내면 선생인 내가 다 아니 그런 짓 하지 말라고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거짓이 비호되는 세상은 우리 현대사에 일제와 일제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던 그 이후의 독재 시대 때이다. 지금이 그런 때인가.

 

좀 적당히들 했으면 좋겠다. 적당히들 해 ‘처’ 드셨으면 좋겠다. 표현이 과격하다고 느끼시는가. 이 XX 저 XX와 진배없다고 하실 셈인가. 그렇다면 말을 바꾸겠다. 좀 상식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과하겠다. 거친 표현을 사용해서 죄송하게 됐다고. 그러니 그분도 시원하게 사과하시라. 통 큰 분이라 자타칭 소문을 내신 것으로 안다. 사람들은 그걸 신뢰해서 뽑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몰랐던 것은 이제 서서히 진짜 검증에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레이건까지만이라도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뢰하되 검증할 것이다. 얼마나 멋있었으면 반대 정당까지 써먹었겠는가. 그 뭐냐. 캐릭터에 좀 녹아 들어서 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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