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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범의 미디어 비평] 이런 언론에 박수를


지난 2년간 매달 두 건씩 저널리즘 비평을 썼다. 아직 비평할 주제가 없어 고민한 적은 없다. 유사한 주제가 반복될 때, ‘또 다뤄야 하나?’를 고민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만큼 한국언론의 그릇된 관행이 고쳐지기 어렵다. 한 일간신문의 논설실장을 지낸 선배가 “한국만큼 미디어비평 거리가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저널리즘 비평의 성격상 비판적 관점에서 모든 칼럼을 썼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번 칼럼은 칭찬할 것들을 찾기로 했다. 


성찰하는 기자를 보면 고맙다. 지난주 한겨레신문 전광준 기자의 《‘법조기자단’에 있다는 것》이란 칼럼처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언론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 검찰조직 못지않은 법조기자단의 폐쇄성과 선민의식이 검찰과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입사 5년이 안 된 젊은 기자의 문제의식이라 더 반가웠다. 대한민국을 1년 넘게 뒤흔든 대장동 사건의 주범 김만배는 법조기자로 쌓은 인맥을 연결고리로 활용했다. 법조 권력의 감시자였어야 할 기자가 외려 법조 비호자였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언론 보도의 잘못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언론학자 글을 접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6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언론전문지 ‘신문과방송’ 12월호에 실린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의 미디어비평이 그렇다. 정치권의 물타기 억지 주장을 받아쓰고 객관주의라고 변명하는 언론 보도를 설득력 있게 꼬집었다. 취재원의 주장이 억지인 줄 알면서도 따옴표 형식을 빌어 기사에 그대로 반영한다. 균형을 맞췄다고 강변한다. 언론이 어떻게 ‘객관’과 ‘균형’을 왜곡하고 취재원에 이용당하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극소수 언론이 선도하고 있는 한글표기 캠페인도 반갑다. 혹평하면 언론의 우리말 사랑은 한글날 하루에 그친다. 신문은 이즈음에 한글 관련 행사나 세미나를 기사화하고, 방송은 텔레비전 수상기 오른쪽 상단에 표시되는 KBS, MBC를 ‘한국방송’. ‘문화방송’ 정도로 바꿔 표기한다. 광주문화방송이 이런 관행을 과감하게 떨쳐냈다. 올해 말까지 한글표기를 해오고 있다. 이게 그렇게 주목받을 일인가라고 반문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로쓰기가 우리 언론계에 정착되는 과정을 돌아보면, 광주문화방송이 큰일을 했다.       


1976년 한창기 선생은 잡지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하면서 가로쓰기를 했다. 당시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되면서 일간신문의 가로쓰기가 처음 시작됐고, 1995에 중앙일보가 뒤를 따르면서 일반화됐다. 


칭찬할 일이 세 사례만이겠는가. 클릭수에 매몰된 언론환경에서도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심층취재들, 외래어를 우리말로 고쳐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경기신문도 있다. 이런 언론과 언론인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들이 모여 신뢰가 쌓일 때, 독자와 시청자는 돌아온다.
언론인 여러분, 금년 한 해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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