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출구조사의 저주’가 반복됐다. 6·3 지방선거에서 주요 방송사의 서울시장 당선예측은 선거 결과를 크게 빗나갔다. 지상파 3사는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의 우세를, JTBC는 두 자릿수 격차까지 전망했지만 실제 승자는 1.12%포인트 차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였다. 경남지사 선거 역시 예측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경기도지사 선거는 ‘맞히고도 틀린’ 사례다. 26%포인트를 넘는 격차를 예측했으나 실제 차이는 15%포인트 수준에 그쳤다. 28억 원을 쏟아부은 ‘과학적 조사’의 성적표라기엔 초라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출구조사 예측이 과거보다 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최초로 대선 출구조사가 도입됐던 2002년,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맞붙었을 당시 KBS는 실제 개표 결과와 단 0.2%포인트, MBC는 0.5%포인트 차이로 당선인을 정확히 예측해 유권자들에게 소름을 돋게 했다. 이후 데이터와 통계기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선거 예측 저널리즘은 오히려 신뢰를 잃고 있다. 사전투표 보정 실패나 표본오차라는 상투적 변명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선거가 끝나도 혼란스러운 조사는 여전하다. 6월 2주 차 NBS 조사에서는 민주당 41%, 국민의힘 25%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했다. 6월 3일 아홉 번째 지방선거를 치른다.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14곳도 같은 날 치러진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언론 보도의 고질은 여전하다. 오히려 퇴행 기미마저 보인다. 주민의 삶을 바꾸고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할 선거가 언론이란 렌즈를 거치며 본질이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질의 첫 번째는 경마식 보도다. 수많은 여론조사 중 특정 조사만을 의도적으로 부각하며 '치열한 접전', '초박빙'이라는 타이틀로 선거판을 스포츠 중계처럼 전하고 있다. 현장 민심을 전한다는 르포 기사는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를 찾아내, 발언을 기사에 인용한다. 외형상 객관성을 확보했다는 착각을 줄 뿐, 실제 민심의 우선순위를 왜곡하고 유권자의 이성적 판단을 방해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언론은 지역 현안을 발굴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의제 설정(Agenda-Setting)을 해야 한다. 지난 4년에 대한 엄중한 평가는 필수다. 지방정부가 주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예산은 적절히 쓰였는지에 대한 검증은 찾기 힘들다. 그 결과 지역 선거는 중앙 정치의 대리전으로 둔갑했다. 한국 제조업의 심장부인 울산과 평택의 선거 보도
40년 지기 친구가 겪은 일이다.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정확히 읊으며 “카드가 배송 중”이라는 전화가 왔다. 신청한 적 없다고 답하자, 고객센터 번호까지 친절히 안내했다. 굴지의 대기업 카드사 이름을 판 신종 보이스피싱이다. 2025년 대한민국의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1조 1330억 원을 넘었다.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대치다. 교묘한 심리 조작과 정보 비대칭을 이용해 타인의 재산을 훔치는 이 비열한 사기 행각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우리 언론의 자화상을 비춘다. 독자의 클릭을 노리는 ‘어뷰징(Abusing)’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20년 전부터 지적돼 온 어뷰징은 이제 단순한 기사 복제를 넘어 ‘제목 장사’라는 교묘한 기만술로 진화했다. 2007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양준혁의 발언을 수십 개의 기사로 쪼개어 포털을 도배했던 행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자극적으로 변주되고 있다. 27일 TV CHOSUN ‘조선의 사랑꾼’에 출연한 가수 배기성의 기사가 전형이다. “8일 연속 임신 노력했다가... 배기성 3개월째 난청, 청각장애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포털 다음 메인을 장식했다. 선정적인 사진은 필수 옵
취재원의 SNS 발언이 언론을 거치지 않고 대중에게 곧바로 닿는 현실은 기자의 보도 관행과 언론사의 정파적 시선을 무력화하고 있다. 한때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로 여겨졌던 언론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은 이제 정보를 걸러주는 장치가 아니라, 보고 싶은 사실만 가공해 권력의 입맛에 맞는 프레임으로 포장하는 장벽으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엑스(X·옛 트위터) 게시물을 두고 벌어진 언론의 보도 경쟁은 그 붕괴의 단면을 보여줬다. 지난 10일 이 대통령은 국제 인권 침해 논란이 된 이스라엘군의 영상 한 편을 엑스에 공유하며 전쟁의 야만성을 비판했다.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호소하는 이 발언은 정치적 계산을 넘어 국제사회의 규범적 메시지였다. 그러나 국내 주요 보수 매체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조선일보는 “이스라엘군 아동 고문 주장 영상 공유한 이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냈다. 사설에서는 ‘2년 전 팔레스타인과의 교전 중 살해 영상’임을 부각하며 대통령의 경솔함을 꾸짖었다. 하지만 여기서 언론의 시선은 ‘영상의 연도’에 머물렀을 뿐, 그 안의 인권 침해라는 본질을 외면했다. 뒤늦게 월요일에 보도한 한국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 내부조차 비판 여론이 압도한다. 국제사회는 이 전쟁이 정당한 명분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주조다. 스페인은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분명했다.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영국 역시 이란 공습을 위해 자국 공군기지를 사용하게 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처럼 국제정치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한국 언론의 전쟁보도는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미국의 이란 공습 직후 신문들을 보면, 한국 언론의 전쟁보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응축해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자극적 제목과 단순화된 서사다. 조선일보 3월 2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트럼프, 단 한번 공습에 ‘37년 철권 통치’ 끝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차남 모즈타바가 권력을 승계했고, 전쟁은 장기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도한 단순화였다. 같은 날 5면 머리기사 ‘압도적 군사력으로 세계에 ‘FAFO’를 보여줬다’는 표현까지 제목에 등장했다. FAFO는 ‘까불면 죽는다’는 속어다. 전쟁은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초기 내란 수습과 경제 회복의 기세를 몰아 수도권 집값 난제 정면 돌파를 천명하고 나섰다. “15년 동안 안 먹고 모아야 집 한 채 살 수 있다”는 대통령의 신년 발언은 다주택자 양도세 면제 불가 방침과 맞물리며 여론의 뜨거운 쟁점이 됐다. 정책의 성패를 가를 공론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주체는 단연 언론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초 우리가 목격한 것은 권력을 감시하고 사실을 검증하는 언론의 모습이 아니라, 특정 이익집단의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복제하는 ‘확성기’의 모습이었다. 발단은 지난 2월 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배포한 보도자료였다. 영국의 이민 컨설팅 업체 헨리앤파트너스의 자료를 인용해 ‘한국 고액 자산가 2400명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해외로 유출됐다’는 자극적인 내용을 담았다. 연합뉴스·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도하의 수많은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부자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그것도 취재원이 요청한 2월 3일 12시 "상속세 60% 낼 바에 한국 떠납니다"(이데일리)류의 기사였다. 비판적 검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기사’들의 실체는 며칠 만에 처참하게 드러났다. 해당 보고서는 이미 2025
지난 1월 중순, 대한민국 사법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세 건의 재판 장면이 TV로 생중계됐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지귀연) 심리로 진행된 내란 사건 결심 공판에서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6일 형사합의35부(부장 백대현)는 대통령경호처를 동원해 수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1일에는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가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구형량인 15년보다 무거운 징역 23년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이 과정은 검사의 구형이 결론이 아니며, 최종 판단은 오직 법원에 있음을 상기시킨 귀중한 학습의 장이었다. 검사와 변호인은 주장을 펼치는 한 집단일 뿐, 종국에는 판사의 판결이 사건을 결정짓는다. 이 장면들은 한국 법조 보도의 고질적인 민낯을 드러내는 장이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법조 기자는 사실상 ‘검찰 출입 기자’와 동의어로 쓰인다. 수사 단계에서 검찰이 흘리는 정보는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을 통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검찰의 구형은 마치 확정판결처럼 소비된다. 반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거나 구형과 다른 결론을 내리면
해마다 1월이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소식이 언론을 도배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합뉴스 ‘미리보는 CES’라는 사전 기사가 나올 정도로 언론이 주목한다. 현대, LG, 삼성 등 국내 대기업들의 최첨단 제품들이나 기자회견이 언론보도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현대차그룹의 산업용 로봇 ‘아틀라스’를 비롯, 빨래를 개고 우유를 꺼내는 LG전자의 가정용 로봇 ‘클로이드’는 대부분 1월 7일자 1면에 주요 기사로 다뤘었다. 현대 LG와는 달리 눈에 띄는 전시가 없었던 삼성전자는 사장의 ‘자사 제품에 AI를 탑재하겠다’는 현지 기자회견 내용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대부분 언론은 대기업의 전시 규모와 총수의 행보에만 관심을 쏟고 올 CES에서 ‘혁신상’을 휩쓴 한국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체는 거의 외면했다. 그나마 세계일보가 ‘한국, 美·中·日 제치고 ‘CES 최고혁신상’ 휩쓸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을 가리지 않고 도표와 함께 상세하게 보도해 돋보였다. 세계일보는 미국소비자 기술협회가 뽑은 30개 최고 혁신상을 분석 이중 13개 한국 기업 출품작이라고
지난 6월 20일, 이재명 대통령은 농림축산식품부 신임 차관에 강형석 농업혁신정책실장을 지명했다. 연합뉴스는 ‘농업·농촌 전 분야 정책 경험이 풍부하고 현상 분석과 대책 수립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대부분 언론은 농식품부의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면서 농업 현장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지속가능한 농산어촌' 구축이라는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할 적임자라는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의 발표 내용도 빼놓지 않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혁신적인 정책통이라고 치켜세웠다. 반년이 지난 12월 8일. 서울신문은 “관가를 뒤흔드는 ‘투서 포비아’···농림차관 경질 뒷말 무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대통령이 3일 전 강 차관을 전격 면직하자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언론보도를 시간대별로 추적해 보면, 그 보도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한눈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서울신문은 강 전 차관 면직에 대해 다른 언론보다 다각도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기사는 저널리즘 윈칙을 크게 벗어났다. 무엇보다 기사 내용은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관가의 분위기보다는 그가 왜 새 정
‘현재 언론보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언론이 본연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종범(80년 TBC해직)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상임대표가 유튜브 방송 언시국TV 인터뷰에서다. “뉴스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이를 기반으로 수용자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분석을 해주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영리를 추구하는 언론이 주를 이루면서 언론의 이런 기능이 현격히 약화 됐다. 언론사간 경쟁이 격화돼 수용자를 끌기 위한 뉴스의 선정성이 심화됐다. 돈벌이를 위해 가짜뉴스까지 등장했다. 원가절감 때문에 TV는 질 낮은 대담프로로 채워지고 있다. 양비양시를 균형이라고 우긴다. 윤석열 지지자와 내란척결을 주장하는 국민들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우까지 범하고 있다. 민영언론의 영리 추구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공영언론이 소환되는 까닭이다. 공영언론이 요즘처럼 절실한 때도 없다. 윤석열 정부서 한전과 마사회가 지배주주로 있던 준공영방송 YTN을 졸속 민영화했다. 이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크게 부각된 것도 이런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YTN 지분 매각 등에 대한 조사와 감사’를 언급, 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