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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범의 미디어비평] 저널리즘의 제1 원칙, ‘검증’은 어디로 갔나?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초기 내란 수습과 경제 회복의 기세를 몰아 수도권 집값 난제 정면 돌파를 천명하고 나섰다. “15년 동안 안 먹고 모아야 집 한 채 살 수 있다”는 대통령의 신년 발언은 다주택자 양도세 면제 불가 방침과 맞물리며 여론의 뜨거운 쟁점이 됐다. 정책의 성패를 가를 공론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주체는 단연 언론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초 우리가 목격한 것은 권력을 감시하고 사실을 검증하는 언론의 모습이 아니라, 특정 이익집단의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복제하는 ‘확성기’의 모습이었다.


발단은 지난 2월 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배포한 보도자료였다. 영국의 이민 컨설팅 업체 헨리앤파트너스의 자료를 인용해 ‘한국 고액 자산가 2400명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해외로 유출됐다’는 자극적인 내용을 담았다. 연합뉴스·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도하의 수많은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부자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그것도 취재원이 요청한 2월 3일 12시 "상속세 60% 낼 바에 한국 떠납니다"(이데일리)류의 기사였다. 비판적 검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기사’들의 실체는 며칠 만에 처참하게 드러났다. 해당 보고서는 이미 2025년부터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 등에 의해 방법론적 오류가 지적된 자료였다. SNS 프로필 기반의 추정치일 뿐이었고, 정작 원문에는 상속세가 이민의 원인이라는 언급조차 없었다. 대한상의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데이터를 언론이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공인해준 셈이다. 결국 대통령이 SNS를 통해 “고의적 가짜뉴스”라며 질타하고서야 대한상의는 사과했고 기사들은 수정되거나 삭제됐다.


저널리즘의 바이블로 불리는 <저널리즘의 기본 요소>에서 강조했듯, 저널리즘의 제1 원칙은 ‘검증의 규율’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맥락을 짚어내는 검증은 단순한 정보 전달과 저널리즘을 구분 짓는 유일한 기준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한국 언론은 이 기초적인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재계가 던진 ‘상속세 인하’라는 프레임에 매몰돼, 그것이 공공의 통계인지 사설 기관의 마케팅 자료인지조차 가려내지 못했다.


더 뼈아픈 지점은 언론이 스스로 해야 할 검증을 ‘권력’이 대신했다는 아이러니다. 대통령의 지적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사실 확인에 나선 언론의 모습은, 우리 언론이 누구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부동산이나 조세 같은 전문 영역에서 언론이 비판적 질문을 포기하고 보도자료를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는 관행은 독자에 대한 기만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언론의 신뢰는 단순히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이해당사자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무능이며 방임이다. 보도자료 배포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숫자의 진실성이다. 만약 이번에도 언론이 “바빠서 확인하지 못했다”거나 “상의의 자료라 믿었다”는 변명 뒤에 숨는다면, 다음에도 똑같은 오보의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대한상의와 최태원 회장의 사과로 이번 해프닝은 일단락되는 모양새지만, 언론의 숙제는 그대로다. 스스로가 이해집단의 확성기였음을 통감하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의 미래는 없다. 보도자료가 도착했을 때 언론이 택해야 할 것은 ‘전송’ 버튼이 아니라 ‘의심’의 눈초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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