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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82. 역사의 땅 동두천(東豆川)

 

 

얼마 전까지 동두천시는 수많은 명승고적이 있어도 민간인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오지마을이 많았었다. 시 면적의 70.6%가 산간 지역인데다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보병 24사단이 주둔하면서 시 면적의 42%를 미군에 공여했기 때문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고 삼국이 세력다툼을 한 전략적 요충지였기도 하다. 조선 후기까지는 양주군 이담면(伊淡面)이었다가 1963년 동두천읍이 되었고 1981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미군의 주둔으로 교통, 음악, 음식, 패션 등 외국문화가 빠르게 유입되는가 하면, 군사적으로  여러 가지 규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동두천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되새김하고 담금질하면서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신천(莘川) 냇물이 북쪽으로 흐르는데, 감악산에서 발원하여 동두천시로 흘러든 뒤 강화천(江華川)으로 이름이 바뀌어 시내를 휘감아 돌며 동두천천(東豆川川)을 만나고 연천군에서 한탄강과 합류한다. 여러 지류들을 만나는데 송내천, 지행천, 상패천, 생골천, 연동천, 황매천, 안흥천, 소요천, 봉동천, 동막천, 복골천, 말뚝천, 탑골천, 왕방천, 쇠목천 상패천 등이다.
 
동두천 지명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연이 배어 있다. 동두천시 주변에는 소요산, 왕방산, 마차산, 국사봉, 해룡산, 칠봉산 등 6개의 산이 있는데, 특히 소요산은 산세가 수려해서 경기의 금강산이라 부르며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꼽힌다.

 

 

옛날부터 시인묵객들이 글을 남겼다. 원효대사가 관음보살과 친견하고 자재무애(自在無碍)의 수행을 했다고 하는 자재암(自在庵)이 있다. 자재암에는 세조 10년에 간행된 반야심경 한글 번역본이 있고, 태조 이성계가 말년을 보냈던 행궁 위치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왕방산은 고려가 건국할 때 왕이 친히 행차했다 하고, 조선 건국 후 왕자의 난 이후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다고 해서 王訪山이라 한다. 이 때 임금이 국수를 드셨다고 해서 큰 봉우리를 국수봉(국사봉으로 추정)이라 하고, 호위병들이 야영했던 산 아랫 동네를 호병골(護兵洞, 현 포천시)이라 부른다. 한편 고려 말에 이색(李穡)이 와서 은거하면서 국사봉(國師峰)이라 불렀고, 세조가 강무(講武)를 하러 와서 산 정상을 향해 활을 쏘았다고 하여 국사봉(國射峰)이라 했다.

 

 
마차산의 전설에는 김씨의 꿈에 자기 집 소가 마차산에 있는 설인귀(薛仁貴)의 비석을 감악산으로 옮겨 놓기에 잠을 깨서 외양간에 가보니 소가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다음날 마차산에 오르니 비석이 없어졌고 소 발자국을 따라가 보니 감악산이었고 그곳에 비석이 옮겨져 있었다.
 


해룡산은 이성계가 무예를 익힌 곳이었고, 조선 성종 임금이 어유소(魚有沼) 장군과 사냥을 하면서 무예를 익힐 때 이 산에 올랐다 해서 어등산(御登山)이라 한다. 어유소 장군은 세조 때 이시애(李施愛)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야인(野人, 여진족)들의 침입을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잘 막아냈다. 중국과 함께 건주위(建州衛)를 공격할 때는 중국군이 도착하기 전에 승리하여 공적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이시애의 난을 정벌할 당시 어유소 장군이 군사들에게 푸른옷을 입혀 풀과 같이 위장을 하고 작은 배에 태워 벼랑을 따라 올라 적의 배후를 공격함으로써 적군을 당황케 하였고 양방향에서 협공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세조가 "그대의 공은 오로지 우리 나라에서만 힘입은 것이 아니라 천하(天下)에서도 또한 힘입었다."고 하였다. 아버지 어득해(魚得海)와 어머니가 별세했을 때 모두 기복(起復) 되었다. 기복이란 상중에도 임금의 명을 받아 일을 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양주와 광주에 도적이 들끓었을 때 어유소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체포하였다. 어유소 장군의 묘가 동두천에 있다.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비(妃) 윤비도 동두천 출신이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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