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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국가가 종교를 언제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98. 교섭 - 임순례

 

영화 ‘교섭’은 일종의 ‘팩션’이다.역사적 사실에서 모티브를 가져 오되 그것을 극화하는 과정에서 픽션을 가미했다는 얘기다. 이런 팩션은 사실, 기획과 연출이 줄타기의 경지를 보여 줘야 하는 작품일 경우가 많다. 팩트(fact)를 어디까지 바꿀 것이냐 혹은 그 팩트를 어디까지만 보여 주는 것이 좋으냐를 놓고 매우 정교하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교섭’은 몇 가지 지점에서 여러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사실을 영화로 만들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발생했던, 경기도 분당 샘물교회 교인들에 대한 아프간 탈레반의 납치 사건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샘물교회를 깊숙이 다루지 않는다. 기획 단계에서(특히 기획자들의) 불필요한 종교 논쟁을 피하겠다는 의지가 작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극중 인물을 통해 두어 마디의 대사로 이에 대한 연출의 태도를 드러내는 정도다. 아프간 통역사 카심(강기영)은 이런 말로 짜증을 낸다. “그러게 (저 인간들은) 왜 이런 데를 와 가지고서는.”

 

 

‘교섭’이 보여주는 이 소극성은 사회정치적, 무엇보다 종교적 논쟁의 절충점을 찾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그 고심은 이해가 가지만 이 영화가 지닐 수 있었던 긍정적 폭발성을 의도적으로 지나치게 잠재웠다는 점에서 영화 전체의 족쇄로 작용한다.

 

팩션 드라마는 결국 자신의 정치적 태도를 명확하게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중립이란 어쩌면 그저 수사(修辭)에 불과한 것이다. 중립은 있을 수 없다. ‘교섭’이 요르단 올-로케이션에 여러가지 미덕을 지닌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이 잘 살지 않는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일부 대중관객들의 반응 중에는 ‘교섭’을 두고 재미가 없다. 긴장감이 떨어진다 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사실 영화는 서사 구조와 스텍터클 신이 비교적 정교하게 짜여 있는 작품이다.

 

서스펜스의 고조도 계산된 강도로 진행된다. 예컨대 주인공인 외교부 기획조정실장이자 교섭관(황정민)이 납치의 주범인 탈레반 지도자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짓는 장면 같은 것이 그렇다.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한미 공조를 통해 미군의 공군 폭격을 유도하며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한다. 탈레반의 은신처 바깥에서는 폭격과 굉음이 이어지고 안에서는 탈레반이 들이미는 총구의 위협이 이어진다. 이건 진짜일까? 진짜가 아니더라도 진짜처럼 찍어야 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진짜처럼 느껴진다. 고답적인 연출 장면이지만(이런 류의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이다) 진짜이든 그렇지 않든 진짜처럼 보이게 했다는 점에서 연출력, 연기 모두가 돋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 교섭관 옆에서 그와 경쟁하는 동시에 그를 돕는 국정원 요원(현빈)이 인질 협상 사기단을 상대로 액션을 펼치는 장면은 다소 지나치게 인공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건 다분히 현빈을 위해 연출이 의도적으로 만든 픽션이다. 실제로 그런 총격전, 액션 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적 접근상 그 같은 스펙터클 장면 하나 쯤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윤색은 용서가 된다. ‘윤색의 윤리학’에 그다지 어긋나지 않는다.

 

문제는 전반적으로 임순례의 정치적 태도가 밋밋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감독 스스로가 상당 부분 의도했다는 점에서, 영화 전체마저 밋밋하게 보이게 하는 치명적 한계점을 보인다.

 

임순례 감독은 평소의 뚝심 있는 태도와 달리 이번엔 다소 보신주의적 입장을 나타낸다. 임순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 점이 기이하게 보일 정도다. 투자와 배급을 맡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전작 중 하나가 ‘헌트’였다. ‘헌트’를 생각하면 ‘교섭’은 매우 몸을 낮춘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른바 샘물교회 피납 사건은 명백히 종교적 이기주의가 낳은 참극이었다. 강성 무슬림의 근원지인 탈레반 지역인데다 테러 발생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기독교를 전파하겠다는 무지가 낳은 비극이었다.

 

 

샘물교회 측 교인 23명은 세 차례에 걸친 정부의 간곡한 경고와 금지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몰래 제3국을 거쳐 아프간에 잠입했으며, 피납 11일 만에 정부의 인질 협상에 의해 구조됐다. 이 과정에서 담임목사 등 두 명이 살해됐다. 샘물교회 측은 교인들이 극적으로 구조된 이후 정부가 출국금지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며 일종의 직무유기로 고소하기까지에 이른다. 이쯤 되면 종교적 광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샘물교회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짜증에도 불구하고 당시 보수 언론들은 노무현 정부의 외교적 실책과 무능으로 공격하기 바빴다. 두 명이 살해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테러 집단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제1원칙을 어긴 점 때문에 사건 정리를 변변한 수준에서 해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인질 석방을 위해 탈레반 측에 막대한 돈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에서는 교섭관이 5000만 달러 요구를 2000만 달러에 협상을 성공시키는 것으로 나온다. 지금 돈으로 247억원 정도가 된다. 그런 팩트도 이 영화가 당시 사건을 심도 깊게 다루지 않은 ‘불편한 진실’의 한 축이다.

 

무엇보다 2007년의 샘물교회 사건이 2004년 한국 민간인이었던 김선일 씨가 이라크에서 저항 반군에 의해 납치 참수된 사건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당시 중동지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급박했던 분쟁사를 이야기의 줄기 중 하나로 다루지 않은 것도 ‘교섭’이 보여 준 아쉬운 점 중 하나로 거론된다.

 

‘교섭’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아마도 고난이도 첩보 정치 스릴러였을 것이다. 예컨대 스티븐 개건이 만든 2005년작 ‘시리아나’나 2008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바디 오브 라이즈’ 처럼 예민한 국제정치의 역학이 그려지는 드라마로 예상했었을 것이다.

 

 

임순례 감독은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치 않게 샘물교회 사건의 민감한 이슈, 그 역사성을 희석시키고 둔감하게 만들며 비교적 범상한 버디 영웅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데 주력한 것처럼 보인다. 일부러 잘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점에서 임순례로서는 가장 후일담이 많은 필모그래피의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지나친 폄훼는 온당치 않아 보인다. 영화는 그렇지 않은 척 사실은 그것이 다루는 주제와는 별개로 그것이 구현되는 시기의 정치사회적 공기(空氣)에 영향을 받는다.

 

‘교섭’은 지금처럼 굴절된 사회 분위기를 상대로 민감한 역사 이슈를 놓고 진짜 ‘교섭’에 애를 쓴 흔적을 보인다. 가장 근접해 있는 현대사에 대한 성찰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아야 할 영화다. 특히 우리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교회 문제를 이슈화 한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종교에 대해 국가가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 작품은 그런 문제 인식의 시발(始發)이지 착지가 아니다.

 

‘교섭’은 민감한 주제를 볼만한 드라마로 안착시킨 영화이다. 그 정도면 됐다. 영화가 어디 신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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