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데뷔 앨범을 낸 당시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10.26 이전 한창 방송국을 돌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끊어진 필름을 다시 잇고 싶은 그런 느낌이죠.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느낌이랄까요?"
세대와 나이를 초월해 사랑받아 온 가수 심수봉이 5년만에 10번째 신보 앨범을 발매하고 팬들 곁으로 돌아온다.
"주위에서는 제 노래들이 너무 비탄조라 듣는 사람이 심란해지고 기분이 처진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래서 `밝은 노래를 불러야겠다'하는 생각으로 앨범을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가족들과 떨어져서 미국 생활을 하다 보니 외롭고 힘든 부분이 알게 모르게 노래에 묻어 나오게 됐지요."
그래서 나온 노래가 `이별없는 사랑'이다.
"미국에는 숲이 많잖아요, 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을 바라보면 나무들이 한없이 이어졌어요. 내가 세상 끝에 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또 떠나 세상 끝에 있어요'라는 가사가 담긴 쓸쓸한 분위기의 곡이 나오게 됐죠."
이 앨범에는 `이별 없는 사랑'을 비롯해 심수봉이 직접 만들어낸 신곡 3곡이 실렸다. 그중 하나가 국악과 재즈를 접목해 동서양의 만남을 시도한 `남자의 나라'다.
"저희 남편은 이 노래를 듣고서 `이 판은 망했다'고 말하더군요. 우리 나라는 설날이나 명절 때 보면 남자들은 소파에 앉아서 TV나 보고 여자들만 일하잖아요. 미국은 남녀의 역할 분담이 참 합리적인데 말이죠. 그래서 다 같이 평등하면 좋을텐데 하는 소망을 담아 보았어요. 그런데 애절한 분위기로 여성적이고 순종적인 노래를 불러 온 제가 불러서 좀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네요."
밝고 경쾌한 스윙 리듬의 `러브 오브 투나잇'은 영어 가사도 살짝 들어가는 노래다. 또한 이탈리아 칸초네인 `사랑이 시로 변할 때'와 일본 가요인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을 직접 번안해서 불렀다.
이 앨범과 전작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음반 디렉터를 두었다는 점이란다.
"전체의 음반을 통일성 있게 가져가려고 실력 있고 인기 있는 작곡가 박근태씨와 손을 잡았죠. 아직 젊은 분인데 참 신통하다 싶을 정도로 잘 하더라고요."
이 앨범에는 박근태의 감각으로 록을 덧입고 태어난 `백만송이 장미'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등 히트곡이 실려 있다. `사랑밖에 난 몰라'는 특유의 깊이 있고 섬세한 음색이 피아노 선율과 조화를 이루면서 고급스런 발라드로 거듭났다.
또한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정미조의 `개여울',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도 그만의 음색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노래는 세대와 장르를 초월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 왔다. 데뷔곡 `그때 그 사람'을 비롯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미워요', `사랑밖엔 난 몰라' 등의 히트곡은 절절한 멜로디와 애절한 음색으로 한국인들의 심금을 울려 왔다.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 봤을 터. 그에게 인기 비결을 묻자 한참 생각하더니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히트해서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없이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회사와 계약 때문에 촉박하게 억지로 낸 앨범은 빛을 못봤거든요. 삶 안에서 진실하고 진솔하게 터져 나오는 메시지를 사람들도 함께 느끼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
흉내내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흉내내기는 무척 힘든 특유의 비음 섞인 음색도 인기비결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러나 정작 그는 "저는 무명시절부터 목소리 좋은 사람들을 많이 부러워했었어요. 제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해 본 적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를 흉내내고 제가 찬사를 받게 될 줄은 사실 몰랐어요"라고 한다.
트로트 가수로 한정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옛날 이미자, 조용필, 나훈아 선배님 등이 활발히 활동하실 때는 트로트는 곧 대중 가요란 의미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트로트 메들리가 나오고 우스꽝스럽고 천박한 창법이 들어가면서 좀 비하가 된 것 같아요"라면서 조금은 안타까워했다.
그는 새로운 도전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최근 1년 반 가량 뉴욕에 머물렀다. 고2가 된 딸이 엄마를 따라 함께 뉴욕으로 건너왔다.
"뉴욕은 모든 것이 있더라고요. 그 곳에서의 생활이 제 음악을 풍부하게 만들었어요. 재즈 아카데미도 다니고 개인 레슨도 받았어요. 그쪽 선생님들은 100%가 아니라 200%를 끄집어내 주더라고요." 무척 외로웠다면서도 미국에서의 경험에 만족스러워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 `그때 그 사람'이란 곡으로 참가한 이후 이듬해 이 곡이 담긴 데뷔음반을 내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양대 방송사의 신인가수상과 10대 가수상을 안겨주었지만 10.26이란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극복하기에 많은 세월이 필요하더군요. 10-15년쯤 지나니까 어느 정도 극복이 되더라고요. 25년쯤 지난 지금은 어떤 꿈속에서 표류한 뒤에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죠."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이후인 지난 1994년에는 회고록 `사랑밖에 난 몰라'를 발간하기도 했다.
"라디오 다큐멘터리 등에서 김재규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극을 만들면 저건 아닌데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그래서 제 육성을 대필한 책을 발매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문제가 좀 생겨서 일찍 절판되고 말았습니다."
신보를 내고 제2의 가수 인생을 시작하는 심수봉은 1979년 초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1979년 데뷔 앨범이 나왔을 때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져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거든요. 4-5개월 정도는 제 인생이 아니라 엉뚱한 삶을 산 것 같아요. 이젠 그 당시로 돌아가 다시 한번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심수봉은 오는 28-29일 오후 4시와 7시30분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어느 멋진 날'이란 타이틀로 4회에 걸쳐 단독 콘서트를 연다.☎1588-7890.
"디너쇼는 입장권이 비싸서 부담스러워 하셨던 분들이 많잖아요.이번에는 콘서트인 만큼 좀 더 역동적인 무대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같아요. 또 오랜만에 신곡이 나와 레퍼토리도 풍부해졌으니까요."
그는 소니사와 음반 발매 계약을 체결해서 일본에서 신보 앨범도 발매하며 내년 중반 이후부터는 일본에서 소극장을 돌며 공연도 가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