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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이 모든 소동은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다

 

격렬한 역사의 과정을 겪은 나라일수록 문화예술 작품들이 뛰어난 건 각 개개인들의 에피소드가 차고 넘칠 만큼 풍부하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어두운 역사를 겪은 사람들에겐 선악의 구분 선이 다소 얇을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 배신도 했고 한때 지나친 욕망과 오만으로 과도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자기 눈 앞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 탓, 비난을 하기에 정신이 없지만 예술, 특히 영화는 적어도 자기 반성 없는 비판은 하지 않는다. 영화가 종종 매우 중층적인 주제의식으로 선악이 모호한 결론을 내는 이유이다. 세상의 진실은 절대적일 수 없고 상대적이라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란 없다는 것이다라는 명제조차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 아들에게 학교폭력의 전력이 있음에도 모든 자식은 그 부모의 거울이라며 특정 개인을 향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근데 그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다. 자신의 자녀 역시 유학을 보내기 위해 이런저런 스펙 쌓기를 막대한 돈을 들여 ‘인공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의혹이 큰 상황임에도 오히려 특정 집안의 교육 방식을 범죄로 몰아 끝내 그 자녀의 모든 학위를 취소시키게 했다. 그러면서 그들을 범인으로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아직도 그들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벼른다. 근데 그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많은 사람들은 진작부터 그 사안이 지닌 ‘상대적’ 진실을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닿으면 지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 비례정당의 돌풍은 상대적 진실이 절대적 진실보다 늘 더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다.

 

언젠가 이 모든 소동, 만신창이 진흙탕 싸움은 모두 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 칠레 영화 ‘공작(Duke, 公爵)’을 보면 진정한 사회적 복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칠레의 현재를 배경으로 세기의 학살자이자 독재자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아직 살아 있으며, 그의 나이는 250살인데,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닌 드라큘라, 곧 뱀파이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피노체는 그가 평소 즐겨 입던 화려한 장군 복장과 큰 칼을 차고 사람들의 심장을 파서 피를 마시며 다닌다. 사람들, 민중들의 피를 빨아 먹는 것,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것은 학정 때인 옛날이나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공작’은 흑백영화로 화면이 주는 아우라(aura)는 매우 어둡지만 기이한 통쾌감을 준다. 칠레의 영화감독 파블로 라라인과 칠레의 관객, 칠레의 비극을 지켜봐 왔던 세계인들은 천수를 누리다 죽은 피노체트의 가슴에 이제야 비로서 십자가로 된 대못을 박는 심정이었다. 1973년 피노체트가 탱크를 몰고가 민선 정부의 대통령이었던 아엔데를 기관총으로 난사해 죽이고 정권을 찬탈했을 때도 프랑스는 바로 2년 후인 1975년 ‘산티아고에 비는 내린다’란 영화로 피를 토하듯 피노체트에게 분노를 표시했다. 앞으로도 몇 번이고 영화는 피노체트에게 복수와 분노, 회개와 반성, 사과를 요구하는 채찍을 휘두를 것이다.

 

그러니 한국의 정치인들이여 좀 더 예민하고 냉정해질지니. 모든 것이 기록에 남겨지고 있을 터이고 당신의 이름, 당신의 행동 하나 하나가 역사영화에 등장하게 될 것이로다. 후손에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라.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유치원 때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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