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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랬다지요. “백상예술대상을 한국이 싹쓸이했다면서?” 물론 우스갯소리일 겁니다. 얼핏 생각해도 비슷한 게 많으니까요. 이를테면,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 포스터를 보고 이렇게 물은 사람이 있었다지요. “어느 나라에서 데려왔데?” 그뿐이겠습니까. 선물 받은 티켓으로 공연을 감상했던 방청객의 소감은 또 어떻고요. “나쁘진 않은데, 가사가 없어서 아쉽더라.” ‘교향곡’에 ‘교양곡’을 오버랩한 우스갯소리라고나 할까요. 따라서 웃긴 했지만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나 역시 꽉 막힌 ‘막귀’에 ‘막눈’이니까요. 책에도 그렇게 적혀 있잖아요. 들은 만큼 들리는 것이 음악이고, 보는 만큼 보이는 것이 미술이라고요. 그러니 어찌 뜨끔하지 않았겠습니까. 듣고 보았던 게 형편없이 짧고 얕은 나로서는 도둑이 제 발 저릴 수밖에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들은 만큼 들리고, 보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나 역시 쓴 만큼 술술 써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작가라는 명함을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었을까? 부끄럽게도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글쎄요.”입니다. 나는 지금도 글을 쓰는 게 어렵고 힘이 듭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고르고 다듬는데도 숨이 가쁩니다. 어찌어찌 한 꼭지의 글을 써내고 나면 어금니가 먹먹하고 발가락 끄트머리까지 진이 빠지고 맙니다. 쓸수록 쉬워지기는커녕 쓸 때마다 눈앞이 깜깜합니다. 오금이 저리고 명치 끄트머리가 꽉 막힙니다. 삼십여 년을 글 쓰며 살았는데, 아직껏 이런 걸 보면 통 소질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꿈에서 기막힌 글을 썼습니다. 벅찬 마음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책상에 앉았는데 한 줄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허탈한 마음에 창문을 열었더니 안개에 덮인 새벽 네 시가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서늘한 기운 때문이었을까요? 내게도 언젠가 영원히 어둠에 덮이는 날이 달려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덜컥, 내려앉는 두려움과 함께 ‘오늘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슬픔과 감격이 묘하게 교차하며 벅차올랐습니다. 귓속을 맴도는 이명(耳鳴)도 자꾸만 흔들어 대는 어지럼증도 저어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고, 밤 다음은 어김없이 새벽입니다. 목에 잡히는 주름도 손등에 피어나는 검버섯도 감출 까닭이 없습니다. 그것들이야말로 온전히 낮과 밤을 겪어낸 ‘실로 빛나는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막귀’면 어떻고 ‘막손’이면 어떻습니까. 알면 어떻고 모르면 또 어떻습니까. 어찌 보면, 안다는 것은 ‘안다는 믿음’ 뒤에 가려진 모름 같습니다. 아는 게 티끌이라면 모름은 우주 같다고나 할까요. 세상은 내일을 모르고, 돈은 양심을 모르고, 정치는 국민을 모릅니다. 전지전능한 신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인지 팔레스타인 백성의 신인지 알 수 없고, 편을 나눠 두 나라에 무기를 실어 나르는 서구열강의 민주주의는 누구를 살리기 위한 민주주의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몰라도 그만입니다. 구태여 닮으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양심과 도덕 안에서 함께 살면 될 일입니다. 똑같이 입고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인스턴트처럼 같아질 수 없습니다. 나는 나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살면 그만입니다.

 

인스턴트는 편하고 빠르고 익숙합니다. 하지만 ‘인스턴트’를 최고로 꼽지는 않습니다. 인스턴트의 맛은 빤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당신도 오늘을 사는 그 누구도, 빤한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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