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강도 높은 ‘종합대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학교폭력이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이다. 더욱이 ‘킥보드 셔틀’은 물론, ‘카카오톡 빼앗기’, ‘딥페이크’ 등 신종 학폭이 급증하면서 학교 사회에 번지는 폭력 문화는 점점 더 지능화, 고도화하고 있어서 한걱정이다. 이쯤 되면 처벌만을 강화하는 채찍 요법만으로는 학폭 근절은 요원한 헛꿈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청소년 사회의 헝클어진 데카당(퇴폐·타락) 문화를 척결할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이들의 비뚤어진 가치관부터 바로잡을 특단의 대책이 갈급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 학교폭력 발생 건수는 총 6만 1400여 건으로 전년 대비 약 3500건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 경우 1만 6155건으로 학생 수가 많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국 시·도 중 가장 많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학생 또는 학부모가 학교에 신고한 건수만 집계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 학교폭력 사건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23년 7월 교육부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북 개정을 통해 강도 높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학교폭력 가해·피해 학생 즉시 분리 기간을 늘리고 가해 학생 강제전학 조치를 강화하는 등 정부의 강력 대책에도 학교폭력은 전혀 줄지 않은 것이다. 모든 학교급에서 학교폭력이 늘어난 가운데 특히 고등학교에서의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양상이다. 최근 개인정보를 약용한 불법 도박, 사기 거래 등 형태의 학교폭력이나 킥보드 셔틀과 같은 지능화된 ‘신종 학폭’이 폭증한 여파로 분석된다.
요즘 드러나는 학폭은 단순히 피해 학생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전통적 수준을 완전히 벗어났다. 피해 학생의 개인정보로 인증번호를 받아내어 도박 사이트 등 불법 사이트에 가입하는 데 사용하거나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피해 학생 명의로 아이디를 생성해 사기 거래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방식까지 구사된다.
‘킥보드 셔틀’의 경우 피해 학생 휴대전화로 전동 킥보드 이용 아이디를 생성해 킥보드를 이용하기도 한다. 킥보드 사용료 및 연체료는 모두 피해 학생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카카오톡 빼앗기’는 카카오톡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한 뒤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판매하는 형태의 신종 학폭이다.
뿐만이 아니다. 경기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10대 학생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딥페이크 불법 성착취물도 잘못된 성 관념에서 비롯된 범죄로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이 성착취물을 매매해 수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밖에 명품 옷, 가방 등을 빼앗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는 등 신종 학폭은 대부분 ‘금전적 이익’과 관련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학생 중에서는 ‘큰돈을 벌고 감옥에 다녀오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학생들도 있다”는 구자송 전국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의 증언은 할 말을 모두 잃게 만든다. 구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특히 요즘처럼 출산율이 낮은 시대에 태어난 학생들은 사회성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라며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인성교육과 경제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아이들을 이토록 타락하게 만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황금만능주의에 찌들어 퇴폐·향락 문화를 용인해온 어른들이다. 세계 최고의 황금만능주의가 범람하는 나라라는 지적에 반박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상이다. 어른들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이들을 배금주의(拜金主義)의 노예로 키우고 있는 현실을 치열하게 반성해야 한다.
남의 인생을 망치더라도,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천박한 가치관이 학폭 문화를 키운다. 학교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 가정이, 온 사회가 합심하여 모범을 보이면서 고쳐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 시절을 학폭 문화에 젖어 살아가는 불행한 아이들에게 밝은 내일이란 없다. 가해 학생은 못된 습성에 빠져서 줄곧 타락해갈 것이고, 피해 학생은 평생 트라우마에 묶여서 암울한 정신세계를 헤맬 것이다. 범국가적, 범사회적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악한 학폭 연옥에 빠진 아이들을 이대로 두고서야 이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