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책과 집값 안정화 정책이 충돌하며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출산 장려와 주택 지원을 위해 시행한 디딤돌 대출 확대 정책이 오히려 가계 부채 증가와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31일 국토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주택 가격이 지목됐다. 주택 가격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30.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첫째뿐만 아니라 둘째 자녀 출산을 고려할 때에도 주택 가격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디딤돌 대출 확대, 신생아 특례 대출 도입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수도권 집값이 오르면서 무주택 서민들 사이에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수요가 급증했고, 올해 들어 디딤돌 대출 잔액도 큰 폭으로 증가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디딤돌 대출은 연 소득이 낮은 무주택 서민이 5억 원(신혼은 6억 원) 이하의 주택을 구매할 때 최대 2억 5000만 원(신혼은 4억 원)을 낮은 금리로 지원하는 상품이다. 정부는 해당 대출에 적용되는 신혼부부의 연 소득 기준을 지난해 7000만 원에서 8500만 원으로 확대하며 결혼을 장려하고자 했다.
신생아 특례 대출은 대출 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생한 아동을 둔 가구에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올해 1월 도입된 이 대출은 신생아 가구를 지원하기 위해 설계됐지만, 결과적으로 집값 상승을 가속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신생아 특례 대출 잔액은 올해 초 1976억 원에서 최근 4조 7793억 원으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곤두박질쳤다는 사실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더욱 부각시켰다. 결국 정부는 지난 4월 이 대출을 신청할 수 있는 부부의 연 소득 요건을 연내 1억 3000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두 달 만인 6월엔 이 소득 요건을 내년부터 2억 원에서 2억 5000만 원으로 더 올리겠다고 또 한 차례 수정했다. 하지만 가계대출 급증에 대한 우려로 아직 신생아특례에 대한 소득 요건 완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올해 7~8월에는 집값 상승률이 폭증하며 신혼부부와 청년층의 ‘영끌’ 현상이 일어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 시기에 출생아 수가 두 달 연속 2만 명대를 기록하며 증가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가 집값 상승으로 인해 신혼부부들이 조급하게 집 구매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출산을 앞두거나 출산을 계획하는 신혼부부 등이 오르는 집값을 보면서 더 늦기 전에 영끌 행렬에 참여한 영향이 컸다”며 “수도권에선 정부가 올해 도입한 신생아특례대출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에는 미미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가계 부채 증가와 집값 상승이라는 부작용만 키웠다는 지적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14일 KB국민은행을 시작으로 시중은행에 디딤돌 대출 취급을 일부 제한할 것을 요청했고, 주요 은행들이 규제를 예고하면서 서민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자금 계획을 미리 세운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자 국토부는 18일 잠정 유예했지만, 23일 비수도권 제외 입장을 밝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저출산 문제와 집값 안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역효과를 내고 있다"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다 효과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