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후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윤석열 대통령이 결국 ‘내란수괴’ 혐의로 체포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압송됐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이 체포된 것은 처음이다. 15일 오전 10시 33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됐다. 공수처와 경찰은 이날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게 체포·수색영장을 제시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영장을 집행했다. 그리고 약 5시간 20분 만에 대통령을 체포해 공수처로 압송했다.
지난 3일 1차 체포영장 집행 때 거세게 저항했던 경호처의 대응은 당시와는 달랐다.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청구된 까닭도 있지만 체포영장 집행 실패로 인해 국민들이 피로 빚어낸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헌법이 부정당하고 있다는 여론, 그리고 위법으로 인한 처벌의 두려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차 체포영장은 지난해 12월 31일 발부됐다. 그러나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계엄령을 선포해 국민을 불안에 빠트리고 경제와 외교 등 모든 분야를 나락으로 밀어 넣은 ‘내란 수괴’ 윤석열 대통령은 체포를 거부했다. 국민들은 법을 잘 아는 대통령이 공권력을 무시하고 체포영장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전 세계 사람들도 이 황당한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과 변호사들도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무도한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오마이뉴스는 체포영장 집행 유효기간 마지막 날인 6일, 관저 앞에서 ‘인간 방패’를 형성했던 국민의힘 의원 45명 중 영남 의원과 비례대표가 35명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을 ‘공천이 당선으로 직결됐거나,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라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괴이한 일도 벌어졌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백골단’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백골단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몰랐던 것인가? 이들은 민주주의의 적이었다. 이승만 정권 때는 이승만과 자유당 독재정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 깡패’들이었다. 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엔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학생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잡아간 무술 경찰 체포단이었다. 당시 민주화 시위를 하던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성균관대생 김귀정 씨도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백골단은 ‘인권탄압’ ‘국가폭력’의 다른 말이었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던 우리 앞에 윤석열을 지키겠다는 청년들이 백골단을 상징하는 흰색 안전모를 쓰고 나타난 것이다.
끝까지 구차했다. 한 국가의 대통령답지 못했다. 계엄령 선포라는 중범죄를 저질러 나라를 혼란에 빠트려 놓고, 국민들을 양극으로 분열시켰으면서도 뻔뻔했다. 관저 앞 지지자를 향해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자기를 지켜달라고 읍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기신문은 지난 6일자 본란 ‘자진출석이 더 나은 모양새 아닐까?’ 사설을 통해 ‘비참한 생존자’가 아닌 국가 수장답게 당당하게 출석에 응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러면서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됐던 사람이 저렇게 치졸하고 비열하게 버티는지. 빨리 나와서 체포에 응해야 된다”는 한 시민의 말을 전했다. 사실 국민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은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법과 원칙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체포되기 직전까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무너졌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법을 무너트린 게 본인이라는 것을 진정 모르는 것인가? 어찌됐건 체포가 집행됨으로써 무의미한 농성은 끝났다. 이제 엄중한 법의 심판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