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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특집] 下. 바람이 지나가고 아이들은 웃는다…죽화초 '숲놀이터'의 풍경

함께 그린 숲, 행정과 상식의 경계를 넘다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 느꼈어요"
디지털 세상을 벗어나 감정 회복의 기회를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 숲도 자란다

전국 학생 약 3분의 1이 교육을 받고 있는 경기도는 대한민국 교육의 중심지라고 부를만하다. 경기도교육청은 '자율·균형·미래'라는 기조 아래 체계적 공교육 체계 구축과 맞춤형 교육 확대를 목표로 학생들에게 부족함 없는 교육을 펼치고 있다. 경기신문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을 실현해나가고 있는 도교육청만의 특별한 교육 정책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바람이 잎사귀를 흔드는 소리에 아이들이 고개를 든다. 누군가는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로 길을 만들고, 누군가는 바위에 앉아 친구를 기다린다. 안성 죽화초등학교 뒷산에 조성된 숲놀이터는 놀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이곳은 시소도, 미끄럼틀도 없다. 그 대신 오래된 나무뿌리와 고사목, 자연 바위와 밧줄이 아이들의 손을 타고 놀이 기구로 바뀐다. 

 

"학교 뒷산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숲놀이터의 시작은 교사들의 작은 물음에서 출발했다. 죽화초 교사들은 학교 뒤편의 숲을 아이들과 함께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아이들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아이들은 토의하고, 그림을 그리고, 자신만의 상상을 보탰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가 꿈꾸는 숲 교실'은 어느새 현실이 됐다.

 

 

◇ 함께 그린 숲, 행정과 상식의 경계를 넘다

 

그러나 행정은 상상만큼 유연하지 않았다. 정해진 규격, 인조 구조물 중심의 예산 지원 틀은 '자연 그 자체를 놀이의 재료로 삼겠다'는 구상과 충돌했다.

 

숲의 고사목을 정리하고, 위험 수목을 손질하는 작업부터 쉽지 않았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공간 설계, 인조 구조물이 아닌 자연 그 자체를 놀이 재료로 활용하겠다는 시도는 기존의 행정적 틀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예산, 안전, 규정 하나하나가 벽이었다.

 

하지만 숲밧줄놀이 연구회, 수목관리 전문가인 아보리스트 협회 등이 힘을 보탰다. 고사목을 정리하고 위험 수목을 가지치며 숲은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지금의 숲놀이터가 만들어졌다.

 

아이들의 상상과 교사의 철학, 지역사회의 협력까지 많은 전문가들의 재능기부와 학교 구성원의 협력이 모여 죽화초 뒷산은 아이들을 위한 살아 있는 배움터로 바뀌기 시작했다.

 

 

◇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을 느꼈어요"

 

죽화초 6학년 정혜주 양(13)은 "미끄럼틀도 없고 모래사장도 없어서 좀 이상했다"면서도 "숲놀이터는 지낼수록 점점 더 좋아졌다"며 숲놀이터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낯선 감정을 고백했다. 

 

숲놀이터에서의 하루는 흙을 밟고, 나무를 오르고, 동물들과 인사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말수가 적던 친구들도 점차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고 학년이 달라도 금세 이름을 부르며 어울렸다.

 

학생들은 숲의 생명들과도 가까워졌다. 작은 새, 다람쥐, 토끼, 닭, 돼지…. 모든 것이 친구가 됐다.

 

정 양은 "풀잎 사이에 앉아 작은 벌레를 구경하다 보면, 자연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 마음속 깊이 들어온다"며 "나무에 기대 앉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볼 때,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불어온다. 그 순간 학교에서 힘들었던 일이나 속상했던 일들이 모두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고는 한다"고 전했다. 

 

 

특히 "숲 밧줄을 잡고 건너갈 때는 처음엔 무서웠지만 친구들과 '할 수 있어!'라고 외치며 용기를 냈다"며 "짚라인을 탈 때는 바람이 얼굴을 시원하게 스치며 지나가서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트리클라이밍을 하며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내려다본 숲의 모습은 잊을 수 없을 만큼 멋있었다는 감상도 전했다. 

 

정 양은 "숲놀이터는 우리 학교의 분위기도 바꿔 줬다"며 "교실에서는 조용하던 친구들과 동생들이 숲에서 웃으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에게 숲놀이터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자 진짜 웃음을 찾게 해 주는 고마운 곳으로 자리잡고 있다. 

 

 

◇ 디지털 세상을 벗어나 감정 회복의 기회를

 

박상철 죽화초 교장은 "지금 아이들에게 '숲놀이터'는 선택이 아니라 필요"라고 말한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관리되는 놀이는 아이들의 삶과 맞지 않다. 팬데믹을 지나오며 많은 아이들이 교실에 머물렀고, 감정을 표현할 기회는 줄어들었으며, 놀이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 세계로 옮겨갔다.

 

디지털 속에서만 관계를 맺던 아이들에게, 직접 손으로 흙을 만지고 몸으로 부딪히는 숲 놀이는 감정 회복의 기회가 됐다.

 

이처럼 숲놀이터는 디지털 세계의 반대편에 있다. 정해진 답도, 미리 짜인 규칙도 없지만 아이들은 직접 규칙을 만들고, 갈등을 해결하며 놀고, 자연물을 창의적으로 활용한다. 고정되지 않은 재료가 아이들의 사고력을 자극하고, 온몸을 쓰는 활동은 정서적 회복으로 이어진다.

 

"놀이가 곧 교육이고, 놀이터가 곧 배움터인 시대. 그 중심에는 자연과 연결된 숲놀이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 숲도 자란다

 

죽화초는 숲놀이터를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가는 유기적 장소'로 바라본다.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생태 교육과정을 넓혀가며, 정원·텃밭·동물농장 등으로 연결된 통합 생태교육을 이어갈 계획이다.

 

계절이 바뀌면 놀이의 질감도 달라지고 같은 공간이라도 연령과 감수성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 숲이 살아 있다는 것은 놀이도 고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박상철 교장은 조언한다. "숲놀이터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상상하고, 만들고, 규칙을 세우고, 그 안에서 노는 모든 과정이 이미 교육입니다."

 

 

숲놀이터는 결코 한 명의 교사만으로 만들 수 없다. 교사 간 협력, 지역사회와의 연결, 행정의 유연성이 함께해야 진정한 교육의 공간이 완성된다. 죽화초는 이를 몸소 증명해냈다.

 

교사들은 말한다. 죽화초의 숲놀이터가 앞으로도 자연의 흐름에 맞춰, 아이들의 감수성과 속도에 맞춰 계속해서 진화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바람이 흔들면 잎이 움직이고, 아이가 웃으면 숲이 들썩인다. 죽화초 숲놀이터는 오늘도 아이들의 일상과 호흡하며 자라나고 있다. 나무와 아이, 그리고 교사가 함께 꿈꾸는 속도로.

 

*이 기사는 경기도교육청 협찬으로 진행됐습니다. 

 

[ 경기신문 = 박민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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