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감사하게도 바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저런 일정이 촘촘히 이어지면서, 말 그대로 ‘휴일 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피곤하다고 말하면 사치처럼 들릴까 조심스럽지만, 사실 가장 큰 고민은 딱 하루쯤 텅 빈 휴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각한 건 아니고 단지 잠깐, 아주 잠깐만 나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다.
이런 감정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한두 번쯤 ‘번아웃’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번아웃(burnout)’은 원래 물리적인 용어다. 불에 타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상태, 혹은 연료가 고갈된 상황을 의미했다. 이 단어가 심리적, 직업적 맥락에서 쓰이기 시작한 건 1970년대다. 미국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루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찰한 만성 피로, 무기력, 냉소적인 태도를 묘사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번아웃을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탈진 상태"라고 정의한다.
과거에는 특정 직군, 예를 들면 교사나 간호사, 예술가처럼 감정 노동 강도가 높은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번아웃이 온 것 같다’ 라는 말을 주변에서 종종 듣게 된다. 그래서, 번아웃이라는 말은 지친다는 말보다 더 깊이 체감되는 피로의 표현처럼 들린다.
문제는 이 감정이 곧잘 개인의 무능이나 게으름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일을 조금 줄이거나 쉰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사치처럼 느껴지고, 재충전의 시간이라기보다 뒤처지는 듯 느껴진다. 일을 끝내고 남는 여가 시간에도 운동이나 자기계발, 부업 등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요즘 같은 시대엔 쉼은 종종 실패처럼 여겨진다. 아프다고 말할 용기보다 ‘힘들다’고 말할 용기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지쳤다는 건, 애썼다는 증거가 아닐까. 무언가에 진심이었고, 꾸준히 임했고,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탈진한 것이다. 그러니 번아웃은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열정적으로 일했다는 증거다. 오히려 아무런 애착도 없고, 아무런 욕심도 없던 사람은 번아웃을 겪지 않을 것이다. 타오른 적이 없던 사람은 꺼질 일도 없을테니까.
즉, 번아웃은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는 오지 않는다. 번아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당신이 진심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몰두해왔다는 증거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쓰러질 듯한 순간도 있겠지만, 그 속에서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삶이란 원래 완벽하지 않으며, 흔들리고 무너지기도 하는 여정이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으랴. 마치 번아웃이 온 것 같이 힘들다면, 내 스스로가 더 이상 해낼 수 없다는 신호가 아니라, 열심히 흔들리고 있다는 자연스러운 징표일 수 있다. 내 안의 불꽃이 잠시 잦아들었을 뿐,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불씨는 우리 모두의 안에 있다.
그러니, 힘겨움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길 바란다. 당신의 그 힘겨움과 고단함 역시 의미 있고 소중한 여정의 일부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