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락파, 셰르파족은 태어난 요일에 따라 이름이 정해진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수요일에 태어난 당신은 ‘락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죠. 수요일에 태어난 당신, ‘락파’라는 이름은 아름답고 신비로웠습니다. 그 이름 앞에 잠시 머뭅니다. 무더위에 지친 밤이었어요. 설산을 바라보며 서 있는 당신의 깊은 눈빛에 이끌렸죠. “마운틴 퀸: 락파 셰르파”라는, 당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였습니다. 여름에 설산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벌써 저만치 달아나는 것 같았어요. 차가운 풍경이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상상조차 못 했던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락파, 당신의 아름다운 이야기가요.
당신은 낡은 관습을 거부했습니다.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원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늘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여자에게는 금지된 짐꾼이 되기 위해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산을 올랐죠.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제 비밀스러운 삶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하는 당신을 보며 내 가슴이 쿵쿵 뛰었어요. 비밀이란 말을 이토록 아름답게 쓰는 당신을 ‘문맹’이라고 무시한 사람들은 정작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거지요. 자신을 상냥하고, 사랑이 많은 여자이며, 평화로운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당신의 모습은, 태양이 비추는 설산처럼 눈부셨습니다.
셰르파족은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관광객을 설인이라고 여겼다지요? 낯선 존재에 대해서 갖는 두려움은 당연한 거겠지요. 더구나 문명의 반대편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런 두려움이 더했을 것 같아요. 당신이 삶에서 겪은 고통이 그 거대한 설인이었다는 것을 이제 당신은 알게 되었지요. 그중에서도 당신을 가장 아프게 한 남편이 설인 같았다고 고백할 때는 제 마음도 아렸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몸부림치며 열 번째 오른 에베레스트 정상은 기록을 넘어서는 위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당신의 등반은 정복이 아니라 기도였어요. 정상을 향해 걷는 길에 극심한 생리통을 앓는 모습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또 하나의 고통을 마주했습니다.
‘셰르파’라는 말에는 고단함이 서려 있습니다. 우리는 ‘셰르파’를 짐을 나르는 사람 또는 안내자 등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 일에 ‘숭고하다’는 말을 붙이는 건 고통을 성스럽게 미화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요. 셰르파족으로 태어나 여성 등반가가 된 당신의 삶은 셰르파의 세계를 뚫고 나온 사람이라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운명과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여성들을 위해서 산에 오른다고 했어요.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 위해 거칠고 험한 산을 오른다는 목표가 얼마나 선한 것인가요. 자연을 사랑하는 락파, ‘이게 나예요’라고 말하는 당신 힘의 원천은 사랑이겠지요.
락파, 당신은 셰르파예요. 에베레스트를 열 번이나 오르고 K2 등정에도 성공한 등반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셰르파입니다. 셰르파족으로 태어나 셰르파의 삶을 사는 락파! 차별받는 여성들과 힘없고 연약한 존재들,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의 희망의 증거자이며 안내자가 되었으니, 당신은 진정한 셰르파로 돌아온 것입니다. 락파, 당신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알게 되어 기뻐요. 당신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서 결국 사랑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이 지나온 그 많은 어둠이 당신이 딛고 선 에베레스트처럼 빛나기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락파, 나약한 자리에서 당신께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