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해외연수의 본래 목적은 정책 연구와 국제 교류를 통해 지방자치의 수준을 올리는 데 있다. 지방자치의 핵심 기능을 하는 지방의원들이 선진 지방자치를 견학하거나 견문을 넓히는 일은 나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엉터리로 이행되는 지방의회의 해외연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고질병은 방치돼서는 안 된다. 시스템을 철저하게 개선할 방안을 찾지 못해 아예 해외연수를 폐지한 지방의회도 있다. 경기도 내에서 혈세를 쓰는 지방의회 해외연수가 아직도 엉터리로 시행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경기신문 취재결과 화성특례시의회에서 ‘해외연수는 의원이 하고, 보고서 작성의 주체는 직원들이었다’는 사실이 내부 증언을 통해서 확인됐다. 지난 2일 화성특례시의회 경제환경위원회 3차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회에서 위원장이 한 “공무국외출장 보고서 작성은 의원들이 직접 작성하고 자료 정리나 일정 요약 등은 직원이 보조하는 역할만 한다”고 한 말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화성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경제환경위원회·문화복지위원회·도시건설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달에 독일, 호주, 일본 공무출장을 다녀왔다. 이런 가운데 경제환경위원회는 다음 달에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 상하이·항저우 공무출장을 또 떠난다. 지난달 다녀온 출장 보고서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새로운 출장이 확정되자, 직원들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직원들이 ‘연수 보고서 대필’과 ‘의전 업무’를 동시에 떠안으며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형식적으로는 ‘보조 인력’이지만 실제로는 연수의 성과보고까지 책임지고 있는 셈이어서 조직 내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회 사무국 직원은 “출장 후 의원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보고서를 직접 작성하지 않았고, 직원들이 초안을 만들어 의원에게 결재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사실상 전면 대필에 가깝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사무국 내부에서는 ‘연수는 의원이 다녀오고, 보고서 작성은 직원들이 정리한다’는 자조 섞인 불만마저 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시의회 직원도 “일부 의원은 연수 목적도 불분명하고 준비도 부족한 상태로 출국하는데 현지에 가서는 직원에게 모든 일정·보고 정리를 맡긴다”며 “보고서 대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 자체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공적 예산으로 진행된 해외 출장의 보고서가 의원의 손으로 작성되지 않았다면, 이는 명백한 책임 회피이자 행정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의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지방의회의 해외연수는 숱한 잡음을 일으키면서 혈세 낭비·외유성 논란·부정행위 등 사회적 비판을 받아왔다. 반복되는 대표적인 문제점은 ‘예산 부풀리기·부정행위’, ‘보고서 부실·목적 불명확’, ‘외유 논란으로 주민 신뢰 저하’ 등을 꼽을 수 있다. 개선책으로 ‘제도 혁신’이 계속 요구돼왔지만, 한계가 있어서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는 제도 폐지나 강력한 통제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화성특례시의회의 해외연수는 그동안에도, 공무에 바쁜 시청 간부 공무원들이 해외연수 의원들을 환송하러 나가는 관행 등으로 ‘과잉 의전’, ‘갑질 폐습’ 등의 논란을 빚어왔다. 무슨 코미디 상황극 제목도 아니고, ‘연수는 의원, 연수 보고서 작성은 사무처 직원’이라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본인들은 공짜 관광을 실컷 즐기고, 자기들이 열심히 일한 것처럼 꾸미는 작업은 애먼 직원들에게 맡기는 관습이 가당키나 한 작태인가.
아무리 굳어진 관행이라도 상식적이지 않은 것들은 청산되거나 개혁돼야 한다. 후진국들이 숱하게 선진지 견학을 오는 나라에서 뭘 배우겠다고 지방의원들이 앞다퉈 비행기를 타는지 모르겠다는 시중의 날 선 비판을 허투루 듣고 흘려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