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종전 30주년을 맞았다. 1964년 통킹만사건이 일어나고, 1965년 미군과의 첫 교전으로 베트남전쟁은 시작됐다. 같은 해 우리나라는 청룡과 맹호부대, 1966년엔 백마부대까지 파병해 사실상 미군의 대리전을 치르면서 나쁜 의미로는 악연, 좋은 의미론 인연을 맺었다.
문제는 전쟁 결과다. 미국은 월맹군을 무찌르지 못했다. 197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철군을 공식선언하고, 월남전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해 1월 필자는 베트남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포공항을 떠난 공군 수송기로 8시간 비행 끝에 필리핀 크라크 공군기지에서 일박하고, 이튿날 사이공 공항에 도착했는데 당시 공항의 긴박한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전투기, 수송기, 헬리콥터, 대소형 정찰기할 것 없이 날개 달린 것들이 모두 분초를 다투며 뜨고 내리는 바람에 공항은 붉은 먼지로 자욱했고, 엔진음은 고막을 찢을 듯이 요란했다. 당시 주월군 사령관은 채명신 후임으로 막 부임한 이세호 중장이었다.
채명신은 월남전의 영웅으로 불리울만큼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차기 대통령 감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대권 소문 때문에 군복을 벗게 되었다는 것이 세평이었다.
주월군 전부대를 방문 취재하면서 만난 파월 장병들은 하나 같이 용맹스러웠으나 전쟁의 공포와 죽음의 두려움만은 역력했다. 베트공이 파놓은 구절양장 같은 땅굴, 귀신이 곡할만한 함정과 덫, 전인미답의 정글을 자유자재로 출몰하는 월맹군과 대적하기엔 평야지대에 익숙한 우리 젊은이들로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취보다 더 아름다운 남태평양, 섹시한 아오자이 차림의 젊은 여인들, 정오가 되면 아무데서나 누워자는 낮잠, 물결치는 오토바이 행렬까지 월남은 예나 지금이나 낙천(樂天)의 나라다. 그리고 미래가 약속된 번영의 땅이기도 하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