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9일 경주 APEC 계기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추진 잠수함(이하 원잠) 문제가 공개적으로 제기되면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핵연료 공급 요청에 대해,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한미동맹의 바탕 위 원잠 건조 승인, 그것도 미국내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으로 받으면서 다양한 논점이 제기되어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국제 비확산 규범과 관련해 민감한 이 문제를 한국이 거론한 것은 원잠에 대한 나름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잘 알려졌듯 원잠 보유는 해상 전력 확보 차원에서 참여정부 때 제기된 해묵은 현안이지만 당시 구체적으로 진전되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 간 미국 원잠 구매에 관한 협의도 미국방부 등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미 세계 최고의 원전과 재래식 잠수함 건설 능력을 갖고 소형모듈 원자로(SMR) 등을 선도적으로 개발해 온 한국으로서 자체 건조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원잠 연료는 농축 우라늄이다. 세계적으로 미·영의 원잠은 90% 이상, 러시아는 20~50%의 고농축 우라늄(HEU), 프랑스와 중국은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LEU)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2015년에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20% 미만의 저농축이 허용됐지만, 실제 농축을 위해서는 미국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하고 군사적 이용은 금지되어 있다. 만약 미국의 승인 하에 미국형 원잠을 건조한다면 90% 이상의 무기급 HEU가 필요한데, 이는 우리 스스로의 농축 기술을 활용하지 못한 채 미국 핵연료 공급에 절대 의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원잠의 미국내 건조는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 그 경우 독자 역량에 의한 원잠 건조가 아니라 미국의 기술지원과 부분적 공동생산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정부 관련 부서의 입장을 고려할 때 기술 및 생산지원 각 단계에서 매우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민간선박 건조 전문인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한다면 생산시설 확충에 걸리는 만큼, 혹 미국내 기존 원잠 조선소를 활용한다면 그들의 비효율적 건조 시스템으로 인해 기간이 늘어나고 자칫 중단될 위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국방 소요가 아니라 미국 원잠의 스펙이 기준이 될 수 있어 우려된다.
첨단 무기체계를 도입하면 자율적 운용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F-35 전투기 등 하이테크 군사장비의 대외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까다로운 보안 기준을 설정하고 있어 체계 업그레이드 때마다 승인받기 쉽지 않다. 원잠도 건조 이후 운용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제한이 걸릴 수 있다. 한반도와 주변 수역에 대한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통제가 이같은 기술적 문제로 자칫 애로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초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자체 개발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잠수함 핵연료 공급 협의의 진전을 통해 자주국방의 토대를 더욱 튼튼하게 다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전작권 전환과 함께 한국형 원잠을 보유한다면 우리의 국방을 스스로 지켜 나간다는 오랜 꿈에 성큼 다가서게 된다. 핵개발 논란은 피하면서, 사실상 전략무기인 원잠 확보를 통해 지역 평화에 주도적으로 기여하도록 재래식 억제능력을 크게 강화할 기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