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여 년 전 맹자가 왕도정치를 확립하고자 전국순회를 나섰다. 맹자는 대중연설에도 뛰어 났고 상대를 설복, 그의 주의주장을 보광(普光)하는데도 남달랐던 현인이었다.
맹자는 첫 기착지인 양나라의 서울 하남성 개봉부에서 혜왕(惠王)을 만나 인의(仁義)정치를 역설했다. 맹자를 만나자 양 혜왕은 연못가의 크고 작은 기러기와 사슴을 돌아보고 말했다. “어진 이도 이러한 것을 즐깁니까”라는 물음에 맹자는 “어진 이가 된 이후에야 이러한 것을 즐길 수가 있다”고 말하며 “어질지 못한 자는 비록 이러한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즐길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맹자는 덧붙였다. “영대(靈臺)를 지을 계획을 세우고 터전을 닦고 일을 시작하니 백성들이 모여 들어 며칠이 안가서 이루어 졌네.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 하여도 백성들은 자식같이 모여 들었네. 우리 임금 영유에 나시니 사슴은 제자리에 엎드려 놀라지 않으며 윤이 흐르고 백조는 희기도 하다”라는 시경(詩經)의 고사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맹자는 이어서 “문왕(文王)은 백성들의 힘으로 대를 짓고 연못을 만드셨으나 백성들은 도리어 이를 기쁘고 즐겁게 여겼다.”고 말하고는 그 이유를 인(仁)에서 찾았다. 인의 정치는 백성들의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고 수평의 사회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맹자는 백성들이 자진해서 노역에 나선 것은 문왕이 연못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맹자는 백성들이 나쁜 임금을 “만나면 이 나라가 어느 때나 망할 것인가”라며 원망하는데 연못과 새와 짐승을 즐길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1개월 여전 대전 군부대내에 대통령 별장을 마련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은데 이어 최근에는 외제 승용차를 구입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경제규모로 보아서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여론은 비판적이었다. 수평사회의 길이 멀긴 먼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