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내년부터 은행이 보유한 대출채권을 담보로 활용하는 긴급여신 지원체계를 도입한다. 디지털 금융 확산으로 단기간에 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수단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14일 한은에 따르면 금통위는 지난 11일 회의에서 ‘금융기관 대출채권을 담보로 하는 긴급여신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2026년 1월 2일부터 은행이 보유한 대출채권도 한은의 긴급여신 적격 담보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현행 한은법 제65조(긴급여신)에 근거해, 금통위가 임시적격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번 조치는 금융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유동성 위기가 급격히 확산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당시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불안 심리 확산으로 이틀 만에 예금의 85%가 빠져나갔고, 영국 법인에서도 하루 만에 예금의 30%가 이탈한 바 있다.
한은은 중앙은행 대출제도가 금융시장의 ‘최후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이번 제도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은은 2023년 7월 상시대출제도에서 자금조정대출 담보로 인정되는 적격 증권 범위를 국공채에서 ‘AA- 등급’ 이상 회사채로 확대한 바 있다.
봉관수 한은 통화정책국 신용정책부 부장은 “평상시에는 채권 등 시장성 증권을 담보로 대출을 집행하겠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비시장성 자산인 대출채권을 담보로도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은행 자산 중 비중이 가장 큰 대출채권을 사전에 관리하는 ‘사전 수취(Pre-positioning)’ 방식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은행 총자산에서 대출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69.8%에 달한다. 한은은 은행이 유동성 부족에 직면할 경우 신속히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대출채권의 적격성 심사와 담보인정가액 산정 절차를 미리 상당 부분 마쳐 두기로 했다.
김범서 한은 통화정책국 여신담보기획팀 팀장은 “대출채권은 시장성 증권과 달리 정보 수집과 심사, 담보가치 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위기 시 대응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전 준비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영란은행, 일본은행 등 주요 중앙은행은 이미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도 고강도 유동성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장치로 평가하고 있다.
긴급여신이 필요한지 여부와 대상 기관, 대출 한도·금리·기간 등은 모두 금통위 의결로 결정된다. 자금조달과 운용의 불균형으로 유동성이 약화되거나, 전산 장애 등으로 일시적 지급자금 부족이 발생한 경우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적격 담보로 인정되는 대출채권은 법인기업 대상 부동산 담보대출(주택담보대출 제외)과 신용대출로, 차주의 신용등급이 ‘BBB-’ 이상이거나 예상 부도확률이 1.0% 이내인 경우로 제한된다. 다만 운영 경험을 축적하면서 적용 범위는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김 팀장은 “금융사 및 특수관계자에 대한 대출채권은 상호 연계 위험을 고려해 제외하고, 신용 위험을 낮추기 위해 선순위 대출만 인정한다”며 “실제 긴급여신이 실행될 경우 신용대출은 2~3영업일, 부동산 담보대출은 담보권 확보 절차로 5~7영업일이 소요될 수 있다”고 했다.
한은은 대출채권 담보 대출이 시장성 증권 담보 대출보다 금융기관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개선에 더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말까지 금융기관과의 정보기술(IT) 시스템 테스트를 마친 뒤, 담보 관리 방안 고도화와 모의훈련도 병행할 계획이다.
[ 경기신문 = 공혜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