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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타고 시집 가던 일은 옛 얘기가 되고 말았다. 민속놀이 경연이나 왕실 행차를 재연하는 이벤트 때 가마가 등장하는 것 말고는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이 가마다. 지금 고양 킨텍스에서는 ‘서울 모터쇼’가 한창이다. 세계의 자동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인데다 팔등신을 자랑하는 미녀 도우미도 구경거리라고 야단들이다.
가마가 없어지면서 생긴 것이 다름아닌 자동차다. 아니 자동차가 생기면서 가마가 없어졌다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우리나라 가마 역사는 확실치 않다. 다만 신라 때 기와에 새겨진 바퀴달린 연(輦)의 모습과 고구려 고분 안악 제3호에 가마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가마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가마는 신분의 상징이었다. 임금과 왕족, 벼슬아치가 아니면 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었다면 시집가는 새색시가 타는 가마였다. 신행길 가마는 지붕에 호피나 호랑이 무늬의 담요를 덮었는데 이는 호환(虎患)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시대에는 교여지제(轎輿之制)를 만들어 벼슬에 따라 가마의 격을 정했다. 사인교(四人轎)는 판서 이상, 초헌은 종2품 이상, 4인 남여(藍輿)는 종 2품의 참판 이상, 남여는 승지나 참의 이상이 탈 수 있었다. 임금의 가마는 어가(御駕) 또는 대가(大駕), 보가(寶駕), 연(輦)이라고도 했다. 연은 빨강색으로 장식했다 해서 홍연(紅輦)이라고 했는데 빨강색은 벽사의 의미가 있었다. 공주나 옹주가 타는 가마는 덩이라고 불렀다.
이밖에 불교에서 신불(神佛) 강림을 맞이할 때 가마를 썼고, 장사를 지내거나 이장(移葬)할때 혼백을 실어 날으는 가마를 신여(神輿) 또는 요여(腰輿)라고 했다. 문제는 가마를 누가 메는가이다. 상전의 안락을 위해 머슴들이 메었을 터이니, 가마야말로 인권침해요, 인간학대의 전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창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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