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명성황후는 지난 10일 남양주에 있는 그의 무덤 홍릉(洪陵)에서 자신을 시해한 일본 낭인(浪人)들의 후손으로부터 110년 만에 사죄의 큰 절을 받았다.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불리우는 명성황후 시해는 일본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며 러시아에 접근하는 명성황후를 못마땅히 여긴 일본공사 미우라고로(三浦梧樓)가 심야에 궁궐로 들여보낸 48명의 일본 낭인 가운데 건청궁으로 쳐들어간 선봉대장 아다치겐조(安達謙藏) 일당의 칼에 맞아 최후를 맞은 황후의 비극을 말한다. 그로부터 1세기 넘도록 일본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단 한번도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없었고, 낭인의 후손들조차 개별 사과한 일이 없었다. 당시의 조선의 정정(政情)이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럽고, 특히 시아버지인 흥선 대원군과 며느리인 명성황후 간에 치열한 권력 다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독립자주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도 모자라, 일본 정부를 대신한 외교관이 낭인들을 동원해 일국의 왕후를 살해한 것은 만인이 공노할 야만행위의 극치였다.
보도에 따르면 사죄하러 온 낭인의 후손들은 묘소 앞에서 무릎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때마침 영친왕의 기일을 맞아 영원에 들른 명성황후 증손자 이종길(67·미국 거주)을 만나, 역시 사죄를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종길씨는 사죄하는 낭인 후손들에게 사과를 받고 안받고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면서 “일본 정부 차원의 사과를 요청했다.”고 한다. 백번 당연한 요구다.
왕가의 세계(世系)로 보면 명성황후는 고종의 아내이면서 대원군의 며느리 신분이지만 당시의 왕후는 국정 전반에 걸쳐 집정했고, 때론 왕을 대신할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한 권력의 실세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명성황후 시해는 조선의 왕권을 뿌리 채 무너뜨리려는 일본 정부 차원의 비열한 살해 공작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일본이 우리나라와의 진정한 화해를 바란다면 먼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해 사과하고,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 죄악에 대해서는 말만의 사과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과거 청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이번 일을 보면서, 자신들이 지은 죄가 아닌데도 조상의 죄업을 대신해서 절절히 사과한 후손들의 행동거지는 인간다워 보여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