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잊어먹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도 애타게 갈구했던 순간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갑니다. 신이든 조상이든 무엇이든, 이번만큼은 꼭 들어달라고 빌던 때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살려달라고, 다른 건 더 바라지도 않겠다고, 딱 한 번만 들어달라고 하늘을 우러르던 나는 더 이상 여기 없습니다.
신이든 조상이든 무엇이든, 갈구했던 대상과의 약속 또한 저버린 지 오래입니다.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루나 이틀쯤 감사의 마음을 품었을까요.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착하게 살겠노라 한 달이나 두 달쯤 순한 걸음으로 살았을까요. 생각할수록 나는 참 못난 사람입니다. 계급장처럼 나이만 이마에 새긴 채, 착하지도 순하지도 않은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조선소에서 일할 때도 그랬습니다. 도르래로 들어 올리던 철판이 중심을 잃고 내 등을 덮쳤습니다. 허리가 꺾이고 다리가 마비되었습니다. 트럭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빌었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대학에 다닐 때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만취한 운전자가 모는 승용차는 이번에도 등 뒤를 덮쳤습니다. 앞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친 나는 맥없이 날아갔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빌었습니다. 이렇게 죽는 건 너무 허무합니다.
두 번의 사고 모두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등 뒤를 덮친 철판은 척추를 비켜 갔고, 차에 들이받혀 날아간 곳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밭고랑이었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숱하게 빌었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빌어야 할 대상이 나에서 가족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어른이 뭔지도 모르고 아비가 되어버린 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자격 없는 아비다 보니 모든 날이 절박했습니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주저앉을 때마다 나는 빌었습니다. 총기사고 뉴스를 볼 때면 군대에 있는 아들을 떠올리며 빌었고, 코로나로 세상이 초상집이 되었을 때는 호흡기내과 간호사인 딸을 위해 빌었습니다. 다행히 세 아이 모두 탈 없이 홀로 섰습니다. 돌아보면 내 기도와 상관없이 잘 자라 준 아이들입니다.
그것으로 끝일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의 독립과 함께 내가 기도해야 할 일도 끝났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지난달에 희윤이가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우주 너머에서 지구별로 찾아온 첫 손주입니다. 한달음에 달려가 면회실 유리창 너머로 희윤이와 만났습니다. 빨갛게 꼼틀거리는 별이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다음날 희윤이 어미가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실려 갔습니다. 수술 부위에서 생긴 혈전이 폐에 쌓여 위중하다고 하였습니다.
면회가 제한되어 며느리 얼굴도 보지 못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희윤이 어미였습니다.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서도 병원 밖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아, 이 아이의 우주는 나의 우주를 품을 만큼 넓구나. 나는 빨갛게 꼼틀거리던 별을 떠올리며 속으로 빌었습니다. 부디, 네 어미처럼만 자라다오.
어쩌면 나는 지금의 이 고마움도 또 잊어버릴 겁니다. 금세 까맣게 망각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당신도 나처럼, 잊어버리며 살아갑니까. 하긴 그래서 당신과 내가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 잊어버리면서도 기도만큼은 끝내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 까닭도 그러하고요.
오늘 밤에도 빨갛게 꼼틀거리는 별 하나가 깜빡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