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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커피이야기] 커피의 세계 일주

 

홍해를 건너 중동으로 간 커피

 

커피의 역사를 논할 때 중동의 예멘을 빼 놓을 수 없다. 14세기 아프리카에서 예멘으로 들어간 커피는 18세기까지 중동 국가들과 인도에서 소비됐다. 이 나라들은 처음에 커피를 종교 의식에 사용하다가 점차 일상적인 음료로 즐겨 마셨다. 그렇다면 커피나무는 어떻게 예멘으로 들어가 호황을 누리고 유럽,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로 전파됐을까? 이 여정에는 전설, 엄격한 금지령, 그리고 상업적 성공으로 점철된 대서사가 숨겨져 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커피의 탄생지는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의 산동네 카파였다. 그런데 이 커피가 바다를 건너 예멘으로 이동했다. 그 경로를 보면 12세기~13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 아라비아로 파견된 수피 선교사들이 홍해를 건널 때 가지고 들어갔다. 무슬림 선교사들은 야간에 긴 기도를 하는 동안 졸음을 물리치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그들은 원두를 끓여 진한 커피를 만들었다. 이는 아마도 최초의 뜨거운 커피가 아니었을까. 이때 카와(kahwa) 커피의 ‘카와’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이 용어는 ‘신성한 경지에 이르게 한다고 믿는 신비로운 음료’를 의미한다.

 

 

15세기 들어 예멘 사람들은 아비시니아와의 교역을 통해 전격 커피를 수입했다. 이때 커피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를 치고 번성했다. 다시 말하면, 예멘인들은 커피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적의 조건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커피가 아랍 전역으로 전파되는 데는 모카(Mocha 또는 Al-Mukha) 항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아시아, 아라비아 반도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예멘은 홍해로 둘러싸여 있다. 홍해 연안에는 동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를 통과하는 상선들의 전략적 요충지인 모카 항이 있다. 이곳은 건조한 기후와 깊은 수심으로 대형 상선이 정박하기에 이상적 이었다.

 

커피의 전설이 된 모카 항과 모카커피

 

커피콩은 모카에서 최초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무슬림 금욕주의자 데르비시(Dervish)는 정원에 커피나무를 심고 정성들여 키웠다. 나아가 산악 지대에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정교한 기술을 개발했다. 해발 700~2400미터의 산비탈에 계단식 농장을 만들고 물 공급을 위해 효율적인 관개 시설을 마련했다. 커피 수확을 위해서는 한 방울의 물도 소중했다. 최적의 일조량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화산 토양은 커피나무 뿌리에 특별한 미네랄을 공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커피 농사는 결코 간단치 않았다.

 

 

예멘의 농부들은 완전히 붉은 열매만을 선별했다. 이는 매우 지루하고 고된 노동이었다. 체리는 보통 평평한 지붕 위에서 자연 건조됐지만 때때로 서늘한 동굴에서 건조되기도 했다. 이는 아주 섬세한 향을 보존하는 비결이었다. 예멘 사람들은 최고의 품종을 선별해 그 유명한 아라비카 커피를 탄생시켰다.

 

아라비카 커피는 모카커피와 함께 예멘의 대명사가 됐다. 전자는 스웨덴의 박물학자 칼 린네가 정립한 식물 명명법에서 유래했다. 린네는 커피속(Coffea)에 ‘아라비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로써 전 세계 아라비카 나무의 대부분이 예멘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이 오늘날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후자는 ‘최고의 커피’를 의미하며, 유럽인들이 커피를 사기 위해 모카 항구에 왔던 시대를 가리킨다. 모카 항은 고품질 커피의 대명사로 인정받았다. 오늘날 초콜릿 맛이 나는 ‘모카커피’는 사실 유럽과 오스만 제국으로 커피가 수출되기 위해 선적되던 역사적인 항구 도시 모카에서 유래된 것이다.

 

예멘 커피의 영고성쇠

 

모카의 아랍 상인들은 커피의 상업적 잠재력을 빠르게 간파했다. 그들은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 인도 등으로 커피를 수출하는 무역망을 구축했다. 예멘의 통치자들 역시 커피콩의 가치를 알고 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통제에 들어갔다. 수출되는 모든 원두는 발아를 막기 위해 볶거나 데치도록 했다. 불법으로 커피 재배를 하다 들키면 사형에 처해 졌다. 이는 커피가 에티오피아와 예멘 밖에서 재배되는 것을 철저히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전략 덕분에 항구 도시 모카는 세계적인 항구로 발돋움했고 예멘은 큰 부를 창출했다.

 

예멘인들은 처음에 커피 열매를 발효시켜 술을 만들었다. 이 술은 키슈르(qishr)라고 불렸고 종교 의식에 사용됐다. 키슈르는 특히 아르시 지역 티하마(Tihamat)에서 마셨다. 키슈르에 관해서는, “그들의 집에 들어가면 극진한 환대를 받았어요. 우리는 항상 머물도록 권유받았고, 커피 한 잔, 또는 ‘키슈르’라고 불리는 커피 껍질을 달인 물을 마시지 않고는 떠날 수 없었어요. 이상하게도 커피의 본고장인 이곳에서는 커피를 음료로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요.” 생강을 곁들인 생강 커피는 보편적인 음료로 잔은 항상 가득 채워져 손님에게는 두 잔씩 대접되었다.

 

이처럼 커피는 예멘에서 단순한 음료 그 이상이었다. ‘아라비아의 포도주’라 불리는 이 커피를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것은 전통이자 환대의 표현이었고, 무엇보다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지폐에 커피나무를 새겨 넣을 정도로 예멘인들은 커피를 애지중지 다뤘다.

 

모카와 호데이다 항구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같은 유럽 해운 회사들이 세워져 눈부시게 발전해 갔다. 부두는 커피를 싣는 하역 인부들로 시끌벅적했다. 이 항구들은 빠르게 세계 커피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17세기 말까지 60kg 짜리 자루 33만 개를 유럽 커피 하우스 등으로 운반했다.

 

 

살벌한 봉쇄 령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커피콩은 예멘 밖으로 빠져 나갔다. 목화씨를 붓 뚜껑에 숨겨온 문익점 선생처럼 17세기 인도의 순례자 바바 부단은 메카 순례 중 일곱 알의 커피 생콩을 덥수룩한 수염 속 깊숙이 숨겨 모국으로 가져갔다. 고이 모셔온 이 콩을 그는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 주 마이소르 산맥에 정성껏 심어 수확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인도에는 커피의 세계적 확산을 알리는 팡파레가 울려 퍼졌다.

 

네덜란드인들 역시 커피콩을 훔쳐 식민지 국가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후 예멘산 커피는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산 커피와 경쟁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708년 예멘 커피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0%였지만 약 1세기가 지난 1800년에는 6%로 떨어졌다. 해가 뜨면 해가 지는 인류 보편의 진리를 예멘 커피라고 비켜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커피 무역의 중심지로서의 예멘의 위상은 쇠락했다. 하지만 모카의 유산은 현대 커피 문화에 변함없이 뿌리 내려 살아 숨 쉬고 있다. ‘모카’는 여전히 ​​고급 커피의 대명사로, 이국적인 원산지와 세련된 맛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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