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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C 성인이라 칭하는 백이(白夷)가 있었다. 중국 은나라 말에서 주나라 초에 살았다. 고죽국(孤竹國:제후국)의 왕자인 백이는 아버지가 왕좌를 동생인 숙제(叔齊)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듣고 동생에게 왕위를 이으라고 했다. 숙제는 형을 두고 왕위를 이을 수 없다며 함께 주나라 문왕(文王)에게 갔다. 가보니 문왕은 죽고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통치를 했다. 무왕은 은(殷)나라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백이와 숙제는 종주국을 치는 것은 의(義)에 어긋난다며 만류, 듣지 않자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었다. 의롭지 못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신념이었다. 백이는 바르지 않은 빛은 보지도 않으며 바르지 않는 소리를 듣지 않고 세상에 법도가 없으면 벼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시대 이윤(李尹)은 그렇지 않았다. 천하가 다스려 질 때에도 벼슬을 하고 다스려 지지 않을 때에도 벼슬을 했다.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이른바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이윤은 하늘이 백성을 내실 때 선지(先知)로 하여금 후지(後知)를 깨우치고 선각(先覺)으로 하여금 후각(後覺)을 깨우치게 했다는 것이다.
또 백이와 동시대 사람인 유하혜(柳下惠)는 이윤보다 한발 더 나아가 보잘 것 없고 비열한 의를 저버린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낮은 벼슬도 사양하지 않았다. 유하혜는 또 어진 재능을 숨기지 않았고 도가 행하여지지 않고 몸이 버림을 받아도 원망치 않으며 곤궁한 처지에 놓여도 원망치 않았다.
이들 세 가지 얘기는 논어와 맹자에서 전하는 서로 다른 처세법이다. 모두가 유학적인 측면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맹자는 끝의 유하혜에 비중을 더 두었다. 참여 속에 인의(仁義)를 깨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이다. 요즈음 노대통령의 실정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백이의 고결보다는 유하혜의 인의가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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