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공부해서 얻은 보람을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고 한다. 원래 형설이란 말은 중국 진(晋)나라 차윤(車胤)이 반딧불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이 눈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로, 차형손설(車螢孫雪) 또는 손강영설(孫康映雪), 차윤취형(車胤聚螢)이라고도 한다.
차윤은 집안이 가난해 등불을 밝힐 수 없었다. 그래서 반딧불이를 모아 자루 속에 넣고 거기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공부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손강도 생활이 궁핍해서 눈이 내리면 창가의 눈빛을 이용해 책을 읽었다. 노력은 한만큼 보람을 가져다 주는 법인지, 훗날 차윤은 인사원 총재, 손강은 경시청 총감 자리에 올랐다. 이 때부터 고학하는 것을 형설지공이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불빛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집안의 조명이 너무 지나쳐 여느 전등은 다 끈 뒤 스텐드 하나만 켜고 공부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격세지감도 있거니와 형설지공이란 말은 고학의 상징어에 불과하게 됐다.
그런데 ‘차윤취형’과 ‘손강영설’에는 우스게 말도 있다. 어느 해 겨울 손강이 차윤의 집을 방문했더니, 차윤은 반딧불이를 잡으러 가고 집이 비어 있었다. 이듬해 여름 차윤이 답례차 손강의 집을 찾아갔더니, 손강이 마당 한 가운데 서서 “아무래도 오늘은 눈이 올 것 같지 않구먼”이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반딧불이가 겨울에 잡힐리 없고, 한 여름에 눈이 올리 없다. 중국인 다운 유머다.
최근 한자(漢字)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문 공부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나쁜 현상이 아니다. 어차피 우리나라는 한자문화권에서 아주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이기 때문이다. 어느 대기업 신입사원 시험 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을 한자로 써라 했더니, ‘事後藥房門’이라고 썼다고 한다. 영어는 배워야 하고, 한문은 안배워도 된다는 편견이 문제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