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는 소신 없는 신하를 경멸했다. 소신 없는 신하란 인의(仁義)가 없는 신하를 말한다. 요즈음의 지당파 이른바 예스 맨(Yes man)을 칭한다.
고대 중국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에 삼환의 하나인 季씨 집안의 계자연(季子然)이 공자에게 물었다. “중유(仲由)와 염구는 대신(大臣)이라고 할 수 있느냐.” 중유와 염구는 공자의 제자로 계씨집안에서 벼슬(신하노릇: 참모)을 하고 있었다. 계자연이 중유와 염구에 대해 물은 것은 공자의 제자가 자기 집에 있다는 것을 은근히 뽐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공자는 중유와 염구는 숫자만 채우는 신하라고 했다. 대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이란 도로써 군주를 섬기다가 불가능하면 그만 두어야 된다고 했다.(논어 선진편)
공자의 신하론은 논어 계씨(季氏)편에서 소상히 설명된다. 염유와 계로(季路)가 공자를 찾아 와 “계씨가 전유를 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공자는 그의 제자인 염유와 계로에게 말하길 “그렇다면 그것은 너의 잘못이다.”라고 했다. 공자는 “전유는 옛날 선왕께서 동몽산의 제주로 삼았고 또한 노나라 안에 있으니 전유는 사직의 신하인데 어찌 징벌할 수가 있느냐.”고 했다. 이어 공자는 “능력껏 일해서 능히 할 수 없을 때에는 그만 두라.”고 하면서 “위태로운데도 붙잡지 못하며 넘어지는데도 부축하지 못한다면 그 신하를 어디에 쓰느냐.”고 나무랐다. 이에 힘을 받은 이들 두 신하는 군주에게 목숨을 걸고 간하여 전유를 구해 주었다.
요즈음 국정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 참모들의 무능 때문이다. 예스맨으로 채워진 패거리 인맥의 결과이다. 공자의 지적대로 숫자만 채우고 있는 신하(具臣)들이 문제이다. 잘못된 지시인줄 알면서도 이의제기를 못하니 문제가 없을 리 없는 것이다. 인의 없는 처신이 결국은 나라를 뒤흔든다. 이것은 고래의 진리다. 滿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