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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을 돌며 역사를 배우자

본사가 마련한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화성 돌기’ 행사가 내일 시작된다. 화성은 알려진 대로 1997년 12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따라서 화성은 세계적 명소일 뿐 아니라 경기도의 대표 브랜드이면서 수원의 문화 상징이다. 화성은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에 의해 1794년부터 1796년까지 불과 2년 사이에 축성을 끝냈지만 성으로서의 정교함과 일조 유사시에 대비한 전략적 방어 기능은 현대 군사 전문가들 조차 경탄을 금하지 못할 만큼 과학적이다.
‘화성(華城)’이란 이름은 정조가 지었다. 정조는 1793년 1월 읍치(邑治)를 화산(華山)에서 팔달산(八達山) 기슭으로 옮기면서 신도시 명칭을 화성으로 직접 명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도시는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소가 있는 화산을 외호(外護)하는 도시이므로 화산(華山)의 화(華)를 따다 ‘화성’이라 지은 것이다. 정조는 5.6km에 달하는 성곽 안에 장차 상왕의 거처이자 관아(官衙)가 될 600칸에 달하는 화성행궁(華城行宮)을 건설하였다. 여기에 더해 도로, 교량, 수문, 주거, 상업시설까지 대도시 기반을 구축했고, 농상공(農商工)의 개혁을 선도하는 기반도 만들었다. 화성은 정조의 태평성대(太平聖代)의 꿈이자 이상향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꿈은 1800년 6월 28일(음력)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함으로써 화성 이어(移御)는 실현되지 못했다.
올해로써 화성을 축성한지 209년, 화성을 무대로 개혁 정치를 실현하려던 야망을 접고 영면한지 205년째가 된다. 왜정 연간인 1935년에는 수원성(水原城)으로 개명되는 수모도 겪었다. 뿐인가.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장안, 화서, 창룡문, 성곽 등 주요 시설이 인민군 포화로 파괴돼 원형 상실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박 정권 때 복원에 이어 오늘날에는 행궁까지 옛 모습을 되찾았고 성곽 주변 정비사업도 대충 마친 상태다. 화성은 말이 없다. 화성을 도는 것은 화성을 알고 배우는 것이다. 화성을 아는 것은 정조의 개혁 역사를 배우는 것이고, 동시에 화성의 홍보대사가 되는 것이다. 부모와 함께 친구와 함께 손에 손을 마주 잡고 거닐자. 그러면 잊고 있었던 가족애를 확인하게 되고, 답답했던 도시생활에서 탈출하는 해방감과 함께 새로운 희망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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