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북녘땅을 거쳐 백두산을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실로 감개가 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한민족에게 백두산은 명산 이상의 산이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고대로부터 숭앙해 온 민족적 신앙처이다.
이제 백두산행 길이 열리면서 우리에게는 단순 관광으로 족할 수 없는 무거운 역사적 과제가 부여되었다. 과제의 핵심은 민족적 동질성 회복과 함께 백두산 정계비석을 찾아내야 하는 일이다.
이 비는 지금으로부터 293년전인 1712년(숙종 38년) 5월에 세워진 것으로, 실로 대한민국 영토사에 절대적으로 귀중한 비석(碑石)이다.
이 비석을 통해 우리는 중국측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간도 귀속문제와 아울러 당면하고 있는 북방 3각 국경문제를 풀어가는데 필수가결한 증빙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비석은 어찌된 일인지 일제강점기인 1938년 7월 어느날 느닷없이 사라졌다. 이 비문상에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경계를 가르는‘서위압록 동위토문’이라는 글귀가 있어 토문강으로 동쪽 경계를 삼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비문이 사라짐으로써 국경에 대한 견해가 접경국인 중국과 서로 다르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국경획정의 국가적 대사가 미뤄져 온 것이다.
이밖에 또 다른 문제로, 백두산 정계비가 세워진 곳으로부터 연이어지는 목책과 석토(石土)로 계선(界線)표시를 해두었는데, 그 흔적이 희미해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확인 발굴작업 또한 시급한 실정이다.
북한땅을 경유한 백두산행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데 대해 많은 사람들은 통일이 그만큼 가까워지고 있다고 반긴다.
그러나 감상적인 통일문제에 빠지기에 앞서 민족사적 중대과제인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성숙된 국민적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백두산 관광사업은 정부측의 뒷받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따라서 차제에 정부는 북한측과 협의하여 백두산 인근에 유기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정계비석을 찾아내는 일과 토문강으로 경계를 이어지게 한 국경 표시물인 석토 등에 대한 조사와 발굴 노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