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言語)란 중요한 말일수록 네 다섯 번 생각하고 그 다음에 말을 하라고 했다. 말씀 언(言)자는 네 번(가로 획) 생각하고 말(입口자)을 하라고 했으며 말씀어(語)자는 여기에 다섯 번 더(+五) 아홉 번을 심중(深重)히 깊고 무게 있게 말을 하는 것으로 그것이 바른 말, 곧 언어라 했다. 말 많은 것이 모자라 몰래 엿들으며 도청장치(盜聽裝置)까지 설치하는 세상 별의별 사건들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먹고 뱉어내는 것이 입구(口)의 기능이긴 하지만 오늘 우리의 입은 이기주의(利己主義)의 부도덕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다보니 세상이 혼탁(混濁)해 가고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말의 씨를 뿌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는 멋있고 아름답게 싹트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병들고 벌레 먹는 싹도 있다. 하나를 얻기 위해 열을 잃어버림으로써 오는 사회적 혼란은 그 누가 책임지겠는가. 이렇듯 말의 씨앗의 한마디가 사람이 죽고 사는 운명을 결정지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漢)나라 때에 해학(諧謔)으로 이름을 떨친 동방삭(東方朔)에 대한 예화(例話)가 있다. 그는 3년 고개에서 재주(才一)를 넘어 수명(壽命)이 자꾸 연장(延長)하여 3천년을 살았다하여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이라고 한다. 속설(俗說)에 의하면 천명(天命)이 다했는데도 동박삭이 죽지 않자 염라대왕(閻羅大王)은 저승사자를 내려보내어 동방삭을 잡아들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워낙 변장술이 능하고 신출귀몰한 동방삭인지라 쉽게 잡을 수가 없었다. 동방삭이가 어느 강가에서 가끔 낚시를 한다는 것이었다. 정보를 들은 저승사자는 숯을 한 가마를 가지고 가서 흐르는 강물에 숯을 수세미로 씻고 있었다. 몇일 후 나타난 동방삭이 저승사자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시커먼 것을 왜 씻는 거요 씻어도 시커먼 것이 뭐요. 저승사자는 네 이 숯이 새카매서 하얗게 씻어보려는데 영 지지가 않네요. 이때 동방삭이 껄껄 웃으면서 하는 말이 내참 3천년을 살았지만 숯 씻는 바보는 당신밖에 처음 보았소. 이때 저승사자는 네 이놈 네놈이 바로 동방삭이로구나. 이리하여 삼천갑자 동방삭도 결국 말 잘못하는 바람에 저승사자 손에 이끌려 저승길로 가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세상에 꼭 해야될 말이 있는가하면 동방삭 같이 운명이 좌우될 말을 해서는 안될 경우(境遇)도 있다는 교훈(敎訓)을 가르쳐 주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이 세상에는 비밀(秘密)을 누설(漏泄)하여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대내외적으로 신뢰(信賴)에 금이 가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따라서 성급한 현대인들은 자기 언어를 쓰는데 가볍고 서투르다. 정치권력자나 배우나 가수, 코메디언들이 토해내는 말을 아무 저항없이 그대로 주워서 흉내내고 있다. 말의 웃음과 의사소통의 구실을 하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잡음의 역기능도 하고 있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은 입을 가르켜 재앙(災殃)의 문이라고 한 것도 그 역기능적인 면을 지적한 것이다. 선승(禪僧)들은 3년이고 10년이고 침묵이라는 여과(濾過) 과정을 거쳐 오로지 참말만 하기 위해서 다 침묵의 조명을 통해서 단단한 말을 하기 위해서 목소리 속에 목소리로 귓속에 귀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銘心)해야 할 것은 한번 한 말은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말의 위대성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말을 통해서 우리는 맺어질 수 있으며 미워하는 것도 내 마음이요 이뻐하는 것도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다. 화엄경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한 말도 바로 이 뜻이다. 어떤 수도나 수양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의 씨앗은 모든 일에 근본(根本)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