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정리가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사법부까지 가세하고 나섬으로써 사회가 온통 과거사 갈등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과거사법이 제정되어 있고, 국정원과 국방부, 경찰청이 부서 내에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 법치의 안정의 보루인 사법부까지 과거사 정리에 나선 것은 과거사 진실규명의 당위성을 넘어 우리 사회의 기존질서를 파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달 26일 취임사에서 사법부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강조한 이후 사법부에서 1972년부터 87년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시기와 전두환 대통령의 5공시기에 이루어진 시국-공안사건에 대한 판결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대법원의 확정판결 중에 1958년 조봉암의 진보당 사건과 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80년 김재규 사건, 81년 김대중 내련음모사건을 대표적으로 정치권력의 외압에 의한 판결이었다는 의문이 제기돼 왔다.
이는 그 당시 정치상황에서 사법부의 독립위치가 힘들었을 것을 생각할 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진상 기록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시대의 시국-공안사건 판결 모두를 일일이 과거사 규명 차원에서 재론하겠다는 것은 사법부의 정체성과 계속성에 심대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동안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과거사 진상규명과 맞물려 지난날 공적기관이 행한 일들이 다 부정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위험성을 염려하는 것이다.
한때 각급 법원에서 판사들이 헌법과 법률의 실정법의에 입각하여 3심을 거치는 사법절차에 따라 내린 판결을 현재의 역사관과 시류에 따라 재론한다는 것은 앞으로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은 법관도 사람인 이상 모든 판결이 절대 완벽하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헌법 제103조에 명시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데 동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의 법치와 민주질서가 안정-유지돼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