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리는 언론보도를 통해 충격적인 사건을 접했다. 검찰에서 투기꾼에 대한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적발된 사건을 보고 우리는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규모도 그렇거니와 그 투기를 한 사람들이 가진 생각이 일단이 궁금하기까지 했다.
언론을 통해 접한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분양회사 대표와 이사인 모씨 자매(언니 32세, 동생 31세)는 친·인척 명의로 10여채의 조합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전매, 각각 9억4천만원과 8억3천여만원의 차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이미 주택을 소유하고 있어 지역주택조합원이 될 수 없음에도 친·인척 명의를 빌리고 위장전입하는 방식으로 서울 강남 소재 모 주택조합원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구속된 언니는 이미 아파트 10채, 상가 32개, 오피스텔 24개 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이에 비교될 만한 한 가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조선 팔도 최고의 부자라고 알려진 경주의 최 부자집 이야기다.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집이었던 최 부자 집은 12대 동안 계속해서 만석군을 지낸 집안으로 유명하다.
최 부자 집의 철학 가운데 첫째는 ‘흉년에 땅을 사지 않는다’ 였다. 흉년이 들면 수 천명씩 굶어 죽는 시대였다.
흉년이야말로 없는 사람에게는 지옥이었지만 있는 사람에게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하여 헐값으로 내놓은 전답을 매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철학은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한다’였다. 돈이라는 것은 가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어느 시점을 지나면 돈이 돈을 벌게된다. 멈추기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최씨들은 만석에서 과감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이상은 내 돈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였다. 최 부자집에서 1년에 소비하는 쌀의 양은 대략 3000석 정도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 1000석은 식구들 양식으로 썼다. 그 다음 1000석은 과객들의 식사대접에 사용했다.
최 부자집의 철학 가운데 특이한 것은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말라’이다. 최 부자집은 9대 진사를 지냈다. 그 이상의 벼슬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집안의 철칙이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이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돈 있으면 권력도 잡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 집안은 돈만 잡고 권력은 포기했다. 벼슬이 높을수록 당쟁에 휘말릴 확률은 높아지고, 한번 휘말리면 집구석 절단 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벼슬의 끝, 그러니까 권력의 종착점이 어디인가를 꿰뚫어 본 데서 나온 통찰력의 산물이 ‘진사 이상 하지 말라’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볼 때 과연 우리 시대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의 가진 자들이 모두 과거의 경주 최 부잣집처럼 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행동을 해 주기를 바라면서, 이번 부동산 투기꾼 자매의 이야기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