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철근이 죽은 철근에게 - 故 이철복에게 /김해화 비 온다 너를 때려죽이고도 현장소장들은 오늘도 온전하다 우산 쓰고 퇴근한다 밤낮없이 너는 죽어버려서 떠날 수 없고 나는 살아 있어서 떠날 수 없는 공사장 누운 채 비에 젖는다 죽은 너는 좀 짧고 살아 있는 나는 좀 길다 같이 녹슨다 - 일과시 동인 작품집 〈못난 시인/실천문학 2014〉 ※이철복 2008년 3월 21일 공사장 사무실에 찾아가 밀린 3개월분 임금지급을 요구하던 철근공 이철복은 현장소장이 휘두른 철제 옷걸이와 의자에 가슴과 머리를 맞아 병원에서 수술 중 3월 24일 사망하였다.
요즘 드라마 징비록(懲毖錄)이 인기다. 리더십 실종과 동인-서인 간 당파 싸움에 분열된 국론, 결국 나라는 임진왜란이라는 망국의 위기에 빠졌고 이를 극복하려는 충정의 장수들과 국민보다는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임금 선조와 간신들의 이야기가 요즘 한창 재미를 더하고 있다. 드라마 시작부터 관심을 끌었지만 최근 시청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아마 작금의 정치적 상황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반영돼 시청자들을 드라마 속으로 빠지게 하는 모양이다. 징비(懲毖)란 ‘자신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년)은 재상으로 몸소 겪은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을 이 같은 제목으로 남겼다. 저술한 까닭에 대해선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조정의 실정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고자 책을 쓴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징비록을 보면 과거의 뼈아픈 실패를 거울삼아 미래의 교훈으로 삼는 공직자의 자세가 무릇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뼈아픈 실패의 역사서지만 징비록에는 잘한 일에 대한 기록도 있다. 류성룡이 이순신을 천거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특히 후반부에서 이
참 웃기는 세상이다. 특별사면이라는 것을 두고, 서로 당신네가 꽂아 넣었다고 주장하며 남의 탓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전 회장의 2007년 사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완종 전 회장은 노무현 정권 당시 두 번의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의 ‘행운’은 어디서 비롯됐는가가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2005년에 성완종 전 회장이 특사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민련의 요구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일단 논외로 치지만, 2007년 특사는 문제가 다르다. 당시는 정권 교체기였기 때문에 누구의 요구로 성 전 회장이 특사 대상이 됐는지가 아리송하기 때문이다. 일단 새누리당 내 친이계와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친노계는, 서로 상대가 꽂아 넣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일단 시간대로 사건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2007년 11월 23일 열린 2심에서 성완종 회장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2심 선고가 내려지기 전까지 성 전 회장은 무죄임을 증명하려 안간힘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항고를 포기했다. 법조계에 의하면 이런 일은 좀처럼 없다고 한다. 이것부터 이상하다. 어쨌든 정황적으
세상을 살다보면 어려움을 겪거나 도움을 꼭 필요로 하는 친구나 지인과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딱한 처지를 도와주고 싶은 입장에서 친구나 지인의 사업에 본인의 명의를 쓰도록 허용하거나 주식·부동산 등 재산에 차명 사용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사업이란 부침이 심하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지라 사업이 안 되거나 세금 문제가 발생하면 이름을 빌려준 사람은 큰 재앙을 맞게 된다. 현행 법에서는 등기를 필요로 하는 재산에 있어서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 명의자로 등기한 날에 그 재산을 명의자가 실제 소유자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조세회피 목적이 없이 타인의 명의로 재산의 등기를 한 경우에는 증여로 보지 않아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지만 납세자가 이를 입증해야 하고 실제 입증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친분이나 의리상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명의를 빌려주지만 명의 부탁을 한 실제 소유자가 세금 낼 형편이 안 되면 재산을 실제로 증여받지도 않았으면서 엄청난 증여세를 내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된다. 소송절차를 통해 구제 받을 수도 있지만 구제받기까지 이들의 주택과 통장은 압류되고 소득도 차압되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또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경기도에는 100만명이 넘는 인구가 늘었다. 이 기간 자영업자 전용 업종을 포함한 전체 사업체 수는 12만1천700여곳이 도내에 새롭게 자리했다. 증가율로는 인구(8.7%)와 신규 사업체(18.8%) 간 두 배 이상 차이가 벌어지는 불일치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도내 시·군에 따라 편의점·제과점·커피전문점 등 자영업자 전용 업종 밀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가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21개 ‘자영업자 전용 업종’을 토대로 밀집 심화 지역을 조사한 결과, 연천군과 가평군에 인구 대비 업종 밀집도가 높은 11개 업종이 집중됐다. 21개 업종은 ▲슈퍼마켓 ▲편의점 ▲휴대전화판매점 ▲문구점, 화장품 및 방향제 소매점 ▲한식 음식점 ▲중식 음식점, 제과점 ▲피자·햄버거·샌드위치 전문점 ▲치킨전문점 ▲분식 및 김밥전문점 ▲기타 주점업 ▲커피전문점 ▲PC방 ▲노래연습장 ▲이용업 ▲두발미용업 ▲피부미용업 ▲목욕업 ▲세탁업 등이다. 이번 조사는 인구 수와 동일업종 사업체 수를 나눠 ‘업종별 지역 밀집도’를 분석한 결과다. 우선 연천군은 슈퍼마켓 수가 14곳에 불과했지만 인구 수 역시 4만6천370명(2013년 기준)에
〈김포시〉 ◇승진 ▲구래동장 직무대리 한기정 ▲의회사무국 전문위원 직무대리 이두수 ◇전보 ▲행정지원국 회계과장 최돈행 ▲행정지원국 세정과장 이재국 ▲복지문화국 주민생활지원과장 김성규
누구나 급박한 세상에 살다보면 한번쯤은 범죄나 위기적 상황에 처할 수 있고 이럴 경우 112 등 긴급신고를 하지만 너무 당황하여 신고에 필요한 중요한 것들을 알지 못해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찰관의 도움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는 올바른 신고방법 등에 대하여 적어보았다. 첫째, 정확한 위치고지 및 다른 사람과의 통화 자제. 112신고를 접수받고 출동하는 경찰관은 최대한 짧은 시간과 동선으로 신고지에 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순찰차 안에서 유사시 신고자에게 전화를 하여 위치 및 상황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 등을 알려고 한다. 그래서 신고시 정확한 주소, 주변 큰건물, 건물번호, 전봇대관리번호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얘기하고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다른 전화통화를 최대한 자제할 필요가 있다. 둘째, 범죄 및 피해상황. 범죄에 따라 경찰관들의 긴급대처방법에는 차이가 있고 현장에서 상해나 신체적 피해를 입거나 이를 목격했을 때 119구급차 등을 통한 보다 신속한 인명구호 조치를 취하기 때문에 신고시 명심해야 될 부분이다. 셋째, 가해자의 정보. 가해자를 아는 경우에는 누구인지 신원을 알리고 모르는 경우에는 특정지을 수 있는 인상착의, 흉기휴대여부
여전히 전화사기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 요즘 발생하는 전화사기 유형은 수사기관을 사칭하며 피해자들에게 신용카드번호, 비밀번호, 보안카드번호 등 금융정보를 알아낸 후 인터넷뱅킹 등을 통해 범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계좌로 예금을 이체 받아 편취하는 사건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공공기관 인터넷 사이트를 허위로 개설해 접속토록 유도한 후 사이트에 피해자의 은행 계좌번호 등 금융정보를 입력하게 하여 알아낸 후, 범인 스스로 피해자의 금융정보를 이용하여 피해자 계좌의 돈을 이체시키는 방법이다. 피해자는 대부분 서민층으로 사실상 피해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며, 이전에는 농촌지역 거주민, 노인층 등 정보취약계층에서 피해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신종수법이 등장하여 피해범위 특정 할 수 없어 전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전화사기 피해예방은 어렵지 않다.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어떠한 개인정보도 요구하지 않으므로 개인의 금융정보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거나 사이트 접속 시 일체 대응치 않아야 한다. 만약 계좌번호,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려주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면 즉시 112 신고를 해야 한다. 경찰 112로 피해신고를 하면 1
태초에 인류가 불을 다루고,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도구의 발명과 함께 원시 인류가 몸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면서 탄생시킨 ‘무예(武藝)’는 전투기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바로 자연과의 거친 투쟁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사람답게 살아가는 기술 속에 무예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무예는 때로는 아이들의 재미있는 놀이로, 때로는 어른들의 피 튀기는 경기로도 변화하였는데, 조선시대 최고의 놀이이자 스포츠 경기였던 봉희(棒戱)를 통해 그 변화상을 살펴보자. 먼저 격구는 말을 타고 장시라는 긴 채를 이용하여 공을 구문(골대)에 넣는 군사무예였다. 사극에서도 종종 등장하면서 전통시대 군사 스포츠로도 잘 알려진 격구는 기병들이 익혀야 했던 최고의 기마술 훈련이자 온 백성이 관람 가능한 축제형 경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격구를 하려면 반드시 말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대 어린이들은 ‘말(馬) 없이’ 땅 위에서 공을 치는 놀이를 탄생시켰다. 그것이 바로 막대기를 가지고 논다고 해서 ‘봉희(棒戱)’다. 봉희에 대한 기록을 보면 요즘 대중적으로 쉼 없는 인기를 얻고 있는 골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