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숙 한 번도 꺼내 보인 적 없던 엄마의 사랑 서랍 깊숙이 간직되어 있다 시집 와 남편에게 처음으로 받았다는 빨간 원피스 아까워서 너무 좋아서 그때는 아끼느라 입지 못했던 옷 엄마의 사랑을 펄럭이며 딸들, 번갈아 입어 본다 시집 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받았다는 빛바랜 원피스 딸들에게 꼭 맞다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친정에서 딸로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시집에서 엄마로 태어난다. 이 시의 화자는 서랍 깊숙이 간직되어 있던 어머니의 원피스를 발견하고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제는 어머니처럼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버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알뜰살뜰 살아가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받은 원피스는 너무 좋지만 그것이 닳을까 아까워 꺼내 입지 않는다.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이다. 이 사랑으로 인해 가정이 행복한 것이다. 시인은 한신대 문창과 출신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박병두 시인
우리나라의 최초 교복은 1886년 이화학당에서 제정한 다홍색의 무명치마저고리다. 러시아제 붉은 목면으로 만들어져 일명 ‘홍둥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12년 후 배재학당에서 검은 색의 당복(堂服)이 남학생 교복으로 등장했다. 당시 교복은 학생들이 입는 것이었지만 시대적으로 부와 개화의 상징이었으며 모두가 우리의 고유 복식형태를 기초로 한 것이었다. 1907년 숙명학교는 자주색 원피스를 교복으로 정했다. 최초의 양장교복이다. 1930년대 이르러 일제는 한복교복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여자의 경우 교복이 모두 양장 형태로 바뀌었다. 여름에는 흰색 블라우스에 감색 주름치마였고, 겨울에는 감색 또는 자주색 세일러복이었다. 남자 또한 검정색 양복 스탠드칼라에 앞단추를 다섯 개 단 형태로 디자인이 변했다. 일제 강점기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여학생의 교복도 전시복 차림이 됐다. ‘몸빼’라는 작업복 바지를 입었고, 남학생은 국방색 교복을 입었다. 1968년 문교부의 중학교 평준화시책이 실시되면서 중학생 교복은 시·도별로 획일화됨에 따라 여름에는 흰색 윙칼라블라우스에 감색 또는 검정색의 플레어스커트, 겨울에는 감색 또
사람들은 세계 3대 테너로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와 호세 카레라스(Jose Careras),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Pavarotti)를 꼽는다. 이들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천상의 목소리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감동과 전율을 선사한 하나의 전설이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 중 도밍고와 카레라스는 서로 앙숙관계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의 국적은 모두 스페인이지만 도밍고는 1941년 스페인의 수도인 중부지방 마드리드에서 태어났고, 카레라스는 1946년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역의 중심 도시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18세기 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패전하여 자치권을 박탈당한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중앙정부로부터 차별대우를 받으며 꾸준히 독립을 요구하였고, 1984년에는 그 갈등이 극에 다다르게 되었다. 결국 마드리드 출신의 도밍고와 카탈루냐 출신의 카레라스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시비가 붙었고, 카레라스가 도밍고와 절교를 선언하면서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세계 순회공연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면서도, 무대에는 절대 같이 서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공연했을 정도였다. 그러던 1987
들썩거리던 관광버스 한 대가 휴게소로 들어서자 불붙은 단풍이 한꺼번에 확~ 쏟아져 내렸다. 어느 산을 거쳐 왔는지 알록달록한 옷에 울긋불긋 익을 대로 익은 얼굴들. 우르르 흩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음반가게 앞에서 흔들어대고 화장실 앞에서 또 한 번 흔들어댄다. 가히 치열한 음주가무의 현장이다. 그 모습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얼굴 붉어지다 말고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오고, 더하여 야릇한 숨은 흥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코끝이 찡해진다. 흥에 겨워 춤추시던 환한 우리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디에 저런 열정이 숨어있었을까. 다소곳이 입 다물면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얌전한 모습, 숨겨둔 그 신명 풀 길이 없어 날 잡아 풀어대는 늙수그레한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과 더불어 성장해온 우리 사회의 숨은 일꾼들이 아닐까. 과연 그들에게서 처절하고 치열하지 않은 게 무엇이 있었을까. 자식들 가르치느라 몸이 부서져라 일해 왔고, 그 자식들 성장하여 이제 훠이훠이 떠나갈 나이. 그 허무함은 온전히 그들이 감당해야할 그들의 몫. 인터넷을 잘 하여 그 화병 풀어낼 줄도 모르고, 그 흔한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스트레스 한 번 제대로 풀 방법을 모르니 날 잡아
▲조승연(인천광역시의료원 원장)씨 모친상 = 19일 오후 7시28분, 인천광역시의료원 장례식장 410호, 발인 21일 오전 5시. ☎032-580-6011 삼가 명복을 빕니다
죽음.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단 하나의 진리.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그래서 만인(萬人)에게 평등한 자비의 단어. 그러나 이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기엔 우리네 영혼이 너무도 연약해, 맞닥뜨리지 않거나 그럴 수 없다면 가급적 늦게 만나기를 갈망하는 품목이다. 그래서 가능한 회피하고 싶어한다. 해서, 가장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아킬레스니 불로초니, 모두 그래서 생겨난 인간 상상력의 산물일 게다. 참, 아이러니하다. 가장 확실한 것이 가장 두려운 대상이니 말이다. 예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인들은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이라 했고, 인간은 살면서 등 뒤에 죽음이라는 친구를 항상 업고 다닌다고도 했다. 그러나 머리와 가슴은 거리가 너무 멀어, 생각으론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막상 닥치면 깜깜절벽이다. 오죽하면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월명사(月明師)도 누이의 죽음 앞에서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다’고 제망매가(祭亡妹歌)를 통해 고백했겠는가. 죽음에 관한 인류 최고(最高)의 경전으로 꼽히는 ‘티베트 사자의 서(The Tibetan Book of the Dead, ─死者─書)’는 “제대로 된 삶을
/김명리 벌레들은 풀잎에 방구들을 들이는지 그 방구들 연초록 좁다란 아랫목에서 가쁜 숨 몰아쉬며 사랑들 나누는지 비밀스레, 비밀스레 접혀진 풀잎사귀마다 저렇듯 발긋발긋 슬어놓은 알들이라니! 풀잎의 방구들 녹아날 듯 햇빛에 몽싯거리는 저 여린 목숨들, 저 바알간 몽싯거림 안으로 어느 날 문득 애벌레의 길이 잦아들리 멀고 먼 배추밭, 깜깜한 속대까지 길이 열리리 -김명리 시집 <적멸의 즐거움/문학동네 1999> 벌레들이 풀잎에 방구들을 들인단다. 사랑을 나눈단다. 그건 아직 비밀이라 말하며 가쁜 숨 몰아쉬고 있다. 나와 벌레가 하나 되어 알 속에서 내일을 꿈꾸다가 햇살아래 몽싯거리며 깨어날 연습을 하기도 한다. 가야할 머나 먼 깜깜한 속대까지 길이 열려있다고 우리를 안심 시키고 있다. 풀잎과 벌레와 알과 햇살이 모두 시인의 방 속에 한 살림을 차리게 된 기쁨으로 가득하다. 들어오라 손짓하면 누가 마다할까 신발 벗고 얼른 들어갈 일이다./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