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최초 교복은 1886년 이화학당에서 제정한 다홍색의 무명치마저고리다. 러시아제 붉은 목면으로 만들어져 일명 ‘홍둥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12년 후 배재학당에서 검은 색의 당복(堂服)이 남학생 교복으로 등장했다. 당시 교복은 학생들이 입는 것이었지만 시대적으로 부와 개화의 상징이었으며 모두가 우리의 고유 복식형태를 기초로 한 것이었다.
1907년 숙명학교는 자주색 원피스를 교복으로 정했다. 최초의 양장교복이다. 1930년대 이르러 일제는 한복교복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여자의 경우 교복이 모두 양장 형태로 바뀌었다. 여름에는 흰색 블라우스에 감색 주름치마였고, 겨울에는 감색 또는 자주색 세일러복이었다. 남자 또한 검정색 양복 스탠드칼라에 앞단추를 다섯 개 단 형태로 디자인이 변했다. 일제 강점기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여학생의 교복도 전시복 차림이 됐다. ‘몸빼’라는 작업복 바지를 입었고, 남학생은 국방색 교복을 입었다.
1968년 문교부의 중학교 평준화시책이 실시되면서 중학생 교복은 시·도별로 획일화됨에 따라 여름에는 흰색 윙칼라블라우스에 감색 또는 검정색의 플레어스커트, 겨울에는 감색 또는 검정색 상·하의로 통일되었는데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는 교복이 획일적이고 딱딱한 이미지를 풍긴다 해서 한동안 교복자율화를 실시하기도 했다.
요즘 교복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미를 풍긴다. 학교별 소속감과 함께 심미성과 기능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가격 또한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웬만한 성인 양복값보다 비싸 학부모들이 속을 끓인다.
몇 해 전부터 겨울철, 이런 교복위에 입는 윈드자켓이 10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부모들의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일명 ‘노페’(노스페이스)라 불리는 수십만원짜리 아웃도어가 대세더니 올해는 2100만원이 넘는 ‘캐몽’(캐나다 쿠스 몽글레르) 패딩도 등장했다. 노페나 캐몽을 안 입곤 그들만의 세상에선 행세도 못한다. 부모들은 이러한 패딩을 ‘등골 브레이커’라 부른다. 올해도 많은 학생들이 교복 위에 패딩을 입고 있다. 자식이 유행에 뒤지지 않게 하려고 또 다른 불효자(?)를 위해 없는 돈을 마련하려는 부모들의 마음고생이 눈에 선하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