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1 (수)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장동일칼럼] 사람을 움직이는 힘

 

사람들은 세계 3대 테너로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와 호세 카레라스(Jose Careras),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Pavarotti)를 꼽는다. 이들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천상의 목소리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감동과 전율을 선사한 하나의 전설이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 중 도밍고와 카레라스는 서로 앙숙관계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의 국적은 모두 스페인이지만 도밍고는 1941년 스페인의 수도인 중부지방 마드리드에서 태어났고, 카레라스는 1946년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역의 중심 도시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18세기 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패전하여 자치권을 박탈당한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중앙정부로부터 차별대우를 받으며 꾸준히 독립을 요구하였고, 1984년에는 그 갈등이 극에 다다르게 되었다. 결국 마드리드 출신의 도밍고와 카탈루냐 출신의 카레라스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시비가 붙었고, 카레라스가 도밍고와 절교를 선언하면서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세계 순회공연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면서도, 무대에는 절대 같이 서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공연했을 정도였다.

그러던 1987년 어느 날, 왕성한 활동을 펼쳐가던 카레라스는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에 걸리고 만다. 카레라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항암치료와 골수이식 등의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아야만 했고, 세계적 가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지출되는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결국 재정적 위기에 빠진 카레라스는 더 이상의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렇게 치료를 포기하던 순간, 카레라스는 마드리드에 백혈병 환자만을 위한 재단 ‘에르모사’의 도움으로 치료를 계속할 수 있었고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됐다.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된 카레라스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에르모사’ 재단에 가입하려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을 도와준 재단의 설립자이자 후원자가 바로 도밍고였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애초부터 카레라스를 돕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으며, 카레라스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도밍고가 재단을 익명으로 운영해 왔다는 것이다. 크게 감동을 받은 카레라스는 한 걸음에 도밍고의 공연장을 찾아갔고, 공연 중이던 도밍고 앞에 두 무릎을 꿇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도밍고 역시, 건강한 모습으로 자신 앞에 나타난 카레라스를 반가워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꼭 껴안아 주었다. 도밍고와 카레라스는 이렇게 우정을 회복할 수 있었고, 이후에는 더욱 서로를 존중하고 의지하며 진정한 경쟁자로 살아갔다.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존중을 받거나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인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타인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귀한 선물을 주고, 칭찬을 하고, 내가 지닌 것을 공유한다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방식들도 효과는 있겠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행위의 형태가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의도나 목적과 같은 ‘마음’이다.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은 틀림없이 상대방에게 전달이 된다. 도밍고의 마음을 카레라스가 이해했듯이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 가치관 등에 의해 서로 부딪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러한 마찰은 상대의 소중한 것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며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시작이다. 상대 의견에 무조건 동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상대방에게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이해를 하고 이해를 받는 일은 나중의 일이 돼야 할 것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