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연수구 송도 펜타포트에서 적십자사 인천지사 ‘함께 걷자 인천페스타’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인천시 제공
<평택시> ◇5급 승진 ▲환경과 윤태흠 <연합뉴스> ▲통일언론연구소 설립추진단장 정일용 ▲기획조정실장 이성한 ▲기획조정실 부실장 정천기 ▲마케팅본부장 이유 ▲마케팅본부 고문 김선한 ▲논설위원실장 현경숙 ▲논설주간 전성옥 ▲논설위원 김은주 문병훈 성기홍 ▲콘텐츠평가실장(고충처리인 겸임) 추왕훈 ▲콘텐츠평가실 고문 류일형 ▲콘텐츠평가위원 김용윤 박상현 ▲감사팀장 송병승 ▲한민족센터본부장 지일우 ▲한민족센터 고문 이희용 ▲정보사업국장 송정호 ▲DB.출판국장 이창호 ▲경영지원국장 김동욱 ▲ 미디어기술국장 이상우 ▲디지털융합본부장 최재석 ▲디지털융합본부 부본부장 최재영 ▲편집국 정치에디터 겸 팩트체크팀장 권정상 ▲경제에디터 권영석 ▲사회에디터 임상수 ▲국제에디터 김계환 ▲외국어에디터 양태삼 ▲융합에디터 유경수 ▲국제경제부 고문 윤동영 ▲미주총국장 내정 김현준 ▲유럽총국장 내정 김민철 ▲경기취재본부장 고승일 <연합뉴스TV> ▲보도국장 이성섭 ▲시청자센터장(고충처리인 겸임) 겸 경영기획실 부실장 이정내 ▲보도국 부국장 추승호
국내 자동차 통행은 기본적으로 우측통행이 원칙이다. 우측통행을 하다가 좌측으로 가야 할 때에는 유턴 지점을 찾아서 유턴을 하거나 좌회전 신고가 있는 곳을 찾아 이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반대 차로에 차량이 오지 않는 경우 어떻게 할까? 물론 대다수 차량은 신호를 기다린 후 진행을 하지만 차량이 없기 때문에 위반하고 진행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운전자 입장에서 비효율적이고 복잡한 교통량을 발생시킨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에 차량 통행의 효율성을 위해 도로를 신호로 통제하기보다는 적당히 풀어주는 것이 낫거나 통행량이 그리 많지 않아 약간의 허용이 가능할 때에 제공하는 자율성이 바로 이 비보호 좌회전이다. 그런데 많은 운전자 분들은 비보호 좌회전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좌측에 목적지가 있어 비보호 좌회전을 하실 때 많은 운전자분들께서 적색 신호에 진행한다. 이유는 아마 반대편 차량이 적색신호에 진행을 하지 않기에 사고의 위험이 적어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색 신호에 비보호 좌회전을 진행하는 건 ‘신호위반’에 속한다. ‘신호위반&rs
최근 마약류는 국제화 추세에 따라 공항, 국제우편물 및 외국 여행중 외국으로부터 밀반입 되어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마약의 남용계층도 특수신분에서 일반 서민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마약류 복용이 청소년(대학생), 일반인 가정주부 등 모든 사회계층에 걸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류는 약리적 측면에서 오·남용할 경우 심각한 판단력의 장애를 가져오며, 자신의 신체는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마약은 약물사용에 대한 욕구가 강제적일 정도로 강한 ‘의존성’ ▲개인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유해성’ ▲사용을 중지하면 온몸에 견디기 힘든 증상이 나타나는 ‘금단증상’ ▲사용약물의 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내성’이 나타나며 약물에 대한 부작용으로는 호흡억제, 동공확장, 맥박수 증가 및 장기 남용은 칼슘감소에 따른 근육통과 골절을 초래하게 된다. 최근 3년간(2015∼2017) 마약류 단속 현황을 보면 2015년(7천332명), 2016년(8천853명), 2017년(8천887명) 증가 추
유휴공간을 활용한 문화예술시설이 인기를 끌고 지역문화자산에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관광 콘텐츠가 개발되는 등 기존의 자산을 활용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현재 문화예술계의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개관한 ‘김포아트빌리지’ 역시 이러한 트렌드가 반영된 김포의 새로운 문화예술시설이다. 김포시 운양동 모담산의 품에 안겨 온화한 기운을 담아내며 많은 시민의 발걸음을 붙잡는 이곳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샘재 한옥마을’이라 부르던 한옥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모여 있다. 샘이 있는 마을이라 샘재로 불렸다던 이곳은 원래 70년대 도심재개발로 서울의 북촌, 을지로에 위치하던 한옥과 기와, 목재 등이 일부 옮겨오면서 조성되었고, 2004년 김포한강신도시 지구에 편입되면서 ‘기존 자원의 재정비를 통한 문화자산의 활용’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문화와 관광의 복합 공간 ‘김포아트빌리지’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축된 한옥과 한옥의 자재들이 재정비되고 새로운 한옥이 신축되기도 하면서 아트빌리지에는 총 16개동의 한옥과 예술인들의 창작공간, 전시실 등이 자리잡게 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한옥마을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했고 한국은 온통 초상집이 됐다. 국민들이 흘린 뜨거운 눈물이 슬픔의 강이 되어 차갑고 깊은 바다의 심연에 가라앉은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이 노래를 불렀다. 박근혜 정권은 이 사건으로 강력한 타격을 받았고 결국 탄핵의 단초가 되어 박 전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의 요구에 세월호도 인양됐다. 그러나 그 과정은 힘들었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놀러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비아냥대는 세력도 있었다. 일베와 수구단체는 단식 중인 유족들 앞에서 피자, 치킨, 짜장면을 시켜 보란 듯이 먹어치우는 이른바 ‘폭식투쟁’ 등 도를 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일베 회원들은 이후에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퉁퉁 불은 오뎅’이라고 야유하고, 단원고 교복을 입고 오뎅을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하는 등 치 떨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역시 그 동안 세월호 진실과 선체 인양, 책임자 처벌을 주장해 온 유가족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가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누가 나오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선출해야 하는지 유권자들조차 헷갈리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에서와 같이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에 갇혀 그들끼리의 논쟁만 가열되고 있을 뿐이다. 오늘부터 모바일투표를 시작하는 진보 진영 경기도교육감 후보 단일화 경선 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선거인단으로 등록된 가입자들이 과연 경기도민인지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타 시도의 유권자가 모바일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후보 선출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으로 인해 단일후보가 결정된다 하더라도 그 대표성이 훼손될 수 있다. 경기도교육감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경선에는 정진후 전 정의당 원내대표, 송주명 한신대 교수, 이성대 신안산대 교수, 구희현 친환경학교급식 경기도운동본부 상임대표, 박창규 전교조 초대 경기지부장 등 5명이 참여한다. 대표적인 진보 인사로 분류되는 이재정 현 경기도교육감은 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선거인단에는 3만3천여 명은 16~18일 사흘 간 모바일 투표를 한 뒤,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여
태풍도 때로는 어리숙하다 /장철문 이번 태풍은 달이나 세수시키고 갔다 착해빠져서 육지에는 발도 올려놓지 못하고 피도를 시켜서 방파제나 몇 번 때리고 갔다 그냥가기는 서운해서 어미 손으로 싹 훔쳐낸 아이 얼굴처럼 달이나 세수시켜 놓고 갔다 - 현대시학 / 2017년 1월호 역대급 태풍을 기억하시는지요? ‘매미’나 ‘루사’, ‘사라’처럼 청순한 여인네 같은 이름임에도 이 땅을 할퀸 상처와 인명, 재산 피해는 엄청났지요. 연례행사인 듯 덮치는 태풍의 위력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 가공할 만한 태풍이 어리숙하다니요. 흡사 간절히 태풍을 기다린 듯한 이 싯귀는 우리들의 통상적 인식을 단번에 뒤집습니다. 정말 착해빠지군요. 달이나 세수시키고 방파제나 몇 번 때리고 가다니, 도저히 태풍에 걸맞지 않는 이런 발상의 시선은 혹 패러독스기법일까요. 아니면 태풍의 순기능이 그립기도 해서일까요? 수자원확보나 해수 및 대기 정화와 지구위도상의 고른 열평형의 기여 등. 태풍은 인간에게는 위협적이지만 우주적으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자연현상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
1970년대의 어느 봄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쑥스럽고도 감개무량했다. 가족들에게 학교에서 본 공문 내용을 전했다. “대학 가기도 좋아지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자랑스러웠다. 아내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때도 대학진학은 지난하였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심해서 마침내 그대로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교육개혁운동 같은 것이 전개되었거나 대입제도 개선방향이 발표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그 ‘선언’은 허사(虛辭)였다. 내가 직접 관여한 양 호언장담한 ‘청사진’은 흐지부지 되어 12년 후 그 애가 겪은 대입전형 역시 유례없이 치열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지만 ‘마음껏’ 공부하기는커녕 우선 가고 싶은 대학에 호락호락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 상처는 중년을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그 아이를 따라다니는 괴물이 되고 있다. 대입전형제도가 또 바뀐다고 한다. 그동안에도 끊임없이 바뀌어왔다. 광복 후 9년간 대학별로 입학시험을 실시하던 것을 바꾸어 1954년부터는 대학입학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