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이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와 가정과 학교의 협력적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체계적인 학부모교육 계획을 발표했다. 굳이 근래 초미의 관심사가 된 일부 학부모들의 교권 침해 이슈가 아니더라도 ‘부모 교육(Parent education)’의 필요성은 우리 사회교육의 핵심 과제다. 도교육청의 학부모교육 계획이 교사와 학부모 등 교육 현장의 소통지수를 높이고 건강한 교육 문화 환경 조성에 긍정적 효과를 일궈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경기도교육청은 우선 초1·중1·고1 학교급 간 전환기 학부모 대상으로 교육자료를 개발해 학부모의 건강한 교육 참여를 지원한다. 내년 1월부터 운영하는 신입생 학부모교육은 ‘부모 역할 이해’, ‘자녀교육 역량 강화’, ‘건강한 학부모교육 참여’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또 학부모교육이 학교에서 실효성 있..
1. SNS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다. 세계 최초의 SNS는 1995년 미국에서 시작된 (친구 찾기 사이트)‘클라스메이트’로 알려져 있다. 이런 유형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현대인의 삶 속에 뿌리내린 일등 공신은 역시 마크 주커버그가 창시한 페이스북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후발주자들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지만 페이스북은 여전히 세계 최대 SNS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페이스북이 속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 메타(meta)가 세계적으로 여러 사건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올해 5월 유럽연합(EU)으로부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무려 12억 유로(우리돈 1조 7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유럽연합 내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미국으로 무단 전송한 행위 때문이었다. 아마존 등의 다른 빅테크 기업도 유사한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반복성과 위반 정도에 있어 비교를 불허하는 것이 메타다. 이 회사의 얼굴마담 격인 페이스북이 한국에서도 말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년 7월에는 맞춤형 광고에 활용할 목적으로 도를 넘어설 정도로 상세한 사용자 개인정보 수집을 시도했다. 그 같은 개인 정보를 정부 및 수사기관에 공유하거나, 외국으로 이전하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SNS 출입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거였다. 비판여론이 커지고 마침내 정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시정명령을 내리자 이를 철회하기는 했다. 2. 이 기업의 무리한 행태는 개인정보 수집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한층 심각한 사고를 치고 있는 중이다. 김종인, 주진형, 장하준 등 경제관련 인사는 물론 백종원, 황현희 등 유명 방송인의 이름과 사진을 도용한 주식 리딩방(주식 종목을 추천해주는 불법 유료 사이트) 광고를 대대적으로 게재한 것이다. 누가 봐도 노골적인 사기 광고다. 피해자 양산의 관점에서 중차대한 사회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초상권 침해 당사자가 페이스북에 신고를 하고 해당 광고 삭제를 요청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반응이 황당무계하다. (자기들만의 임의적이고 비밀주의적인) 커뮤니티 규약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 규제도 할 수 없다는 거다. 그들이 직무유기에 가까운 이런 대응을 하는 이유는 뻔하다. 아무리 반사회적인 광고라 해도, 광고수익만은 절대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3. 페이스북코리아가 게시물을 광범위하게 검열하고 헌법이 보장한 표현자유를 탄압한다는 비판이 파다하다. 지난 번 칼럼에서 필자가 지적한, 홍범도장군 흉상 철거와 관련된 이동순 시인의 시작품 무단 삭제와 징벌이 대표적 사례다. 그 같은 무도한 행태에 항의하여, 온라인 공간의 게시물 검열을 규탄하는 저항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10월 3일 개천절 하루 동안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페이스북 접속을 거부하는 일종의 시민불복종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코리아는 꿈쩍도 안 하고 있다. 이 회사가 목적의식적으로 조장하는 지금 사태는, SNS라는 사회적 소통도구의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제기한다. SNS 커뮤니티는 서버를 통해 온라인 공간을 제공하는 빅테크 기업의 단순한 독점 소유물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의 막강한 브랜드자산 가치를 창출해주는 힘은 따로 있다. 매일 매일 정성껏 콘텐츠를 만들어 ‘담벼락’에 게재하고, 더불어 정보와 감정을 교류하는 SNS 사용자들이 진정한 주인이다. 사용자가 존재하지 않고, 그들이 창조하는 콘텐츠가 없는 SNS는 단지 형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4. 페이스북코리아의 사기성 광고 게재와 게시물 검열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사용자 권리에 대한 집요한 무시가 그것이다. 나아가 시민사회의 상식을 부정하는 도저한 공격성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 SNS 플랫폼이 자기들 정책의 타당성 근거로 주장하는 커뮤니티 규약의 폐쇄주의적 본질이다. 사기광고 피해자들과 게시물 검열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분노하고 개탄하고 있다. 왜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을 일체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개 온라인 기업의 오만방자가 도를 넘고 있다. 지금 페이스북코리아의 행태는 결코 우연이거나 일회적 성격이 아니다. 이 모든 무리수와 상식파괴는, 편법을 동원하는 한이 있어도 수익을 챙기는 데는 한 치 물러섬이 없는 글로벌 자본의 근원적 속성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페이스북코리아 책임자에게 정면으로 묻는다. 당신은 플랫폼에 게재한 반사회적 사기광고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같은 심의규정에 대한 어떤 구체적 설명도 없이, 사용자 게시물과 심지어 순수 문학작품에 대해서까지 가혹한 검열을 자행한다. 이런 작태는 페이스북 최고 경영 책임자 마크 주커버그의 의지인가. 아니면 페이스북코리아 경영진의 독단인가? 김동규 동명대 교수
음악이 없는 나라가 있을까. 노래 불렀다고, 악기를 연주했다고 죽임을 당하는 나라가 있을까. 21세기, 대명천지에 그런 나라가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통치 하에서 문인들은 책을 벽장 깊이 숨기고 화가들은 그림을 땅에 묻는다. 예술 학교는 폐쇄되고 음악인들은 고국을 탈출한다. 평생 노예인 이보다 불행한 이는 ‘자유의 맛을 본’ 노예라던가.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한 때, 공산정권이 들어섰었고, 미군이 주도했다. 그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눌러, 국민들은 뜻밖의 자유를 구가했다. 그 경험이 지금의 고통을 더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탈레반은 누구인가. 중앙 아시아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실크로드 역사와 맞물리며 전개되었다. 동서양 요충지라 숱한 강대국의 말발굽 아래 시달려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이 국가 모양새를 갖추고 역사에 등장한 것은 18세기 중반, ‘두라니 제국’이다. 제국은 100년도 안돼 망하고 이어 바라크자이족이 정권 잡은 ‘아프가니스탄 왕국’이 오늘날의 국경선을 만들었다. 제국주의 시대인 19세기와 20세기 초, 영국과 세 차례에 걸친 80년간의 전쟁으로 쇠락해가던 아프가니스탄은 70년대 이르러 소련의 영향으로 공산국가가 된다. 탈레반은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교도인 나라에 공산주의를 강제 이식하는 과정에서 뿌려진 씨앗이다.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남녀차별 없는 공산이념과 사유재산을 인정하고(부자가 빈자에게 재산을 베푸는 선행을 장려한다) 여성보호란 명목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이슬람 교리는 정면충돌한다. 1979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반정부주의자 소탕을 명목으로 침공한다. 미국이 이를 두고만 볼 리 없다. 당시는 서슬 퍼런 냉전시대. 미국은 소련과 싸우는 이슬람 세력에 무기 제공 등 경제 원조를 한다. 이슬람 세력의 끈질긴 저항과 미국의 원조로 소련은열세에 몰려, 침공 10년만인 1989년, 백기를 든다. 소련이 물러가고 미국이 손 놓아 혼란에 빠진 아프가니스탄에 구원자로 등장한 존재가 바로 탈레반. ‘탈레반’은 ‘학생’이란 뜻인데, 아프가니스탄 지방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공부하면서 성장한 학생들이 뭉쳐 만든 집단이었다. 탈레반은 1996년, 부패 정권을 뒤엎고 집권에 성공한다. 나 몰라라 하던 미국의 재등장은 2001년 발생한 9.11테러 사건 때문이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쳐들어가 숨은 테러 주동자,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잡아내 사살한다. 분이 덜 풀린 미국은 테러 근절을 내세워 아프가니스탄에 눌러앉는다. 20년 가까이 주둔하던 미군은 ‘얻는 것 없이 돈이 너무 들어가잖아!’라는 트럼프의 한마디에 철수계획이 세워졌고 바이든 정부에 의해 2021년, 실행된다. 미군에 의존하던 무기력한 정권은 바로 탈레반에게 백기를 들고 정권을 넘긴다. 다시 탈레반 세상이 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민속 악기 중, 깃작(ghichak)라는 현악기가 있다. 해금처럼 세워놓고 앉아서 켜는 악기인데 투박한 모양새, 애달픈 소리가 민초들의 것임을 느끼게 한다. 주술처럼, 아프가니스탄의 그 낯선 땅 한가운데로 훌쩍 데려가는 그 신묘한 소리가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2011년, 탈레반이 파괴해 사라진 바미안(Bamiyaan)석불처럼 말이다. 지난 여름, 탈레반이 ‘파와드 안다라비’라는 민요가수를, 깃작 연주를 계속한다는 이유로 살해했다는, 기막힌 뉴스를 접하고,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한다.
김포시 감정4지구 사업은 그동안 전시장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특혜 의혹 등으로 진척이 지지부진했다. 이 사업은 김포시 감정동 598-11번지 일원 22만1248㎡ 부지에 2605여 가구의 공동주택과 공원 등 도시기반을 설립하는 사업이다. 개발 장기화에 따른 낙후된 도시환경으로 도시 슬럼화가 진행됨에 따라 체계적인 도시개발을 통한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도심을 활성화하기위한 사업이다. 사업비 약 2300억 원을 들여, 2025년에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시작된 이 사업은 당시에는 민간개발 방식이었으나 김포시가 2018년 민관 합동개발 사업방식으로 전환했다. 김포도시관리공사가 50.1%의 지분을 갖고, 민간은 49.9% 지분을 갖는다. 2018년 12월 민간사업제안서를 접수한 뒤 2020년 8월 ㈜감정4지구도시개발..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부분은 절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두가지를 덧붙여서 말씀드리면……탈세와 조세회피 절세(Tax saving)는 합법이고 정부에서도 정책적 목적으로 권장하는 사항이며, 탈세(Tax evasion)는 그야 말로 범법 행위이어서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각종 가산세 및 경우에 따라서는 조세범으로 형사처벌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면 듣기에 조금은 생소한 조세 회피(Tax avoidance)란 무엇일까? 조세회피란 세법에서 불법이나 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과세형평과 조세정의의 입장에서 볼 때 부당한 방법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을 말한다. 즉 불법은 아니지만 세법이 예상하지 못하는 거래형식이나 그 우회 경로를 통해 세금을 절감하는 행위로서 절세와..
극장이 사멸중이다. 극장용 영화가 죽어가고 있다는 얘기는 코로나 때부터 터져 나왔다. 포스트 코로나, 뉴 노멀 시대가 매우 불안하다고들 얘기했는데 이제는 정말 죽었다, 망했다로 귀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극장 티켓 가격은 최고치를 찍고 있다. 주말에는 1만6천원까지 받는다. 거기에 가계 대출금리는 오르고 모든 물가, 심지어 라면 값까지 올라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다. 사람들이 제일 먼저 줄이는 게 문화 소비다. 엥겔 계수가 높아진다. 이런 와중에 주무부처의 장관은 유인촌이 됐다. 그는 강성의 자본주의자이다. MB시절이 학습효과를 생각하면 그는 선택과 집중 논리를 내세울 것이다. 되는 영화에만 지원을 하려 할 것이다. 이른바 낙수 효과 론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되는 영화만 지원한 결과 되는 영화까지 망하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 이건 보수 정부, 진보 정부 가리지 않고 비판 받아야 할 대목이다. 어찌 보면 문재인 정부 때 최고의 기회를 놓쳤다. 문재인이 문화 정책을 우선시하지 않은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도종환-박양우-황희로 이어지는 장관 명단은 지금 봐도 그리 명석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정부의 박보균 – 유인촌 순번은 지나치게 정치적 판단에 입각한 인사로 보인다. 물론 영화는 지도급 인사들에 상관없이 스스로 생존해 온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극장용 영화가 망하고 있는 것은 이놈의 사회 탓일까 아니면 영화 스스로가 못나고 잘못한 탓일까. 국내영화산업이 ‘잘 나가던 때’는 1년 총 관객 수가 2억 명을 넘게 찍었다. 현재까지, 3/4분기까지의 추세를 보면 1억3000만을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 토막이 났다. 지난 9월 관객 수는 추석 연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수가 660만명에서 그쳤다. 최대 비수기라는 4월의 약 700만 관객 수에도 못 미친 수치이다. 한국 블록버스터급 흥행 영화의 창시자(?)였던 강제규 감독의 ‘1947보스톤’이 100만을 못 넘기고, 강동원이 나온 ‘천박사 퇴마연구소 : 설경의 비밀’도 BEP 한참 전에 무너졌으며,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영화적 완성도가 뛰어나고 송강호가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30만(세상에!)을 넘기지 못했다. 오늘 내일 하던 극장이 이번 9월-10월로 사실상 뇌사 판정을 받은 셈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원인 분석이 정확해야 한다. 영화 배급유통 전문가 이하영 씨의 얘기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는 “1960년대 TV의 보급이 대중화 됐을 때도 극장의 위기는 찾아 왔었다”며 “그러나 10대와 20대들이 극장으로 돌아 온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OTT 탓만 할 것이 아니라 10대와 20대를 겨냥한 영화들이 기획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그는 내다 본다. 이들 연령층은 1960년대나 지금이나 부모 세대와 같이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추석과 같은 주요 시즌에 있어 극장 소비의 중심은 팝콘과 콜라를 껴안고 극장 안에서 모임이나 데이트를 즐기는 어린 청소년들과 젊은 연인들이었다. 이하영 씨의 말 대로 이들에게 맞춤형의 영화(‘1947보스톤’보다는 ‘더 퍼스트 슬램 덩크’같은 것)가 없는 것이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이들의 주머니가 텅텅 비어 있는 것, 거기에 물가는 천정부지의 수준이라는 것, 젠더 갈등의 심화로 남녀가 잘 만나지 않는 것, 마이너스 출산율에 따라 젊은 층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 등등 정치사회 현상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건 빈곤의 악순환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극장용 영화가 망하고 있는 것은 영화 탓이기도 하지만 사회 탓이기도 하다는 얘기이다. 그 솔루션은 두 가지 다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1차적으로는 큰 극장에 들어 갈 영화의 경우 정교하게 구분해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젊은 층을 끌어 낼 수 있는 영화들, 결국 청춘물이나 애니메이션들이 돼야 할 것인 바 이럴 경우 결국 일본 ‘꼴’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여기에서도 단계적으로, 균형 있게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영화와 드라마 등등의 구별없이 콘텐츠라면 모두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새로운 감독과 제작자, 배우를 발굴할 수 있는, 산업저변까지 지원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큰 극장 시스템에 의존하는 정책은 버릴 때가 됐다. 독립영화 예술영화 작은 영화관, 개성있는 영화제에 집중하는 차별화된 정책을 펼쳐야 할 때이다. 이런 추세라면 체인 극장들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기업 영화사의 수직계열화(배급사와 극장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 문제,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단초이다. 전환기에 정책도 발상의 전환으로 맞서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양적 확대이다. 영화와 문화산업의 성장을 위해서 지금은 돈을 풀 때이지, 선택과 집중이라는 허울 아래 돈을 묶을 때가 아니다. 그런데 유인촌 장관이 과연 그렇게 할까? 언감생심이다. 때문에 극장용 영화는 이제 곧 사망선고를 내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두려운 일이다.
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리기로 방침을 정한 가운데 민주당도 이에 적극 동조하고 나서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또한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의대증원을 추진할 때 강도높게 비판하던 국민의 힘과 유력 보수매체들도 일제히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민 여론도 매우 우호적이다. 그동안 의사협회의 파업 등 초강경 투쟁에 막혀 좌절됐던 의대증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여야정 모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극단적인 정쟁에 빠져있는 여야정이 의대증원에 대해서 모처럼 한 목소리는 내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체계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경기도 용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환자가 구급차 안에서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숲으로 이어진 길을 걷고자 아파트 뒷문으로 나섰다. 어린이 놀이터에 자리 잡고 있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들이 길가 콘크리트 벽 쪽으로 몰려 쌓여 있다. 가을이면 도심의 길가 가로수 아래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엔 다른 시선으로 씨앗에 대한 생각을 안고 걷게 된다. 그동안 나는 이 은행나무의 잎 지는 모습에만 눈을 주었지 식물로서 생식생장을 위한 씨앗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은행나무는 아름드리나무가 될 때까지 한 해 한 해 버텨오면서 가을이면 후대를 위한 나무를 생각하며 열매 맺어 지상으로 내려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은 일찍부터 은행나무 열매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방의 땅이 온통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씨앗이 비집고 들 틈이 없었다. 그래도 은행나무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본능적으로 ‘행여나’하고 열매를..
경기도가 오는 2027년 열리는 제108회 전국체육대회 유치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가운데 화성시가 주 개최지로 선정됐다. 지난 10일 열린 경기도체육회 3차 이사회에서는 화성시가 주 개최지로 선정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전국체전 화성시 개최’ 성사여부는 내년 3월에 열리는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대한체육회는 오는 11월 10일까지 2027년 전국체전 유치 신청을 받고 있는데 경기도에서 전국체전이 열리는 것은 2011년 제92회 고양시 대회 이후 16년 만이라서 기대해 볼만 하다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는 알 수 없다. 수원시와 의정부시도 전국체전 유치를 검토했었다. 그러나 수원시는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부지문제로 포기했다. 보조구장은 육상 선수들이 컨디션을 조절하는 곳으로 메인 경기..
원시인류는 무리를 지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협력하며 사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미지의 세계인 자연환경과 날씨의 변화, 지진, 화산 폭발, 그리고 맹수들의 위협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은 협력이었다. 예수의 교훈을 유럽에 전파한 바울은 신자들이 협력하며 지낼 것을 권했다. 협력하며 사는 것은 비단 유대인들만의 지혜는 아니었다. 협력은, 수 백 만년 동안 경험하면서 터득한 인류 공통의 지혜였다. 그럼으로써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협력의 대상은 무리의 구성원에 한정되었다. 한 무리의 규모가 커지고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동안 지구적인 규모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무리의 수가 많아지면서 서로 남이 된 무리들 사이에는 긴장이 조성되었다. 나와 일체가 되었던 무리의 구성원들에게 남이 라는 대상이 등장했다. 구성원들 사이의 협력은 강화된 반면 다른 무리들은 모두 적이 되었다. 나와 남. 물론 모든 무리들이 처음부터 적대시하고 다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를 이루어 수렵과 채취 단계를 거쳐 농사를 짓는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무리들은 다른 무리들과 생산물을 교환하며 살아가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터득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긴장은 유지되었다. 이런 양상과 관계는 씨족사회와 부족사회를 거쳐 고대국가에 이르기까지 유지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긴장과 협력의 역사를 남기게 된다. 나와 남을 구분하는 이분법은 현재의 국제관계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치는 한편으로 국제관계는 동맹 아니면 적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철천지원수처럼 싸운다. 지구촌 인류는 둘 중 어느 한 편을 지지하며 분열되어 있다. 남북으로 갈리진 한반도는 한미일과 북중러 대결의 코어가 되었다. 이분법은 철학과 이념의 영역에서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인류사회는 보수와 진보, 관념론과 유물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무수히 많은 이분법적 대립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유일신 신앙의 기독교는 다른 모든 종교와 대립한다. 협력하여 살아남아 호모 사피엔스가 된 인류는 대립과 다툼으로 공멸의 길을 가고 있다. 이분법으로 갈라진 대립의 해소 방법은 없을까? 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진 영원한 운명인가? 호모 사피엔스 다운 지혜를 발휘할 수는 없을까? 양자역학의 선구자였던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에서 그 해법을 찾아볼 수 있겠다. 미시세계에서 전자의 운동에 대한 연구가 입자이론과 파동이론으로 대두되자 보어는 동양의 주역에서 답을 찾았다. 두 이론은 대립되는 게 아니라 상보적이라고 정리했다. 실제로 두 이론은 같은 결과인 것으로 증명되었다. 전자의 운동은 입자이면서 파동이었던 것이다. 자연의 질서 속에 지혜가 있다. 이분법은 인류의 좁은 소견일 뿐 자연의 질서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