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은 기회에 지난 3~4/4분기 동안 전라북도 8개군 6개 도시를 다닌 적이 있다. 작은 극장을 순회했다. 8개 군이라 하면 부안 고창 순창 임실 장수 진안 무주 완주군을 말하고 6개 도시라면 전주 군산 익산 김제 정읍 남원시를 말한다. 전라북도는 다른 지차체에 비해 면적이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대체로 전주에 머물며 하루 일정으로 동쪽 지역의 군을 다니고 또 다른 하루 일정으로 서쪽 지역 군을 다니곤 해도 됐을 정도다. 그렇게 다니면서 뛰어난 지역 풍광(마니산 같은)이나 지역 발전의 모티프(임실 치즈 같은)때문에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충격을 받았다. 인구 때문이었다. 8개군의 평균 인구는 대체로 2만명 안팎. 거의 절멸 수준이었다. 특히 젊은 층 인구는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전북 도와 각 군, 시가 의지를 가지고 40석~60석 수준의 지역 극장을 만들어 영화 문화의 확장을 꾀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음에도 불행하게도 그 선의의 역할이 거의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유일하게 극장 문화가 극장 문화답게 유지되는 곳이 무주 군으로 보였는데 그건 순전히 이곳의 무주산골영화제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나머지 극장에는 단 40석에 불과한 공간임에도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전체 인구가 2만이 되지 않는 곳에서는 극장이 운영될 수가 없다. 극장은 거의 백퍼센트 유동 인구가 차고 넘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그게 전통적인 판단이다. 영화제를 초기에 기획하고 조직하는 사람들이라면 제일 처음 보는 것이 인구가 대체 얼마냐는 것부터 이다. 이들 전문가들은 최소 50만명이 있어야 영화제의 채산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의 전주시, 경기도의 파주시 정도가 리미트이다. 전라북도 8개군을 돌아 보면서 여기에서는 영화를 얘기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사람이 없는데 무슨 영화이겠는가. 하지만 그 반대로 극장과 영화에 대한 갈증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장수군에 신전마을이란 곳이 있고 여기는 25가구가 사는 산골 마을인데 바로 이런 곳에서 ‘섶밭들 산골마을 영화제’ 같은 것이 열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영화가 문화로서 통용되긴 한다. 문제는 영화가 산업으로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영화가 산업이 되지 못하는 곳에서는 결국 문화로서의 영화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래서 전라북도 8개 군을 다니면서 마음 속 한 구석이 참담했다. 이거 이러다 오래 못가겠구나. 전라북도가 오래 못가고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도 오래 못가겠구나. 사람이 없고 젊은이들이 없고 아기들이 태어나지 않는 나라에서 어떻게 영화가 잘되겠으며, 어떻게 대학이 운영되고, 어떻게 소아과와 산부인과가 살아 남겠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지금 윤석열 정부는 고민을 하고 있는가. 영부인은 이런 문제의식의 가치가 샤넬 명품백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가. 인구를 당장 생산해 늘릴 수 없다면 인위적으로라도 늘려야 한다. 중국 베트남 아프리카 남미 등등에서 유학생들을 오게 하고 값싼 노동자들에게 장벽을 낮추고 영주권도 잘 주고 그들의 자녀에게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줘야 한다. 문호를 열어야 한다. 그럴려면 마인드를 열어야 하고 이데올로기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 공산주의권 출신이어서 싫고, 피부색이 달라서 싫고, 동성애자여서 싫고 등등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결국 남는 게 없다. 우리 자신이 소멸한다. 총 41 가구에 불과한 불가리아 국경 마을의 우체부인 노인은 매일 자신의 집 주변을 흘러 가는 집시와 그의 아이들을 보면서 저들이 자신의 마을에 들어 와서 살면 마을에 아기들의 웃음과 울음 소리가 넘쳐 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 여자 시장이 반대하는데다 빨간 운동복을 입고 다니는 동네 불량배 또한 집시는 에이즈 환자들이라며 반대한다. 그래서 우체부 노인은 자신이 직접 시장을 하겠다며 선거에 나간다. 핀란드 영화 ‘굿 포스트 맨’의 줄거리이다. 우리도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 마음과 생각의 국경, 장벽을 열 것이냐 닫을 것이냐. 낮출 것이냐 높일 것이냐를 놓고 다시 한번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뭐 이미 선거는 잘못 해 본 경험들이 있으니만큼 다음엔 잘들 할 것이다. 행여나!
오늘은 옛날 세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국가라는 조직은 있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으로서 세금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을 것이다. 먼저 서양에서의 세금의 역사는 고대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로마 제국의 세금에 대한 문헌들이 더러 남아있고, 그 중에서 로마 제국은 광대한 영토와 방대한 인구를 다루기 위해 세금 제도의 정비와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로마제국의 세금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에 세리가 등장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후 중세에 들어서는 유럽 역사의 암흑기라 불리는 만큼 세금과 관련해서도 뚜렷한 체계나 제도에 의하지 않고 봉건 영주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모습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영주와 국왕들의 세금 착취와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로빈훗의 모험’이다. 이후 근대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조세 제도가 형성되는데, 당시에는 국가 간 전쟁, 식민지 확장 및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한 재원 조달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자 그러면 옛날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에게는 세금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사 실력이 뛰어난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우리나라에 있어서 역사상 세금의 기원은 삼국시대에 등장한 ‘조 · 용 · 조’ 제도이다.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그 의미를 살펴보면 조(租)는 전(田)에 부과되는 전조(田租)를, 용(庸)은 신(身)에 부과되는 인두세를, 그리고 조(調)는 호(戶)에 부과되는 호세를 각각 의미한다. 이를 좀더 쉽게 풀이하면 조(租)는 토지의 산출물에 부과되는 지세(地稅)이고, 용(庸)은 부역 노동이며, 조(調)는 지역 특산물이나 수공예품을 납부하는 것을 말한다. 삼국시대 ‘조 · 용 · 조’의 구성 비율을 살펴보면 세가지 세금 중에서 조(租)’가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농업경제에 기반한 국가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며 당시 토지가 핵심적인 생산요소였고, 당연히 백성들에게는 농업이 주요한 수입의 원천이었으며, 나아가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나라의 재원도 주로 토지생산물에서 찾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이렇듯 고대의 조세제도는 토지와 직결되는 것이었다. 고려의 조세제도는 중앙집권적 봉건국가로서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는데 조세 부담 계층인 농민의 부담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으며, 전조 · 공세(貢稅)와 요역 및 군역이 그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조 · 용 · 조의 조세체계에 기반을 둔 봉건국가의 조세라고 할 수가 있으며, 토지 국유제의 원칙하에 그에 예속되어 있는 일반 농민으로 하여금 농지를 경작하게 하고, 대신 전조 · 공세와 요역 및 군역 등을 조세로서 수납하는 것이었다. 500년 가까이 유지되던 고려 왕조가 무너지게 된 사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고려말 권문 세족으로 표현되는 구세력들의 토지 소유와 조세제도 운영의 문란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라고 한다. 한편 토지 개혁을 통한 조세의 형평성이라는 명분으로 건국한 조선의 재정조직은 전기에는 근본적으로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재정수입을 토지 기반의 농민 조세부담에 의존하였다. 다만 재정수입 중 상공세의 비중이 보다 커졌다는 특색이 있을 뿐 절대적인 비중은 농민 부담에 있었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역시 전조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황구첨정’, ‘백골징포’, ‘족징’, ‘인징’ 등과 같은 기행에 가까운 세정의 타락과 악습들로 인해 국가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민심이 크게 술렁이게 된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조세 제도의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영정법, 대동법, 균역법 등 국사 교과서에서 들어본 조세 개혁들을 시행하지만 체제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과 개혁에 대한 구세력들의 저항 등으로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해 결국에는 조선이라는 국가가 근대국가로 진행하지 못하고 군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큰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과거 이 땅의 세금 이야기를 큰 흐름으로만 살펴 보았지만, 근대 이전의 세금제도는 대체로 토지와 개인을 과세표준으로 하여 부과되는 체계임을 알 수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 제도가 원활하게 작동할 때는 그 국가 체제가 유지 발전하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상황에 들면 체제 위기나 국가 전복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무수한 세계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조선 말 동학혁명은 탐관오리들의 가혹한 징세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고, 프랑스 대 혁명과 미국의 독립전쟁도 당시 부조리한 세금정책에 반대하여 벌어진 사건들로 인한 것이다. 현대 국가에서는 조세법도 하나의 법률이므로 국회라는 입법 기구를 통해 제·개정이 이루어진다. 이따금 국가 경제의 유지 발전 보다는 정파적인 이익의 관점에서 조세법이 다루어지는 모습을 볼 때 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다른 많은 법률 분야도 마찬가지겠으나 특히 조세는 일반 국민의 생활 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의 근간이 되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다. 내년도 세법 개정이 이루어지는 연말 이 시점에 올 해는 부디 정치 논리를 떠나 그야 말로 국리민복의 정신을 담은 좋은 제도를 만들어 주기를 기원해본다.
아이들의 언어 정서에 비상이 걸렸다. 비속어와 욕설이 뒤범벅된 청소년들의 언어 습성을 정상화하는 일이 난감한 숙제로 떠오른 가운데, 상당수 경기도 초·중·고 학생들이 언어폭력의 그늘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대로 된 가정교육과 학교에서의 인성교육 시스템 붕괴가 불러온 참사로 해석된다. 아이들의 비뚤어진 언어 정서를 바로잡는 일만 가지고는 안 된다. 언어폭력이 상시로 흘러 다니는 사회·문화적 환경 개선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이 도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언어폭력’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도교육청이 지난 4월10일부터 한 달간 초4~고3 학생 112만여명(전수)을 대상으로 ‘2023년 1차 학교 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해 88만2000여 명(78.7%)으로부터..
언론은 내년 총선 얘기로 뜨겁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언론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는 선거에 더 관심이 크다. 바로 이장 선거다.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 이장이 있는 마을에서 요즘 선거가 한창이다. 다양한 복지행정 수요 등을 파악하고 행정 서비스를 원활히 민생의 현장에 전달하기 위해서 이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마을의 발전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마을 이장이 누구냐가 마을 발전에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마을 발전을 잘 이끌던 이장이 바뀐 후 마을이 침체하는 예도 봤고 그 반대의 경우도 봤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면서 마을이 소멸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장을 보면서 많이 개탄스러워하기도 했다. 이장은 촌 기초지자체의 말단 직책이다.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이장이 움직이질 않으면 그 정책은 주민들에게 전달되기 힘들다. 이토록 중요한 이장은 주로 누가 될까? 일단 이장 일 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시시때때로 행정 일을 봐야 하고 주민의 민원에 응해야 하기때문에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수 있는 주민이어야 한다. 그러니 고정된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맡기 어렵고 주로 마을에서 농사를 짓거나 소상공업을 하는 사람이 맡기 쉽다. 또 마을에서 나고 살아왔던 선주민이 이장으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다. 주민 입장에서 어려운 민원을 넣거나 정부의 지원 혜택 정보를 먼저 얻기 위해서라도 학연, 혈연으로 얽혀있는 사람이 편할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이장 일로 받는 보수는 얼마일까? 행정안전부는 현재 월 30만 원이던 이장 수당을 내년부터 4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지난 10월 30일 발표했다. 상여금, 회의 수당 등을 합치면 월 50만 원 수준이 된다. 월 50만 원을 받고 아무 때나 부르면 달려가 온갖 민원을 처리해야 하고 때로는 주민에게 욕도 먹고 공무원에게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하고,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는 일. 독자라면 하겠는가? 유휴인력이 있는 도시에서도 찾기 힘든 주민을 소멸위기의 초고령화된 마을에서 찾기는 더더욱 힘들다. 설령 시간과 소득의 여건이 맞더라도 마을을 위한 헌신성이 없으면 맡기 어려운 자리다. 상황이 이러니 역량이 부족해도 또는 이장 일 싫다고 해도 ‘마지못해 이장을 맡는 거니까 어려운 일 시키지 마라’ 라고 하는 주민을 이장으로 모셔야 할 판이다. 그렇게 뽑힌 이장이 마을 일을 열심히 또는 잘할 리 만무하다. 행안부는 이장 수당을 인상하면서 ‘안전관리 기능의 강화, 역할의 증가’ 등의 이유를 들었다. 헛웃음이 나온다. 대한민국 초고속발전의 중요 동력으로 우수한 인력을 꼽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 우수한 인력들은 촌을 떠나 도시로 간 인력들이다. 촌에 남아있는 선주민 중에는 우수한 인력이 거의 없거나 있었더라도 고령화돼서 활동이 어렵다. 농업 종사자의 문해 능력, 정보화 역량이 모든 직업군 최하위라는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 이장은 그런 선주민들 중에서 주로 뽑힌다. 10만 원을 더 올리면 무엇이 바뀔까? 인력에 대한 투자 없이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 지면의 제약으로 더 하고픈 말은 못 담겠다. 중앙의 탁상행정에 그저 또 돈 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산길은 사람의 발에 밟힌 낙엽이 으깨져 흙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생명은 왔던 그 길이나 그곳으로 가는 것인가! 내 나이 적지 않은데 나의 갈 곳은 어디며 언제쯤일까. 12월의 가슴은 무겁고 축축하다. 청주에 사는 수필가에게서 수필집을 보내왔다. 꽤 오랜 인연 속에 한 번도 인사를 거르지 않은 작가다. 그와의 인연은 J신문사 신춘문예 심사를 내가 맡았을 때 그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힌 결과로써 시작되었다. 그런 그가 내게 금년을 마무리하는 결실의 의미로 보낸 선물 같았다. 존경했던 고하 선생님은 얼마 전 고인이 되었다. 생전의 선생님은 누가 책을 보내오면 꼭 편지나 우편엽서로 ‘잘 받았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연말연시의 인사나 덕담을 편지로 주고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휴대폰 문자 때문에 우체국에서도 경조카드 자체를 없앴다. 을유문화사에서 낸 『동국세시기』 12월을 보면,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믐날 밤(除夕)에는 2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이 대궐에 들어가 묵은해 문안을 드렸다고 적혀 있다. 사춘기를 벗어난 성인으로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을 체감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해한다지만 쓸쓸하고 저리다. 그래서인지 작은 일에도 서운해지며 우울하다.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착하게 살아온 결과가 이거냐 싶다. ‘마음의 지게’를 한 번도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온 그 세월이 얼마인데- 수많은 날 공들여 잡은 물고기들을 상에 떼에게 물어 뜯겨버린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 생각이 날 때도 많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인지 그릇된 편견인지- 가끔은 인류를 ‘털 없는 원숭이’라고 한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이 생각난다. 12월도 가운데 토막이 지나간다. 크리스마스 성탄절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내와 근사한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했어도 그녀는 한 번도 불평한 일이 없었다. 아이들 또한 착하게 성장해 주었다. 앞으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친 아우 같은 오 선생에게 전화가 걸려와 그의 차로 편백 숲 영화촬영지를 거쳐 가마솥에서 담백한 점심을 먹었다. 이어서 차를 한잔 마시며, 그는 내가 형님에게 우리 손자 지온이가 과학고에 들어갔다고 자랑했으니 오늘은 손주 자랑 턱으로 잘 모시겠다고 했다. 이성계가 개국 전 기도하고자 다녀갔다는 상이암(上耳庵) 이 있는 산을 올라갔다. 암자 곁에는 ‘커피 한잔 어떻소!’라는 간판을 건 나무집의 무인 카페도 있었다. 하산하는 길에서의 생각이다 홀로 되어야 가족의 가치를 발견한다고, 가족과 아이들에게 너무 교육적으로만 건조하게 대했다는 후회가 가슴을 저리게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당당하게 노년을 보내라고 한다. 로마 최고의 정치가요 문인이기도 했던 키케로는 ‘무엇이 노인을 명예스럽게 하는가.’에서 말했다. ‘노년을 스스로 지켜가면서 자신의 권리를 유지해 나간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것들을 다스려 나간다면, 노년은 매우 영예로운 인생의 한 시기라네.’라고. 명예로운 권위! 그것은 젊은이의 쾌락보다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며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인가. 그러면서도 이 생각 저런 일들이 나이 드는 재미요 나이 값인가 하는 생각으로 갈아들면 하늘을 쳐다보곤 한다.
지난해 9월 24일 미국에서는 ‘전진당(Forward)’라는 정당이 창당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뉴욕시장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탈당한 앤드루 양과 공화당 출신인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 전 뉴저지 주지사가 주도해서 만들었다. 이들은 미국 정치의 뿌리깊은 양당 구도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에게 대안 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알리면서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스스로를 급진적 중도로 규정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대표적인 정책으로 내세웠으며, 오픈 프라이머리와 선호투표제를 미국 전역에 도입하는 것 등을 내세우고 있다. 나름의 정책비전과 양당제 폐해 극복이라는 대의명분을 제시하면서 제3당에 대한 지향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제와 소선구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 의회내 제3당이 만들어지는 것은 매우..
고령층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거주 비율이 비교적 높은 경기도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안전사고 발생 건수가 해마다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안전사고의 절반 이상이 넘어짐과 미끄러짐 등 ‘낙상사고’인 것으로 집계돼 안전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보강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상대적으로 생활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안전사고 위험에 시달려서야 될 말인가. 정책적 관심 집중이 긴요한 대목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경기도 내 임대아파트 생활안전 사고유형 및 위험요인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21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경기지역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생활안전사고는 6714건으로 집계됐다. 또 경기도 내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241건으로, 6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을 입었다. 연도별 생활..
수원 비행장 이전은 화성시민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화성시민만이 참가하는 주민 투표에서 수원 비행장을 화성시 관할 구역에 받아들이는 안건이 찬성으로 가결되어야만 한다. 정부의 주요 정책이지만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이 임의로 결정하고 강행할 수 없다.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인 만큼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야 한다.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약칭:군공항이전법)에서 이와 같은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대구국제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는 K2공군기지의 대구비행장도 이전 지역인 군위와 의성이 각각 주민 투표를 진행하였고 찬성으로 가결되어 현재의 부지는 재개발하게 되었고 새로운 지역으로의 신공항 건설 사업 계획과 규모가 완성되었다. 정부에서 이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광주나 수원 비행장의 이전도 이와 같은 신공항 건설..
킬러(killer)는 살인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의미가 무시무시해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할 용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 대상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능에서 정답률이 극히 낮은 문항을 ‘킬러 문항’이라고 언론이 써왔다. 대통령이 ‘킬러 문항’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유명세를 치뤘다. 지난 6월 15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던 윤 대통령이 수능의 어려운 문제를 지칭해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했다.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사업이 카르텔이냐”고도 했다. 특유의 과한 용어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교육부 대책이 이어졌다. 이 장관은 “올해 수능부터 킬러 문항을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은 수능 관련 이슈를 연일 대서특필했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교육부와 총리실은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감사에 착수했다. 평가원장은 나흘만에 사임했다. 5개월이 지난 11월 16일, 2024학년도 수능이 치러졌다. 언론은 시험난이도를 ‘킬러 문항은 없었지만, 국·영·수 다 어려웠다’는 기조로 보도했다. 정문성 출제위원장은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 문항’을 배제했고,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변별력을 확보하도록 출제했다”고 브리핑했다. 내용은 빠짐없이 기사에 담겼다. ‘킬러 문항’을 잡는 교사단이 가동됐고, 출제진서 ‘카르텔 교사’도 다 뺐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여기까지는 대통령의 지시가 완벽하게 이행되는 듯했다. 수험생들은 전혀 달랐다. 대부분 언론이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았으나 ‘불수능’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불수능’을 넘어 ‘용암수능’으로 불렸던 2022학년도 수능에 버금간다고 평가했다. 조선 칼럼은 ‘이어령도 울고 갈 국어’, 중앙일보는 ‘망국 공범 불수능’이란 표현을 써가며 어려운 수능을 연달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채점결과를 전하는 기사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했음에도 ‘불수능’이어서, 만점을 받은 학생은 1명이었다고 했다. ‘킬러 문항’이란 용어를 애써 피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9일자 1면 머릿기사에 ‘킬러 문항’ 용어가 제목으로 등장했다. 킬러 문항에 지방 학력이 저격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방에서 상위권 학생은 대폭 줄어들고 하위권 학생은 늘어났다는 기사였다. 대통령의 지시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음을 직격했다. 프레시안은 6월 윤 대통령이 수능출제에 직접 개입했던 것이 책임 부메랑이 돼 돌아온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여러 언론이 수능 만점자와 표준점수 전국 수석이 다닌 강남의 학원 등록금이 월 300만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만점자는 공교육만으로 수능 문제를 충분히 풀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6월 대통령 발언과 교육부의 발표 내용을 ‘수능이 쉬워질 것’으로 받아들인 수험생들은 어떤 마음일까. ‘킬러 문항’은 없었는데 ‘불수능’이었다는 언론보도에 수긍할까? 동의어를 수험생을 대상으로 말장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이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하나회가 군사쿠테타를 일으켰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박정희 사망 후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아 그들만의 봄을 누린 참혹한 계절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속 대사는 “세상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였다.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 싶은 강력한 메시지라고 본다. 현실로 돌아와서 보면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민초들은 아등바등 좀 더 나아진 세상으로 바꿔보려고 애를 쓰지만 수포로 돌아가거나 제자리 걸음일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선거시즌이 되면 여의도 정치권은 개혁을 한다, 혁신을 한다는 명분으로 혁신위원회, 비대위원회를 만들지만, 혁신이나 개혁과는 거리가 먼 용두사미로 끝나버리기 일쑤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도, 국민의힘의 인요한 혁신위도 반짝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