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재단의 장학사업팀 직원이 장학금 기부에 대한 보고서를 가지고 왔다. 화성시 향남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기부금 전달을 문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재단은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기부금 접수를 할 수는 있지만 장학금이나 기부금 모금을 위한 홍보를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학금을 기부 받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다. 별 생각 없이 결재를 하기 위해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니 사정은 이랬다. 이 학교에서는 매년 2학년 학생들 모두가 ‘우리가 마을을 위해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동안은 주로 학교 주변의 마을에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활동을 하고 싶어졌다. 2학년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찾아낸 일이 나눔장터를 여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서로 사고 팔아 모은 돈이 30만원이었다. 선생님들은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논의한 끝에 우리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화성시인재육성재단에서 형편이 어렵거나 운동, 예술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지원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동의를 구한 후 아름다운 돈 30만 원이 그렇게 우리재단으로 오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을 가볍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고사리 손으로 형편이 어려운 누군가를 돕기 위해 모금을 한 일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피드백을 해 주고 싶었다. 본부장을 통해 구체적 사실을 파악한 후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기로 했다. 아울러 12월에 발행되는 재단의 소식지에도 아이들과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을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실어주기로 했다. 행정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이미 지역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선생님을 통해 알고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있다. 나는 비록 어린 학생들이지만 그들이 한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재단의 소식지가 학교로 전달되었을 때 학생들의 표정이, 마음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나눔에 대한 생각은 이랬다. “우리가 준 돈으로 먹을 것을 사 먹고, 옷도 사서 행복하게 사세요”. “무엇을 나누어 주는 게 기부예요”. “우체국에 우편물로 물건을 보내어 힘든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어려운 친구에게 장학금을 주면 좋겠어요”. “친구들과 물건을 나누는 게 기뻐요. 기부도 하니 뿌듯해요”.
수원특례시와 캄보디아 시엠립주는 19년간 자매도시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수원특례시는 2004년 시엠립주와 국제자매도시결연을 체결한 후 빈민 지역인 프놈끄라옴 마을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원사업은 단계별로 전개됐다. 화장실·공동우물·마을회관·도로·다리 등 주민 자립기반을 조성했다. 이와 함께 마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중·고등학교도 설립했다. 현재 프놈끄라옴 수원마을은 시엠립주에서 가장 쾌적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됐다. 수원마을 주민들의 소득을 증대하고 자립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4단계 지원사업도 추진됐다. ‘양봉 시범 가구’ ‘버섯재배·새우양식 시범 가구’ 사업이 그것이다. 수원시의 지원은 의료부문으로까지 확대됐다. 2007년부터 ‘캄보디아 수원마을 의료봉사단’이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연인’은 배우들의 열연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역사를 실감 나게 재현해 내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재미있게 보던 중 인상적인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여인들만이 피난하던 중 은애는 만주 군에게 겁탈을 당할 뻔하는데 이 찰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길채는 가지고 있던 은장도로 만주군을 찔러 죽인다. “여인이 오랑캐에게 욕을 당하면 죽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잠시 적과 얼굴을 마주했다 해도 살 수가 있겠느냐”라고 받은 교육을 떠올리며 죽는 게 낫다고 절망하는 은애에게 길채는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라고 결연하게 말한다. 전쟁이 끝나고 정혼자인 연준이 은애에게 청혼하니 “나는 연준도련님의 각시가 될 자격이 없어,더럽혀진 몸이잖아”라며 한번 더 주저하는 은애를 설득하며 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하며 그 당시의 유교사회의 시선과 달리 혼인을 응원한다. 그 후 길채는 은애보다 더 심한 일을 당했지만 죽으려고 하지 않고 생명을 택하고 오히려 오랑캐에게 욕을 당했다고 치욕으로 우물에 빠져 죽으려는 여인도 구해낸다. 수치심은 거부되고, 조롱당하고, 노출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고통스러운 정서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여기에는 당혹스러움, 굴욕감, 치욕, 불명예 등이 포함된다. 수치심의 발생에는 초기에 누군가에게 보이고, 노출되고, 경멸받는 경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치심은 자기 자신이나 내 행동의 특징이 알려지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할 수 있는 행동을 숨기기도 하고 자신의 행동이 알려지면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지 않도록 비굴한 행동을 하도록 한다. 수치심은 학습에 기반 한다. 그 개인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만들어 사회에의 적응을 돕는 사회적 기능이 있기도 하지만 수치심 연구가인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은 전적으로 해롭다고도 말한다. 왜냐하면 수치심은 존재에 관한 감정이고 해로운 이유는 위의 은애와 같은 거짓수치심 때문이다. 사회적 관념. 주입된 어떤 신념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수치스럽게 여길 수 있다.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사회적 기준을 자신에게 무의식적으로 강요하고 그것에 도달할 수 없으면 스스로 수치스럽게 여기는 경우 해롭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수치스럽다고 말하면 더 움츠려 들게 되고 숨게 되어, 삶을 개선할 수 없다. 거짓수치심을 넘어서는 방법은 피하지 말고 응시하며 이 감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타인에게 용기를 내어 드러내는 과정도 필요하다. 다른 이에게 욕을 당해도 씩씩하게 살아내었던 길채지만 어떤 길채라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현에게는 주저하며 “하면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길채는”하고 묻는다. 장현은 “안아줘야지 괴로웠을테니”하며 이제는 다 괜찮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길채에 대한 위로로 들렸던 건 왜일까.
넷플릭스 등장 후에 장르드라마가 활성화 됐다. 지상파가 독점할 땐 최대수의 시청자를 끌고가야 하니 가족드라마는 물론 미니시리즈도 시청자층이 두터운 로맨스가 대세였다. 미디어가 개인화되고 OTT의 등장과 함께 철저히 개인시청시대가 되면서 장르 드라마가 가능해졌고 이어 시청자층도 두터워졌다. 좀비물(킹덤),크리처물(스위트홈)도 가능한 환경이다. K콘텐츠는 메시지의 글로벌 스피커가 되었다. 기생충은 자본주의 시회의 빈부격차에 대한 문제제기다. 더글로리, DP는 학폭, 군대폭력 등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다. 특히 더글로리가 제기한 학폭 문제는 세계 각국에서 이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못살던 시절에는 국책 드라마가 있었다. 1974년 “꽃피는 팔도강산”은 우리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알리고 국민적 참여를 유도하였다. 7-80년대 반공드라마로 “113수사본부”,”추적”이 있었다. 6.25 25주년 기념드라마인 “전우”도 3년간 방송된 인기드라마였다. 이제 정부가 드라마 방향성을 통제하던 그런 시절은 지났다. “전원일기”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1086회 방송된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한국기네스북에 올랐다. 농촌드라마의 효시다. KBS는 “대추나무사랑걸렸네”와 “산너머남촌에는1,2”를 연속방송했다. 2014년 “산너머남촌에는2”가 폐지되어 농촌드라마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6,70 년대 도시화, 산업화에 의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 산업역군이 된 세대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에 농촌드라마는 고향의 따듯함을 전해주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했다. 이들 자녀들의 도시생활도 50년이 되었다. 자녀들에게 농촌은 고향이 아니다. 아버지의 고향이지. “산너머남촌에는2”의 무대도 농촌을 떠나 춘천이었다. 대신 새로운 현상이 생겼다. 스타 마케팅이다. ”별에서 온그대”는 협찬금액이 당시 최고기록인 40억 이었다. 전지현이 들고 입기만 하면 대박상품이 됐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윤은혜의 보이룩도 인기였다. 드라마는 상품과 유행의 전진기지 역할을 잘 수행하는 자본주의 통로다.드라마의 역할과 기대가 바뀐게 확연하다. 드라마만큼 스토리텔러(작가)가 중요한 장르는 없다. 우리에겐 능력 있는 작가가 많다.도깨비,더글로리의 김은숙, 킹덤의 김은희, 우리들의블루스의 노희경, 별에서온그대의 박지은 등. 작가의 층이 두터워지면 좋은 IP가 확보된다. 드라마의 기본은 작가로부터 시작된다. 허준은 방송사에서 4번이나 제작되었다. 동의보감의 저자로 알려진 허준은 비천한 신분이란거 말곤 사료로 알려진게 없었다. 그래도 드라마는 엄청난 이야기를 풀어냈다. 작가 이은성의 공이다. 두세줄의 사료에서 허준 드라마를 완성시킨건 오롯이 작가의 고증에 따른 상상력이다. 이은성은 TV드라마 극본을 기반으로 베스트셀러 “소설 동의보감”을 출간하였다. 드라마가 나중에 소설로 나온건 “소설 동의보감”이 유일한게 아닌가 싶다. 드라마는 고관여 장르다. 여타 프로그램 보다 감정이입이 쉬이 일어난다. 드라마는 재밌으면 된다.감동을 주면 더욱 좋고. 더나아가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끼친다면 이는 뛰어난 위인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미생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법적 보장을 위한 법을 만들게 했다. 소위 장그래법이다. 김수현 극본의 SBS ”인생은 아름다워”는 동성애자를 타인이 아닌 내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만든 드라마다. 성소수자의 인격과 권리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었다. TVN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방송 중 장기기증 관련 에피소드가 나올 때 장기기증 서약자가 급증하였다 한다. 좋은 드라마가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다. 드라마왕국 대한민국에 좋은 드라마가 넘쳐난다. 그만큼 이 사회도 같이 좋아지길 기대한다.
LH사태로 일컬어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직원들의 부동산투기를 폭로한지 2년이 지났다. 당시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수많은 제보를 통해 LH임직원 뿐만아니라 정치인을 포함한 공직자들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졌다. 아직도 법원에서 형사재판이 진행중인 것도 있다. 이른바 LH사태로 인해 공공주택특별법, 한국토지주택공사법, 도시개발법,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국회법, 공직자윤리법, 농지법 등 7가지 이상의 법률들이 개정되기도 했다. 공직자,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내부통제가 강화되고, 우리사회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감시제도가 강화된 점 등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LH사태 해결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농지법 개정이 과연 타당했는지. 당시 제도 개선방안으로 제시한 것들이 LH사태에서 혁신 내지 개혁의 주체라고 한 대다수 L..
지난 여름, 일본 오사카에 갔다. 인천공항 출입 땐, 우리의 과학기술 덕택에 빠르게 통과했다. 고품질 서비스를 피부로 느꼈다. 간사이공항 출입 땐, 입국과 출국에 각각 두세 시간은 걸렸다. 일본은 아날로그 나라에 불과하다는 ‘국뽕’에 취했다. 잠시였다. 오사카 맛 집을 순회하면서 ‘부심’은 일그러졌다. 작은 식당, 큰 식당이든, 입장대기에서 주문에 이르기까지 첨단 IT기술이 활용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테이블 오더기가 일본에선 거의 모든 식당에 설치됐다. 인간의 편안한 생활은 정신영역을 차치하면, 과학기술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과학기술의 주도 없인 국민 생활의 발전과 도약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디지털 강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있는가. 자만하고 있지 않은가. 수능 1등부터 차례대로 전국의 의대(의치한약수) 지원 후, 서울대 공대를 간다는 세태. 우리에게 발전적인 미래가 있기는 한 걸까? 이런 와중에 정부는 R&D 예산을 삭감했다. 지난 17일부터 3일 간은 ‘정부24’ 행정전산망이 셧다운 되기도 했다. 정책과 행정은 화이트아웃(시야, 방향감각 상실) 상황이다. R&D 예산 배정, 행정전산망 운영은 가치결정의 문제다. 미래에 대한 준비, 대국민 봉사라는 국정방향이 확립돼 있어야 한다. 한국경제가 한 번 더 점프하기 위해선 범국가적으로 연구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산업의 토대를 정치(精緻)하게 다져야 할 것이다. 기술의 부가가치 향상에 집중할 타이밍이다. 재료가 없어, 건물 유지를 할 수 없어서, 인건비가 없어, 행정비용이 없어서 연구를 못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과학계의 카르텔 문제를 예산 삭감으로 해결하는 건 비합리적이다. 연구과제 성과를 평가할 인재 풀을 확충하고, 정책평가 툴을 개발하면 될 일이다. 인재의 해외 유출을 부추기지 않으려면 기본적인 지원에 소홀해선 안 된다. 선제적으로 과학기술종사자 정년을 연장해 장기적으로 인재 유인을 도모해야 한다. 적어도 그들이 생계와 노후를 걱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전자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 내에서 전산망 관리 직원에 대한 승진과 급여에 대한 특례규정을 둬야 한다. 고액 연봉과, 인재 유입을 위한 문호 개방이 필요하다. 국가와 국민의 통섭은 전자정부의 매끄러운 운용에 의해 좌우된다. 좋은 국정을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으려면, 행정전산업무가 민간 IT업계와 경쟁하며 발전해야 한다. 외주만으론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없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정부는 과학기술을 통해 사회와 경제에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전자정부를 통해 국정을 쇄신해야 한다. 정부가 중심을 잘 잡아야, 대중의 생활경제에 디지털화가 녹아들 것이다. 지금 같은 정책 환경에선 가치결정의 해답을 IT에서 찾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인문학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비판하되, 과학과 기술을 통해 밝은 미래를 전망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 전성시대는 가히 대한민국이 다다라야 할 종착지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한국의 과학기술혁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강국 대한민국이 빈말이 돼선 안 된다.
감 참 좋아한다. 특히 홍시(紅柿). 조계사 경내에 있는 까페 ‘나무’의 홍시 쥬스, 일품이다. 지인들과 거기 앉아 한 잔 씩 하면, 소통도 참 잘 된다. 그 높은 값의 평화, 늘 홍시가 가져다준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난 주 젊은이들에게 '맹자'를 강의했다. 스물 다섯 살 복학생의 그 뜨거웠던 여름방학, 선풍기도 없는 강의실에서 공부했던 맹자원전 강독의 감동은 30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 감동, 앞으로 30년 또한 변함없이 이어지길 빈다. 스물 다섯 전후의 젊은이들과 함께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아버지’ 맹자(孟子)를 읽고 토론한 후, 몇 마디 보탰다. "하늘높이 달려 있는 저 홍시가 仁이다." 따지 않고, 까치의 밥으로 놓아둔 조상들의 그 인자한 가슴은 눈물겹다. 언제나 뭉클하다. 철학적이다. 이 무한 우주의 운행 안에서 그 보다 더한 어진 마음 어디서 또 접한단 말인가. '대지(大地)'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故 펄 벅 여사가 방한하여 경주에 갔었다. 천년 古都 여기저기를 돌아댕기다가 높이 달려 있는 홍시를 보고서는 “따기 힘들어서 그냥 둔 거냐?”고 물었다 한다. 1960년이었다. 당시 수행했던 젊은 기자(故 이규태 선생)가 “겨울을 나는 새들을 위해 남겨 둔 까치밥”이라고 설명하자, 탄성을 지르며, “바로 이거야. 한국에 오길 잘했어. 그건 고적(古蹟)이나 왕릉 때문이 아니야. 이 한 가지만으로 충분 해.” 라며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 여인, 시골에서 지게에 볏단 짊어진 농부가 소달구지 곁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또 한번 감동했더란다. 무거운 짐 지고서도 달구지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특별하게 보였던 것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산문집에 보면, 그 자당님의 어진 일상이 감동적으로 씌어있다. 자모(慈母)께서는 겨울에 더운 물로 세수하신 후, 물이 식은 다음에 버리시며, 아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다 한다.“뜨거운 물 마당에 버리면, 땅 속에 사는 벌레들 눈 먼다”고. 김용택이 이 나라 대표 시인 된 이유, 다른 데서 찾을 필요 있겠는가. 맹자도 왕이든 제후든 특별한 사유 없이 소나 양을 죽이지 않는 것이 인(仁)이라고 했다. 깊이 생각해보면, 仁이 의(義), 예(禮), 지(智)이기도 하지 않을까. 사단(四端.仁義禮智)은 각각이면서 크게 하나인 것 같다. 홍시가 까치에게는 仁이고, 편협한 인본주의자에게는 격조높은 義이며, 탐욕에게는 큰 禮고, 옳고 그름 구분 못하는 자에게는 오롯한 智일테니 말이다. 하늘 높이 달린 채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모진 풍상을 이기는 저 홍시 한 알이 오늘 이 나라 이 겨레를 가르친다. 까치밥 얘기에 그 착한 이방인 대작가가 왜 그토록 크게 감동 받았던가. 이 땅의 씨알(民草)들은 변함없이 펄 벅의 친구들로 살고 있다. 2300년 전, 맹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라고 말했다. 이 기준으로 따지면, 이 나라에서 거창한 명함 들고 댕기며 거들먹거리는 자들 대부분은 사람이 아니다. '5大 非人間'은 세금 떼먹고 노동자들 괴롭히는 더러운 장사치들, 5류 정상배들, 영혼없는 관료들, 사랑없는 종교쟁이들, 악마떼 '기레기'들 등이다. 바로 그 특이종자들이 지금 저 높이 하나 남은 홍시를 향하여 쉬지 않고 돌을 던진다. 우리는 모두 여전히 절망적인 '살인(殺仁)'의 현장에 있다. 맹자는 "仁義를 저버린 포악한 군주는 방벌(放伐)해도 좋다"고 갈파했다. 방벌(放伐)은 왕을 권좌에서 끌어내려 베어죽인다는 뜻이다.
지난 20일 ‘2023년 경기도형 납품대금 연동제 우수기업 시상식’이 라마다프라자 수원호텔에서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긴키테크코리아㈜ 등 적극적으로 연동제에 참여한 우수기업 15곳에게 도지사 표창이 수여됐다. 납품대금 연동제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에겐 마케팅·시제품 제작·경영컨설팅 등을 위한 판로지원비를 최대 3000만 원까지 지급하는 한편, 중소기업육성자금과 기업지원사업 신청 시 최대가점부여, 지방세 세무조사 유예 혜택도 제공한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제도다. 그동안 중소기업들은 원재료 가격이 폭등해도 가격 변동 분을 납품대금에 제대로 반영 받지 못했다. 이에 중소기업계는 오래 전부터 납품대금 연동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청해 왔지만 정부는 이들의 호소를 외면했다. 2022년에야 비로소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추진여건이 마련됐고 그해 12월 납품대금 연동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리고 지난달 4일부터 납품대금 연동제가 시행됐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납품대금 연동제 법제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함께 분담하는 상생의 거래문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면서 중소벤처기업부가 대기업, 중소기업, 경제단체와 한 팀이 되어 연동제가 거래 관행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업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전국 지방정부 중 납품대금 연동제를 가장 먼저 시행한 곳은 경기도다. 도는 정부보다 앞선 4월부터 이미 ‘경기도형 납품대금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경기도형 납품대금 연동제는 김동연 지사의 비상경제 대응 종합계획 가운데 5대 긴급 대책에 포함된 사안으로 그동안 납품대금 연동제의 신속한 도입을 중앙부처와 국회에 적극 건의해 온바 있다. 도는 ‘경기도형 납품대금 연동제 우수기업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도내 중소기업(수탁기업)과 거래하는 위탁기업이 납품대금 연동특별약정서를 체결하고 약정내용에 따라 납품대금을 조정해 수탁기업에 지급한 실적을 평가해 우수기업으로 선정하는 것이다.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면 전기한 것처럼 판로지원비 등의 지원을 받는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매출의 75%를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가격 변동 분을 받지 못하면 자금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경기도형 납품대금 연동제가 바람직한 것은 다른 시·도보다 먼저 시행한 데다 기준을 완화시켜 더 많고 폭 넓게 지원한다는 것이다. 납품대금 연동제 대상을 ‘원재료 가격이 납품대금의 10% 이상’에서 ‘5% 이상’으로 낮췄다. 또 ‘1억 원 이하·거래기간 90일 이내’에는 적용이 제외되는 규정도 경기도에서는 5000만 원 이상 시 모든 거래에 적용되며, 기간도 제한이 없다. 도 관계자는 “적용 기준을 완화해 보다 많은 수탁업체가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고, 의무 대상이 아닌 경기도 출연·출자 공공기관들도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경기도형 납품대금 연동제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원자재 가격의 과도한 상승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서 납품대금 연동제의 정착이 더욱 절실하다.
달력에는 내일이 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고, 겨울 다음은 봄이다. 그래서 산다. 오늘이 아니어도 내일이 있으니까.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도 거기서 싹이 틀 것이다. 오늘과 내일의 아스라한 틈에서. 끝이 시작으로 이어지는 아찔한 경계에서. 지고 있는 선수가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맬 수 있음도 그래서다. 아직 후반전이 남았으니까. 다시 따라잡을 기회가 남았으니까. 다시 달릴 수 있고, 다시 꿈꿀 수 있고,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경기장에 있는 그 ‘다시’가 우리네 삶에는 없다. 사람이라 이름 붙여진 동물에게 ‘다시’란 없다. 언어와 국적에 상관없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사람은 우리가 사는 별 어디에도 없다. 늘 아쉬운 것도 그래서겠지. 한 번뿐인 청춘이라서. 아쉽다고 해서 다시 살아볼 수 없는 게 삶이라서. 돌아볼수록 아쉬운 것투성이다. 나의 지난날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풀림 보다는 막힘과 엉킴과 틀어짐이 많았다. 그것이 ‘살아내는 재미’라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살아내는 재미’가 두렵기 시작하더라는 고백은 해야겠다. 그래서일까. 열 번 막히고 스무 번 엉키고 서른 번 틀어지더라도, 한 번쯤 술술 풀어졌으면 좋겠다. 막힌 골목 끝에 스미는 달빛처럼. 엉키고 틀어진 안개를 가르는 바람처럼. 나와, 내 가족과, 내 이웃들의 겨울에도 따뜻한 입김으로 언 손 녹이는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가난만큼이나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게 아쉬움이다. 그래서 늘 당부한다. 아비의 삶처럼 아쉬움으로 주눅 들지 않기를. 망설임 없이 뚜벅뚜벅 나아가기를. 큰아이가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를 데려왔을 때도 그랬다. 아비랍시고 딱히 해 줄 말이 그것 말곤 없었다. 어떻게 살아도 좋은 일이다. 부디 아비처럼 살지는 말아라. 그런 아비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랑에 들뜬 젊은 청춘들의 눈망울은 한없이 푸르렀다. 나는 아이들과 마주하는 내내 나뭇잎처럼 싱그러운 두 청춘들의 앞날에 막힘없기를 소망했다. 간절하고 또 절실하면 때론 이뤄지는 것이 소망 아니던가. 드라마 속 주인공의 엇갈린 운명처럼. 도저히 비껴갈 수 없는 운명도 드라마는 바꾼다. 죽음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살림으로 바꾸는 힘은 시청자들의 바람에 있다.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소망이 작가로 하여금 대본을 다시 쓰게 한다. 때론 방송 분량을 늘려가면서까지 주인공들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최근에 끝난 드라마 연인(戀人)에서도 그랬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피엔딩을 꿈꾸지 말아야 할 까닭 또한 없다. 나는 드라마 바깥의 모든 이들이 길채 낭자와 장현 도령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 모든 날들이 그러할 수 없다면, 손꼽아 기다리는 어느 한 순간만이라도. 부디 찬란하게 타오르기를. 뜨겁게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가짜뉴스를 규제한다는 명목을 앞세워 인터넷 언론 심의를 강행하는 상황에 대해 비판하는 토론회가 지난 11월15일 열렸다. 방심위가 인터넷 언론 보도에 대해 심의 권한이 있는지,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현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에 접수된 보도 가운데 뉴스타파의 녹취록 보도에 적용한 심의 규정이 적합한지, 그리고 이 내용을 인용한 방송 보도에 대한 과징금 결정이 정당한가를 함께 모여 따져보고 질문을 제기해 보자는 자리였다. 방심위는 지난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뉴스타파의 김만배 인터뷰를 인용 보도하거나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한 봐주기 수사 의혹을 보도한 KBS, MBC, JTBC, YTN에 총 1억4천만 원의 과징금 부과를 의결했다. 방심위가 내릴 수 있는 법정 제재 중에 최고 수위의 중징계 결정이었다. 주요 방송사들이 한꺼번에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은 2008년 방심위가 출범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다음날 류희림 방심위 위원장이 공식 입장문을 냈다. 공영방송과 종합편성채널 그리고 뉴스전문채널이 뉴스타파의 녹취록 보도에 대해 사실 확인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정보를 유통했으므로 범죄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는 내용이었다. 방심위가 가짜뉴스 심의센터를 출범시킨 이후 첫 심의 사례가 뉴스타파의 김만배 인터뷰 보도였다. 심의는 통신소위에서 이뤄졌는데 통신심의 규정 중에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 있는 내용이라는 근거에서 판단이 내려졌다. 미국을 비롯해 독일, 영국, EU의 경우도 허위조작정보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법으로 규제할 대상의 범위는 선전‧선동 혹은 혐오 조장 내용, 지나친 광고처럼 제한적이다.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규제 범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이를 빌미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법질서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허위조작정보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퇴행시키는 원인이라는 우려와 지적에 공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이를 규제하려는 국가통제 역시 민주주의 퇴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측면은 쉽게 간과해 버리는 경향을 지적할 필요성에 대한 의견 제기가 있다. 여러 나라에서 허위조작정보를 규제할 법을 입법한 목적이 정부 정책 비판을 억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UN 표현의 자유 특별 보고관의 보고서가 이 문제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허위정보를 견제할 수단에 대해 사회적 합의점이 필요하다. 언론이 사실 확인을 게을리했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수용해야 하고 반성과 성찰을 요구한다. 인터넷 상의 허위조작정보가 가져올 파급력을 고려해 신속한 심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가짜뉴스를 퇴치하겠다는 공세 속에서 비판 언론, 비우호적인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없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참, 이날 토론회 제목은 “검열국가로 후퇴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