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세는 부의 무상이전에 대해 과세하는 세금이다. 우리나라 증여세 과세체계는 수증자를 기준으로 하여 증여자별로 합산과세하고, 10년 이내 동일인으로부터 증여가액을 누적과세한다. 증여세가 높은 상황에서는 사전적으로 세금플랜을 잘 세워 대응하지 않으면 예상치 않은 세금으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지만, 오해하기 쉬운 증여세 문제를 정리해 본다. 요즘과 같은 국제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에는 해외거주를 활용하여 증여세를 피할 수 있다. 십수년 이상 캐나다에 거주하여 비거주자인 상태의 재외동포의 경우 배우자에게 현금증여를 하고 수년이 지난 후 그 배우자가 국내에 거주할 목적으로 귀국하면서 해외에 거주 당시 증여받은 현금을 들여온 경우 국내에서 과세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세법상 비거주자 간에 이루어진 증여의 경..
북한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거듭된 비방전을 펼친 끝에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저들이 끝내 남북 합의 파기 수순에 돌입하는 사태를 보면서 북한을 설득하는 일이 외계인과의 타협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북핵폐기’를 목표로 북한의 억지를 참아가며 평화전략을 구사해온 문재인 정권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다. 남북이 열광하며 맞았던 ‘평화의 봄’이 결국 무참히 사라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17일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문 대통령의 지난 15일 6·15선언 20주년 행사 영상 메시지를 두고 “자기변명과 책임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됐다”고 혹평했다. 김여정은 성명에서 ‘구접스럽다’, ‘잘난 척’, ‘꼴불견’이라는 험..
지난 6월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대남공세의 포문을 연 이후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은 또다시 ‘멘탈 게임’을 시작했다. 대남 비난 담화를 발표한 지 5일 만에 판문점 직통전화 등 남북 간 연락채널을 전면 차단한데 이어 노동신문 및 ‘우리민족끼리’, ‘메아리’ 등 선전매체를 총동원하여 우리 측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군사합의서」에서 규정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전단살포’, ‘적대행위 금지’라는 약속을 어겼다며 비난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0년판 기싸움이자, 정신력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의 계산된 공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분출하고 있다. 통일부 장관까지 지낸 모 인사가 “우리 측의 잘못 때문”이라는 굴종적인 해석에서부터 ‘남한 압박을 통한 대외관계 돌파구 마련’, ‘경제난 속의 체제결속용’, ‘김여정의 역동적 이미지 구축의 일환’이라는 해석 등이 난무하고 있다.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 단체 관계자 2명을 남북교류협력법 등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것이나, 동 단체 허가 취소 검토 발표는 멘탈 초장부터 문 정부가 밀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형님과 같은 포용적 자세를 견지하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단기적으론 우리 국민들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북한이 문제제기 내지 공세를 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굴종적으로 부응하려는 남한 정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일부의 지적도 결코 흘려버릴 수 없는 감정이자 여론이기도 하다. 초장부터 김정은 정권은 남남 갈등과 보수세력의 입지 약화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4·15 총선에서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보수진영의 현정부 대북 정책 비판 목소리는 ‘모기소리’ 만큼이나 반향이 없다. 남남 갈등은 사실상 승부가 났다. 그러나 안보에는, 위·촉·오 삼국이 대결하던 시절 유비의 촉(蜀)나라를 지키던 난공불락의 요새 검문각(劍門閣)이 긴요하다. 촉나라 수도 청뚜(成都)의 길목을 지키던 이 요새는 제갈량이 총애한 유능한 장수였던 강유(康維)가 버티고 섰던 곳이다.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현대판 검문각’이 망가지고 허트러진 곳은 없는지 수선하여 재정비가 요구된다. ‘현대판 한국식 검문각’은 좁은 골짜기를 지키던 겉으론 위압적인 검문각이 아니라, 멘탈게임에서 이기고 기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검문각이 되어야 한다. 휴전선이 하드보더(hard border)라면 검문소는 소프트(보더soft border)이다. 온건한 수단으로 안보의식이 흐트러지는 것을 최소화하는 역할도 한다. 물론 검문 당하는 사람은 치욕이라고 여겨, Maximilian Lohnert 영국 에딘버그대 교수는 이를 ‘모욕주기 전략’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인간안보’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안위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되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검문소가 아닌 민간이 주도한다. 건물이나 병원 등에 들어가면 입구에서 출입자의 체온을 잰다. 정상인자만 출입이 허용된다. 그래도 우리는 불평하지 않는다. 코로나 검문이 우리 공동체의 안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탈보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김정은 정권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비록 물리적 검문소는 줄이거나 없애더라도 ‘마음의 검문소’는 지켜나가자. ‘과잉안보’도 안 되지만 ‘과소안보’도 안 된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배신한다. 사마광이 쓴 역사서 「자치통감」은 배신적 인간의 종합판이나 다름없다. 그 배신적 행태를 북한정권이 지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큰 형으로서 대범한 자세를 지켜나가되, ‘마음의 검문소’는 허물지 않는 상태에서 국민의 자존감도 지켜주는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정도이다.
용인이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원내대변인)이 최근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아동학대치사 범죄의 기본 형량을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높이고, 아동학대중상해죄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강화했다. 현행법상 아동학대치사죄의 형량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아동학대중상해죄의 형량은 ‘3년 이상의 징역’이다. ‘아동복지시설의 종사자 등에 대한 가중처벌’도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 대한 가중처벌’로 바꿔 신고의무자의 책임을 분명하게 명시했다. 저항할 힘이 없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학대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최근 충남 천안시에서 학대당하던 9살 초등학생 남자 아이가 친부의 동거녀에 의해 가로 44㎝·세로 60㎝ 여행용 가방에 7시간이나 갇혀 있..
무역이란 국가 간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고팔며, 교환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표적인 수출품으로는 반도체, 컴퓨터, 가전제품, 자동차 등이 있다. 반면에 에너지, 식량, 원재료, 기계의 핵심 부품 등을 주로 수입한다. 보호무역은 국가 권력과 간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른 나라와 무역하는 자유무역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국가마다 국민의 안정적인 경제 활동을 위해서, 또는 국가 안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하는 산업이 있다. 누구나 위험하고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듯이, 국제 경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 간 거래를 하면서 불리한 점이 생기면 자기 나라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게 된다. 예를 들면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많은 국민이 종사하고 있는 핵심 산업의 경우, 해당 산업이 해외 기업으로 인해 붕괴가 된다면 국가 경제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경우를 막기 위해 몇 가지 보호무역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보호무역 제도로 자기 나라의 상품과 경쟁하는 수입품에 대해 높은 세금을 매겨 가격을 비싸게 만드는 ‘보호 관세’가 있다. 또 정부가 미리 수입량을 정해 놓고 그 범위 안에서만 수입을 허락하는 ‘수입 할당제’와 특정한 상품의 수출을 북돋아 주려고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는 ‘수출 장려금 제도’ 등도 보호무역의 한 종류이다. 그동안 자유무역주의는 20세 후반부터 국제 경제의 트렌드로 인식되어 왔다. 선진국의 주도로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무역자유화가 추진됐고, 여러 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회복이 더디고 각국의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이러한 상황들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실업자와 빈곤층이 늘어나고 무역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자유무역이 모두를 잘 살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깨지기 시작한다. 결국 현 단계 세계 경제는 한편으로 자유무역주의의 확산, 다른 한편 보호주의 강화라는 상호 모순된 경향이 혼재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각국의 사정에 따라, 또 산업에 맞춰 보호와 개방을 저울질하게 되면서 각국의 고민도 깊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은 한국의 2대 무역국, 한국은 미국의 6대 무역국이다. 미국은 자국의 경쟁우위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통상질서를 강요한다. 앞으로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은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일반기계, 자동차부품, 반도체, 가전, 섬유류 분야의 타격이 예상된다. 보호무역은 단기적으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1920년대 미국이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가 간 보복 관세가 이어지고 세계 무역 규모가 60%나 줄어든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오랜 기간, 글로벌 무역은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의 대립을 통해 발전해왔다. 한때는 세계화를 거스르는 것이 마치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자유무역의 시대가 저물고 보호무역의 시대가 다시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당장은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바람이 잠시 주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국이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그는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무역으로 인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물자가 풍부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보호무역에 대한 논쟁은 진행형이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자 무역장벽을 높여 자국의 이익부터 우선시하는 움직임도 점점 뚜렷해진다. 한쪽에서는 결국 보호무역이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라고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보호무역 확산에는 절대 반대 입장이다. 2020년대에도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격돌이 예상된다.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은 세계 경제에 또 하나의 불확실성 요인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우리로서는 어려운 상황임이 틀림없다. 과연 우리는 이 어려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속에서, 높은 무역 대외의존도를 갖고 있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확실한 해결방안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그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21대 국회가 또다시 ‘정치력 부재’의 초라한 현주소를 드러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 싶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18개 상임위원회 중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등 6개 상임위 위원장을 단독으로 선출했다. 시급한 국정과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여당의 조급증이나 절대 소수인 통합당의 막막한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런 시작이라니 참담한 일이다. 제1야당을 배제한 단독 원(院) 구성은 1987년 이후 약 33년 만에 처음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5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21대 국회의 원 구성에 대해 민주당의 뜻은 분명하다. 단독으로라도 21대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정권이 바뀐 다음의 여야 행태는 ‘개구리가 올챙이 적 기억 못 한다’는 말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그 이중 논리는 그릇된 관행을..
새끼를 낳고 기르기 위한 남극의 황제펭귄 부부의 노력은 눈물겹다. 암컷이 알을 낳고 몸에 먹이를 비축하기 위해 바다로 떠나면 수컷은 발 위에 있는 주머니에 알을 넣고 품는다. 알을 품고 있는 기간이 무려 64일 안팎이다. 그동안 수컷은 수분 보충을 위해 눈(雪)을 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는다. 워낙 혹독한 날씨여서 잠시만 자리를 벗어나도 알이 얼어 터지고 말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수컷 황제펭귄은 부성애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진다. 새끼가 부화하면 수컷 펭귄은 자신의 위 속에 있는 소화된 먹이를 토해서 먹인다. 새끼가 부화한 지 열흘 정도 후에 암컷이 돌아와 같은 방식으로 먹이를 주고, 이후로 수컷과 암컷은 번갈아 가며 하나는 새끼를 품고 다른 하나는 바다로 나가 먹이를 비축해 돌아온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자식 둔 부모는 알 둔 새 같다’는 말도 있다. 오랫동안 익히 들어온 이런 말들을 우리는 굳건히 믿고 살아왔다. 대개의 부모가 그 이치에 딱 맞는 따사로운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귀한 상식이 가차 없이 무너지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극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여행용 캐리어에 의붓아들을 가둬 숨지게 한 천안 계모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창녕에서 계부가 아홉 살 된 의붓딸에게 학대를 뛰어넘는 고문을 상습적으로 저지른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또 드러났다. 쇠사슬에 목이 묶인 채 베란다에 갇혀 굶주림에 시달리던 이 9살짜리 여자아이는 가까스로 지붕을 타고 옆집으로 아슬아슬 탈출하여 야산에 숨어 있다가 해거름에야 산길을 걸어 나와 구조됐다. 아이가 털어놓은 계부와 친모의 학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쇠사슬로 목을 묶어 가둔 것도 모자라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으로 발등과 발바닥을 지지고, 지문을 없앤다고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가락까지 지졌다니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해마다 서른 명 안팎, 지난 2016년부터 3년 사이에 무려 102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각종 아동학대로 숨졌단다. 학대 행위자와 피해 아동과의 관계는 부모가 1만8천919건(76.9%)에 달한다니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만큼도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친부가 학대 행위자인 경우가 1만747건(43.7%), 친모 7천337건(29.8%), 계부 480건(2.0%), 계모 297건(1.2%) 등이었다. 절대다수의 학대는 친부모에 의해 일어난다는 얘기다. 도대체 왜 이런 비참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할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기에, 행복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부모의 모진 학대 끝에 숨지는 비극이 계속되는 것일까.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으신 정치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무슨 관성처럼 ‘엄벌’만을 외친다. 국회에 수두룩한 법조출신 정치인들은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다는 듯이 “처벌이 솜방망이여서 그렇다”며 형벌 강화를 부르댄다. 현대사회의 모든 일이 그렇게 범인을 잡아 손 자르고 발목 끊는 야만 시대의 형벌이면 해결될까. ‘아동학대’는 그렇게 간단히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동학대 처리 시스템’ 전반의 부실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현실적으로 옳다. 감시망을 확대해 신속히 학대 아동을 찾아내어 확실하게 구출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의 부모는 그냥 두고 딴 예기만 하는 것은 해충의 발원지는 그냥 두고 벌레만 잡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다. ‘부모’가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별도 교육이 필요하다. 아무렇게나 아이를 낳고, 또 아무렇게나 키우는 현상을 방치하는 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가뜩이나 ‘인구절벽’이 시대의 난제로 떠올라 있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냥 아이 낳았다고 돈 주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의무적으로 ‘좋은 부모’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부모’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고 아이를 낳은 뒤 화풀이 대상 삼아 말 안 듣는다고 두들겨 패고 밥조차 굶기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모른 척할 셈인가. 정신병자에 가까운 부모들이 양산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확실히 끊을 정밀한 종합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자기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보석처럼 귀한 아이를 가방에 가두어 죽이고, 손가락 발가락을 지지다니….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씻고 싶다. 짐승들도 그렇겐 하지 않는다.
지금 세계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보이지 않는 존재물에 공포를 느껴왔다. 예를 들어 잡귀 잡신이 그러했다. 귀신은 보이지 않으니 조금만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귀신을 몰아내는 온갖 비방술에 애를 썼다. 문명이 발전하고 첨단기술이 만연한 오늘날에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 국력을 소모하고 있다. 정체는 알고 있으나 그걸 막을 방도가 없다. 기껏 할 수 있는 게 마스크를 쓰고 바깥출입을 삼가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도 거리를 두고 만나야 한다. 이 고약한 질병 앞엔 강대국도 맥을 못 쓴다. 어떤 강대국의 지도자도 이번 사태를 잠재울 수 없었다. 영웅이 필요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똑똑하고 영리하며 유능한 사람이 우매한 민중들을 인도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지금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가장 안전한 길은 자신이 자기를 지키는 길밖에 없다. 기업도 나라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이럴 때 생각나는 우화가 있다. 어느 왕국에 나이 많은 임금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임금은 한 신하를 거느리고 정원을 걷고 있었다. 그때 정원 연못 위에서 한 무리의 까마귀들이 우짖고 있었다. 왕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까마귀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왕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궁금해서 그러네. 자네 혹시 우리 왕국에 까마귀가 몇 마리나 사는지 아는가?” 그 말에 신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까마귀 말씀이오니까! 우리 왕국엔 모두 칠만 육천 오백스무 두 마리의 까마귀가 살고 있습니다.” 임금은 신하의 망설임 없는 대답이 미심쩍었다. 그래서 신하에게 말했다. “그 말이 정말인가?” “어찌 거짓말을 아뢰오리까?” 임금은 신하를 믿지 못해 다시 물었다. “그보다 많은 까마귀가 산다면 어찌하겠나?” 그러자 신하는 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보다 많은 숫자라면 그들은 이웃 나라에서 놀러 온 까마귀들입니다.” 왕은 그 말이 또 못 미더워 되물었다. “그럼 그보다 더 적은 숫자라면?” “보나 마나 우리 까마귀들이 이웃 나라에 여행을 간 것입니다.” 왕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창궐하는 바이러스를 저지할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데 이 질병을 물리칠 명쾌한 명약을 찾는 일은 마치 나라 안 까마귀 숫자를 헤아리는 일만큼 우매한 일이다. 형체도 없는 이 질병이 두려워서 사람도 만날 수 없고 하던 일도 멈추고 있다. 한두 달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던 바람도 허물어졌다. 날이 밝으면 아침인가 하고, 해가 지면 또 하루가 저무는구나 하고, 모두가 그렇게 고독병과 투쟁을 하고 있다. 희망도 바람도 안개 속에 머물고 무기력증에 젖어있는 우리의 일상은 언제쯤에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에 스러지는 목숨이 참 허망하다. 우리 모두 개인위생에 신경 쓰면서 밀집 밀폐된 공간을 찾지 않는 길만이 이 질병에서 벗어나는 방도이니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15일 공개된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위치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물들이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 조선인 강제노동으로 악명 높은 하시마(군함도) 강제징용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관련 전시시설인 이곳에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전시는 ‘(한국인이) 하시마에서 좋은 환경에서 생활했다’는 식의 왜곡 전시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일본의 야비함이 또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지난 2015년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즈음 일본의 약속은 이게 아니었다. 당시 사토 구니 주(駐) 유네스코 일본대사는 “(하시마 등 일부 산업시설에서) 과거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하에서 ‘강제노역’했던 일이 있었다… 희생..
필자는 어느 한 연극 웹진에 일 년에 세 네 번 공연 관람 후 리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지난봄부터는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안전 수칙을 지키며 조심스레 공연을 올리고 있는 극장이 있긴 하지만, 막 학교를 입학한 딸과 이웃을 생각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연장을 방문하기가 망설여졌다. 바이러스가 문화행사와 공연, 전시를 멈추게 했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왔고 적막감을 느꼈다. 어렵다, 어렵다 했어도 굴러가기는 했던 전시장과 공연장이었는데 그나마도 멈추고 나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만 멈추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최신 공연 영상이라도 보고 리뷰를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극장 용’에서 하는 어린이 작품이 가정의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친김에 온라인 인터넷으로 온라인 공연과 전시 소스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름 모를 가수의 한 유행가 가사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온라인에서 꽤 많은 콘텐츠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롯데콘서트홀, 국립현대미술관,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공연이 며칠간 유저들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고, 일부 공연은 적은 금액에 온라인 관람이 가능했다. 필자는 평소 신문물의 유행에 아주 늦게 편승하는 편이었고, 지금까지는 그것에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 점을 깊이 반성했다. 정보가 없었던 탓에 지난 한 달간 좋은 콘텐츠들을 여럿 놓쳤기 때문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듣보잡’ 바이러스였던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짓눌러 버리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 덕분에 실제로 보기 어려운 귀한 공연·전시 콘텐츠들을 집안에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뜻밖의 수확이라고 해야 하나. 이처럼 발달된 통신망과 매체는 코로나로 완전히 공백이 되어버릴 뻔했던 일상의 영역을 조금은 채워주고 있다. “거봐 내 뭐라고 했어. 대중매체가 반드시 우리 삶에 해로운 것만은 아니랬잖아~”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이 살아 돌아온다면 씩 웃으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까.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84’라는 작품에서 대중매체가 독재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백남준은 그 예견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했다. 대중매체가 우리 삶을 서로 연결해 주고 대중들의 삶에 창조력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1984년 1월 1일 정각 ‘굿모닝 미스터 오웰’라는 제목의 대대적인 쇼를 텔레비전에 송출했다. 한국, 프랑스, 미국의 방송국과 함께 했던 쇼였다. 1984년이 암울한 독재가 아닌 유쾌한 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인이 된 조지 오웰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쇼였다. 1984에 상연된 쇼를 당연히 본방사수하지 못했지만 2014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전시를 관람했던 덕분에 당시의 유쾌한 분위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실제로 매체들이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되도록 열려있는 덕분에 우리의 삶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어 매체에 올리고 스타가 될 수 있다. 학생이나 유치원생도 예외는 아니다. 뉴스를 방송국 정규 편성 프로그램이 아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거짓 뉴스도 많아졌고 그것을 폭로하는 뉴스도 많아졌으며, 진실공방도 치열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조지 오웰이 예견한, 독재자가 대중매체를 장악한 암울한 세상은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그럴뻔했던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와우!’를 연거푸 외쳐야 할 만큼 기쁜 일이 아닌가. 1984년 1월에나, 2020년 6월 15일에나 말이다. 물론 몇몇 공연·전시 콘텐츠가 온라인으로 소개되고 있다고 해서 마냥 좋은 상황은 물론 아니다. 온라인 생중계는 자금력과 시스템을 갖춘 일부 공연장이나 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콘텐츠도 일부 장르에 편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온라인 중계는 입장 수입을 내지 못하기에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열악한 단체들은 물론 국공립 기관들마저 자립이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릴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작품들은 ‘아우라’를 충분히 관객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다.